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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79) - 배치기로 들어오면 배치기로 돌려주마

서석훈
  • 입력 2013.11.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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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배치기로 들어오면 배치기로 돌려주마



내가 희망이요, 그대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고 있는 이 털투성이 팔이 희망이라고 속삭이고 있는 40대 동영상제작자의 팔을 미나 양은 조용히 들어 원위치에 내려놓았다. 걸친다고 내버려두면 그게 사내를 만족시키는가? 그렇지도 않았다. 가벼운 거절, 거부하는 몸짓, 그런 모습이야 말로 남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이요, 애타게 하는 모습이요, 그 모습을 다른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 지향시켜야겠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조연인지 뭔지 하나 주겠다고, 내 말만 잘 들으면 새 영화의 배역 하나 주겠다고 하는 수작 아닌가. 어디까지 수용하여야 배역이 떨어지는가. 또는 배역을 줄 수밖에 없게 만드는가. 미나 양의 작고 예쁘장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팔이 미냐 양의 어깨에서 원위치로 돌아간 사내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술을 한 잔 마셨다. 다시 용기를 얻으려는 듯 보였다. 그리고 여자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며 그녀의 자세를 제대로 무너뜨리려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가끔 이런 자리에서 사내의 면상에 술을 퍼붓는다거나, 술상을 엎는다거나 또는 그곳을 발로 걷어찬다거나 또는 팔을 이빨로 물어뜯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읽거나 본 적이 있다. 살펴보건대 그러한 행위의 목적은, 방어 차원을 넘어 폭력성을 가미함으로써 남자의 행위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속셈으로 봄이 무난하다. 그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남자가 들이댄 그 상황이 어찌 진정한 심각성을 얻게 되리오. 우리는,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이 크게 공격받았음을 상대에게 알리고, 식당에 알리고, 만천하에 알려 그토록 가치가 높은 자신의 정신과 육체에 대한 어떤 도전도 감히 허용하지 않겠다는 위용을 뽐내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여차한 앞날의 소송 내지는 분쟁에 대해 근거를 확보하려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때는 술을 마셨다. 폭력정인 남성 앞에서 수비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이런 말이 쉽게 통하겠는가. 말이건 행동이건 근거를 마련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진정으로 폭력적인 남자 앞에서는 이러한 공격적 방어가 통하지 않는다 하겠으니, 바로 신고를 해야 함이 마땅하다. 허나 상당수 남자들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자들이라 이들은 이리 메치면 이리 넘어가고 저리 메치면 저리 넘어가는 존재라 하겠다.
미나는 그러나 이 자리에서 위에 열거한 그러한 방법들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팔을 돌려줌으로써, 다리를 걸고 넘어오더라도 다시 다리를 돌려주고, 배치기로 들어오면 배치기로 돌려주고, 머리를 들이밀면 손바닥으로 머리를 밀어내는 걸로 갈음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사내는 술을 한 잔 받아 마신 미나가 어느 정도 경계심이 풀어졌을 거로 보고 다시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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