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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룸비니 들판의 농부와 축생들

김홍성 시인
  • 입력 2019.11.07 08:12
  • 수정 2020.12.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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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건만 나락을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 치는 여성들의 행렬은 여전히 농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새들도 더는 날기 어려워 보금자리에 들기까지 종종종 종종종 굵은 땀방울 뿌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나락을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 치는 여성들의 행렬과 염소들. 

 

먼동이 트자 룸비니 평원의 새들이 날아오른다. 부스스한 얼굴로 끼룩 끼룩 배고픈 투정을 해대면서 하늘을 날기 시작한 그 시간에 지평선 여기저기 납작하게 엎드린 마을의 농가들도 하나하나 깨어난다. 연장을 어깨에 둘러멘 농부들이 소를 몰고 나오면 룸비니 평원도 깨어나기 시작한다.

 

북쪽에는 히말라야라고 부르는 설산이 길게 누워있지만 동 서 남 세 방향은 일망무제의 지평선이다. 경작지는 그 지평선으로 이어지면서 대평원을 이룬다. 그 넓은 땅에 발목을 잡혀서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살아온 농부들 중에는 그 땅을 감옥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21세기 첨단 문명국의 도회지 생활에 넌더리가 난 나에게는 얼마나 싱그럽고 거룩한 땅인가. 엎드려 절하고 싶고, 춤을 추고 싶고, 벌렁 눕고 싶고, 그냥 겅중겅중 뛰어 보고 싶기도 하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발길에 차이는 밭두렁. 나락을 훔치러 나온 들쥐들. 달아나는 뱀. 아직 어린 새들이 사는 둥지. 마을에서 기르는 비둘기들이 떼 지어 나는 하늘. 새털구름 사이로 조각달도 보인다. 맨 하늘 아래 맨 땅이 있고, 지평선이 있고 드문드문 나무가 서있는 단순한 무대, 이 광활한 무대 곳곳에 어느새 농부들이 등장하여 느릿느릿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다.

 

관객인 나는 객석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무대를 종횡무진 쏘다닐 수 있다. 무대가 워낙 넓기 때문에 나 하나쯤은 연출가의 연출에 전혀 방해 되지 않는다. 무대, 연출, 등장, 퇴장, 객석, 관객……. 이런 단어들은 지금 그 상황을 설명하고자 어쩔 수 없이 동원하는 개념이다. 들판 한가운데 있을 때는 가끔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정신을 차리면,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걸 의식하면, 밀레나 고흐의 그림 또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들이 속했던 풍경 속에 내가 속해 있다고 느끼지만 그들의 감동과 나의 감동은 별개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평선을 향해 셔터를 눌러댄다. 지평선 또는 공제선은 단순한 기하학적 선이 아니다. 거기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상징들이 점점이 박혀 있고 겹겹이 둘러져 있다. 때로는 뒤죽박죽 엉켜 있기도 하다.

 

소 먹일 밀기울을 담은 자루와 사람이 먹을 참이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오는 아낙네들이 나타났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인 듯하다. 밭 갈던 소를 세워 두고 여자들이 머리 위에 이고 온 짐을 내려주는 남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이리라. 그들은 밭두렁에 걸터앉는다.

참을 이고 온 부인들과 일하던 농부들
부인들이 참을 이고 왔다.  
밭 가는 소는 의젓하다.
의젓한 흰소. 

 

농주라도 한 사발 얻어 마시고 싶은 욕심에 슬며시 다가갔더니 영감님이 와서 앉으라며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들이 나에게 따라 준 것은 그러나 농주가 아니라 설탕을 듬뿍 넣은 생강차이다. 새벽의 들에서 얻어 마시는 따끈한 생강차 맛. 집나갔던 아들도 이 맛을 못 잊어 고향에 돌아와 밭을 갈며 늙을지도 모른다. 영감님은 검은 물소의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도 내게 권했으나 그것까지 얻어먹기는 미안해서 사양했다.

