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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신사(181) - 나한테 어느 정도 돈을 쓸 건데?

서석훈
  • 입력 2013.11.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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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나한테 어느 정도 돈을 쓸 건데?



40대의 동영상제작자는 여자 종업원을 불러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여배우 미나는, 우리의 감독이 예전에 손수 계산한 적도 드물었지만 계산할 땐 주로 현금을 사용한 걸 기억해냈다. 아마도 카드조차 발급받지 못하는 신용 9등급인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 떡하니 카드를 꺼내, 보기에도 일반 카드가 아닌 금빛 나는 프리미엄처럼 보이는 카드를 꺼내 손수 계산하기 번거롭다는 듯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결제해오라고만 하니 웬만한 자신감 아니고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미나는 종업원이 성이 난 표정으로 달려와 `카드 안 되는데요. 한도 초과인데요.` 하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가 담뿍 미소 띤 얼굴로 영수증을 가져와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는 걸 보고, 감독이 거만하게 한 손으로 받으며 지갑에서 만원 권 두 장을 꺼내 여인에게 건네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업원 여인은 아까 중간에 2만원 받은 게 있는데, 이 자가 잊어버리고 또 주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황급히 받아 고개를 수그리고 내빼고 말았다. 동석한 여인이 아까 드리지 않았냐고 한 마디 할까 두려운 듯했다. 종업원 여인에게 술값의 약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이 정도 돈을 푸는데 자신에게는 어느 정도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는지 사뭇 궁금했다. 그 예산엔 음식값과 술값 외에 현금증여도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씀씀이로 볼 때 미나는 감독을 지나치게 냉대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이 다시 절실하게 들었다. 감독이 신발을 신고 나서자 미나는 다소곳이 그를 따랐다.
감독은 식당을 나오자마자 일단 담배 한 대를 꼬나물었다. ‘아무데나 금연이야.“ 하며 오래 참았다는 듯 연기를 맛있게 내뿜었다. 감독은 처음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손을 덜덜 떨면서 꺼내 물던 담배의 맛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붕 뜨는 몸에 담배연기가 들어가자 하늘로 둥둥 떠가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경마에서 쌍승식을 맞췄을 때의 기분이 그러할까? 이제는 제법 여유를 가지고 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가기까지 하면서 담배를 즐기게 되었다. 주머니에 돈이 넉넉한데 뭐가 그리 급하리오. 이 돈을 그러나 가끔은 잊고 있을 때가 좋았다. 다른 일이나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잊어먹고 있다가 갑자기 `아 참 내겐 돈이 엄청 있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거나 `그럼 이번에는 뭘 하지?` 하고 고민 아닌 고민을 할 때의 기분을 수시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는 미나라는 여배우를 어디로 모실까? 모셔서 자진해서 자신을 방기하는 수준에 이르게 할까 생각하였다. 돌아보니 그녀는 절대로 그의 곁을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확고부동하게 서 있었다. 오 이 자태, 어둠 속에서도 드러나는 탐스러운 몸의 굴곡, 공기를 통해 전해오는 젊은 여인의 향취. 감독은 비틀거리듯 겨우 서 있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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