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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신사(183) - 여자의 과거를 밝히지 마라

서석훈
  • 입력 2013.12.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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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여자의 과거를 밝히지 마라



바의 스탠드에 여배우를 앉혀놓고, 감독은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어봤으나 여배우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서양여자 같으면 맥주라느니 스카치라느니 데낄라라는니 술의 종류를 정확하게 진술하고 더 나아가 상표이름과 몇 년산 따위까지 들먹이겠지만, 한국의 여배우는 여기에 술이 종류마다 있는 건 알고 있지만 함부로 집어서 얘기하는 건 누군가에게 무례한 거 아니냐는 듯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감독 또한 바텐더가 재촉 않고 참을 성 있게 기다리는 걸 보고, 먼저 제안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럴 때 돈이 많다고 이 집에서 제일 비싼 게 뭐냐고 묻는 건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태도요 졸부의 행태라 아니 할 수 없다. 또 `비싼 거라면 와인 1530년 산 750만 원 정도 하는 게 있습니다` 하고 나오면 곤란한 것이다. 아무리 복권 당첨된 돈이 있다고 한들 그런 술을 마시면 바로 체하거나 또 여자가 `이런 미친 놈, 바텐더와 짜고 지랄하는 거 나 모를 줄 알아. 오만 원짜리 가지고 어디서 사기치고 있어.` 이렇게 나오거나 설령 순진하게 믿는다 쳐도 `개자식, 그 돈 있으면 날 주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하고 생각할 게 뻔했다. `내가 전지연인줄 아냐? 이 자식아!` 하고 나올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적당히 비싼 거 없나` 그러면 바탠더가 `75만 원짜리가 있습니다` 하고 나올 거고 그럼 그걸로 할 수는 있지만 `뭐땜에 이년 위장에 그걸 처 넣는냐. 7만 5천원이라도 충분히 야들야들해질 것을`. 온 몸이 달아오르게 하는 데는 사실 좀 싼 게 효과도 좋고 빠를 수도 있었다. 그것도 그렇고 가격 따위로 술을 주문하는 건 촌스럽기 그지없으니 감독은 다만 여배우에게 "스카치? 아니 와인으로 할까?" 이렇게만 물어 본 것이다.
여배우는 `스카치로 할게요` 하고 대답했는 바 사실 이 스카치라는 건 한 때 룸에 좀 나갈 때 지겹도록 마셔본 거지만 그 세월도 오래 되어 추억의 술이 되어 있었고, 두 세잔 정도 마시면 몸이 적당히 더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카치로 하겠다 한 것이다, 한때 룸에 나간 건 영화판 바닥에선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한 번은 모 스타가 내왕하여 옆에 앉아 술시중를 든 적은 있으나 그녀를 특별히 기억해 다음에 부르지도 않았으니 약간의 성형수술에 당시보다 살이 다소 찐 지금은 그 인간이 이 자리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잠시나마 룸에 나간 것은 절대로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영화판에서 좀 뜨면 어떤 개자식이 `저 배우 과거에 텐 프로였다`고 인터넷에 띄울 가능성도 있었다. 그땐 그놈을 또는 그년을 고소하겠다고 하고 사과문을 올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 있었던 사실도 본인의 명예에 흠이 가면 고소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잠시 하며 감독이 발렌타인을 시키는 걸 보며 `돈이 좀 있네` 하는 생각을 다시 하며 약간 흐뭇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팔을 살짝 대는 걸로 친밀감을 표했는데 감독은 예민하게 그것을 캐치해 주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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