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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80) - 날 절대 포기하지 마

서석훈
  • 입력 2013.11.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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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날 절대 포기하지 마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복권 당첨금 중 현금 3백과 일일 한도 500의 체크카드를 갖고 있었으므로 돈에 관해서만은 초조함이 없었다. 그 동안 이 돈 때문에 작업이 더뎌지거나 지장을 받은 게 한 두 번이었던가. 레스토랑에 모셔야 할 걸 순두부집으로 갔고, 호텔로 모셔야 할 걸 모텔로 데려갔고, 승용차로 모셔야 할 걸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배웅하였던 것이다. 해서 다음 데이트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물론 허영심이 덜하고 순정이 있는 여자라면 남자의 그런 모습에서 소탈함과 신중함과 근검정신을 보고 오히려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으나, 사내는 지난 세월 뭔가 자신감 없는 태도로 쭈뼛거리고 위축된 포즈를 취했기에 동정심은 얻을망정 사내다운 믿음성은 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이 있다 보니 그런 어정쩡한 태도는 쏙 들어가 버리고 어딘지 지나치게 뻔뻔하고 여유 있는 모습, 다만 여자를 금방 손에 넣지 못해 안달하는 수컷의 본능만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확실히 돈이 있는 자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달라도 다른 것이 미나가 보기에도 감독의 오늘 모습은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평소의 그 소심하고 돈 드는 일엔 항상 주저하던 그 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토록 노골적으로 집적거리지도 못하던 위인이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 이 자의 행태를 유심히 보면서 그와 함께 드러나는 허점을 살피며, 상황에 따라 역으로 치고 가면 건질 것도 없지 않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감독은 이 자리에서의 수작과 미미한 접촉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이 자리는 대충 마무리 짓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를 바랐다. 흔히 식사 후의 이동자리는 찻집이나 분위기 있는 와인 바 같은 데가 떠오르겠지만 남자는 그러한 정상코스로는 여자를 감격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하여, 이벤트성은 아니지만 획기적인, 깜짝 놀랄, 미처 생각 못한, 상상도 못한 그런 게 뭐 없을까 생각해보고 있었다. 워낙 그런 걸 안 해 본 지라 주워들은 정보도 없는지라 금방 떠오르는 게 없었다. 방문 닫아걸고 여자를 덮치는 짐승들의 행위라면 타블로이드판 기사-거의 기자가 창작한 것 같은-에서 좀 보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하겠는가. 그건 뒷맛이 고약하고 현장에서 추행범으로 잡혀, 복권 탄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위자료 5억을 줘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자는 갑자기 지저분거리던 동작을 일절 멈추고,
`나가지` 하고 목소리를 착 깔았다. 삐졌나? 미나는 이 자가 나를 완전히 포기하면 안 되는 데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다.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정도로 생각하게 해야지, 대가를 줘야겠다고 정도로 생각하게 만들어야지 포기하게 해서는 절대 아니 되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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