 

룸비니의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반 이상은 소작농이라고 들었다. 룸비니 인근의 어떤 지주는 세 개의 자연 부락을 포함하는 드넓은 땅을 소유하고서 부락민 전체를 소작인으로 두고 있다고도 했다. 소출이 10 이면 지주 4 소작인 6 으로 나눈다고 했다. 전에는 5:5 이었다니 네팔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설 만도 했구나 싶다.

 

지하 조직을 결성하고 인민 전쟁을 선포하고 무장 투쟁을 하다가 기존 정당과 연합하여 왕정을 몰아내고 총선에서 승리한 네팔 공산당은 그러나 얼마 못가서 국민들의 신임을 잃고 수상 직마저 내놓았다. 이후 여러 정당이 뒤엉켜 정권을 놓고 각축전을 벌인다. 그러면서 물가가 치솟고 인심이 사나워진다.

 

그런 저런 세상일도 이 들판의 농부들에게는 대수롭지 않다. 농부들은, 세상은 세상대로 가고 나는 나대로 간다는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농본주의 철학에 입각하여 소를 몰고 밭을 가는 것이다.

 

쌀을 추수한 밭에 밀을 파종하는 농부.

 

가난하면서도 큰 욕심내지 않고 이웃에게 훈훈한 사람들을 여러번 보았다. 가난한 농부, 또는 청소부거나 행상이면서 환하게 웃고 사는 분들을 만나면 저렇게만 살면 되겠다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도 그들처럼 자족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송아지가 어미 소 따라 다니듯, 참을 이고 들일 나가는 엄마를 따라나선 어린 소년도 보인다. 논두렁길이 좁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줄로 걷는 모자를 바라보자니 구슬픈 옛 노래가 떠오른다. 들에는 노래하며 씨 뿌리는 농부도 있다. 나직하게 반복해서 읊조리는 단조로운 노래였다. 그 노래는 씨로 하여금 새에게 먹히지 않게 흙 속에 잘 숨어서 기필코 발아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라는 주문인지도 모른다.

 

룸비니의 농부들은 이모작을 한다. 우기가 시작되는 오뉴월에 벼를 심고, 건기가 시작되는 이 늦가을에 벼를 수확한 후 곧장 보리를 파종하고 밭을 갈아엎는 것이다. 한 농부에 의하면, 이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모두 자랑스러운 회교도이다. 룸비니 개발 위원회(LDT)가 관리하는 룸비니 국제 사원 구역의 드넓은 부지도 LDT가 접수하기 이전에는 회교도들의 농지였다고 한다.

 

그는 근접 촬영에도 선선히 응했다. 카메라를 겨누자 회교지도자 호메이니 같은 표정을 짓는다. 촬영에 응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니 근엄한 얼굴로 말한다. 남자들과 어린이의 사진은 얼마든지 찍어도 좋지만 여성들의 얼굴에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라고. 회교도 여인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차도르라는 검은 베일로 가리는 풍습과 관련시켜서 이해할 수 있는 충고였다.

쇠똥에 짚을 섞어 반죽하여 햇볕에 말린 후 연료로 쓴다.

 

야생 오리 떼가 노니는 널찍한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주변 야트막한 제방에는 소 먹이기 좋은 풀밭이 있다. 소가 먹고 간 풀밭에는 쇠똥이 쌓인다. 쇠똥은 거름도 되지만 짚을 섞어 잘 반죽하여 말리면 연료가 된다. 잘 마른 쇠똥에서는 중국 운남성의 특산품이라는 보이차 냄새가 난다. 마침 그 저수지의 풀밭에서 쇠똥을 빚어 말리고, 말린 쇠똥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어 나르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얼굴은 까무잡잡하지만 그 미소가 유난히 환한 촌부들의 모습을 내 카메라가 한동안 따라갔다.

