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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78) - 털 난 남자의 팔이 여자의 희망인가?

서석훈
  • 입력 2013.11.1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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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털 난 남자의 팔이 여자의 희망인가?


우리는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신인에서 벗어났으나 제대로 뜨지를 못한 영화배우 미나 양과 저녁 식사를 하며 수작을 부리는 걸 보고 있다. 우리는 말리기는커녕 어서 진도가 나가라고 응원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잔인한 심성과 끝간데 없는 상상력은 부드러운 진행과 낭만적 속삭임보다는 반항하는 여자를 거칠게 제압하거나 또는 반대로 미적지근한 남자를 세차게 몰아치는 여성상위의 기개를 보여주기 바란다. 말하자면 평범한 진행보다는 극적인 요소가 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뭐하러 시간 아깝게 글 따위를 읽고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 건 억지가 아닐 것이다. 꼭 그러해서가 아니라 두 남녀의 성격과 기질, 처해진 상황 등을 살펴볼 때 어느 정도 파국적인 결과가 예상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돌아가서, 두 남녀가 술을 몇 잔 마신 상태로 돌아가서 미나가 하는 애기를 들어보자. “감독님, 감독님은 예술을 하시는 분이지만 솔직히 전 예술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죠. 그런 배우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선 배역이 주어줘야 뭐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 기회조차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으면 어떤 가능성 있는 배우도 그냥 인생낙오자일 뿐일 거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독님.”
감독은 무슨 인생 강좌를 듣고 있는 것처럼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여하에 따라 오늘밤의 성과가 달려 있다는 듯 눈을 감고 지그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러다 번쩍 눈을 뜨고 미나의 가슴에 눈길을 빠르게 줬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걸 허송세월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배우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에요. 만약 재능을 몰라보는 감독이 덜컥 주연 여배우를 시켜줬다고 합시다. 못 뜨면요? 주연을 맡겨줘도 영화를 살리지 못하는 배우라는 소리를 들으면요? 그땐 앞으로의 모든 가능성이 닫히는 겁니다. 조연도 제대로만 맞으면 뜨는 게 요즘 세상입니다. 세상은 조연을 원합니다. 그걸 아셔야 해요. 미나씨.” 감독은 성자가 된 수캐처럼 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감독님의 예술관은 정말 적어두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게도 희망이 있다 이건가요?” “희망은 만드는 겁니다. 있는 게 아니죠.” 어서 희망을 만들라고 하는 동영상 감독의 눈이 불타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미나의 가슴에서 허벅지로 은밀하고 분방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미나는 이윽고 감독이 슬그머니 다가와 어깨에 한쪽 팔을 걸치는 걸 보고 있었다. 감독은 자기의 털 난 팔이 바로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팔이 희망이면 거긴 희망봉인가. 미나 양은 남자란 짐승이긴 하지만 실은 어리석은 짐승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게 뭔지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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