 

말린 쇠똥을 머리에 인 부인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자 들에 나왔던 농부들의 모습이 하나둘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아침을 먹는 것이다. 아침 식사 시간은 보통 10시에서 11시 사이다. 아침밥 먹는 시간이 이렇게 늦은 시간으로 굳어진 이유는 날이 밝자마자 들일을 시작하고, 그 해가 뜨거워지기 전까지는 일을 해야 능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저녁 식사 시간도 아주 늦다. 태양의 열기가 한풀 꺾이는 오후에 다시 들로 나와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일해야 하므로 저녁밥은 빨라야 밤 9. 저녁이 아주 늦으면 온 식구가 모조리 수저를 놓자마자 쓰러져 잔다고 한다.

 

해가 뜨거워지고 농부들이 아침을 먹으러 집에 가는 시간에 나는 국제사원구역의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점심을 먹는다. 빨래해 널고 낮잠 한 숨 자고나면 머리를 구워버릴 듯한 태양의 열기가 식는다.

 

다시 들에 나간다. 오후에는 고호의 그림처럼 태양이 이글거리는 지평선 아래 불타는 듯한 들이 펼쳐져 있다. 이미 추수를 끝낸 밭에는 소년들이 검은 물소나 염소들을 몰고 나와 꼴을 먹인다. 소녀들도 있다. 물소는 겁이 많고 순하다. 일을 시키지는 않는 대신 젖을 짠다. 고기도 먹는다.

 

낭하(검은 물소) 잔등에 편안히 앉은 소녀들과 개구장이 소년들.

 

소년들은 검은 물소의 넓적한 등에 걸터앉는 것은 물론 등판 위에 팔베개를 하고 드러눕기도 한다. 등판 위에 두 다리를 뻗고 우뚝 서서 두 팔을 들기도 한다. 염소를 데리고 나온 아이들도 사진 찍히기를 선망하여 온갖 포즈를 다 취해 준다. 염소수염을 잡아당겨 뽀뽀도 하고,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기도 하고, 새끼 염소를 머리 위에 모자처럼 앉히기도 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나락을 운반하는 여성들이 나타난다. 나락 뭉텅이가 얼마나 큰지 그 밑에서 걷는 여성들이 보이지 않아 나락들끼리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집안의 여성들은 총출동이다. 남자들은 밭에서 나락을 베고 있다가 여성들이 오면 나락을 엮어 머리에 이어주고, 다 떠나보낸 후에는 다시 나락을 벤다.

 

나락을 머리에 이어 나르는 부인들. 큰 나무는 보리수,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망고나무다.

짐을 머리 위에 이었을 때의 걸음이 맨 몸일 때보다 더 잰 여성들. 한 번 머리에서 떨어뜨리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다시 머리에 일수가 없기 때문에 나락을 이자마자 종종걸음을 쳐야 한다. 마을의 타작마당에 갈 때까지 쉬지도 못한다.

 

좁은 농로를 종종종 종종종 잘도 걷는다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린다. 땀방울이 길에 떨어져 흙을 적시는 게 보인다. 나락에 반쯤 가려진 얼굴은 땅만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 든 사내를 보고 놀라서 넘어지지나 않을지 걱정되어 멀찍이 물러났다. 지평선으로 해가 가라앉을 때까지 종종종 종종종 땀방울로 적시며 맨발로 다진 농로이기에 길바닥은 살결처럼 부드럽다.

 

도로가 가까운 들에는 소가 끄는 커다란 수레를 세워놓고 딸들이 이고 오는 나락을 달구지에 올려 쌓는 농부도 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높게 쌓아 올린 나락 위에 우뚝 서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내가 멈칫거리자 발밑의 나락 한단을 양 손에 안아 드는 자발적인 연출도 해준다. 그는 자신의 땀으로 일군 땅에서 얻은 소출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수확이 자랑스러운 이 농부는 발밑의 나락 한 더미를 안아 올렸다.

 

의젓하고 듬직한 두 마리의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수레에 탄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일만큼 나락을 가득 실었기에 무거워서 빨리 가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했는데 내 걸음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웠다. 포기하고 그새 뻘뻘 흘린 땀을 식히며 숨을 고르는 중에 소가 끄는 수레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건만 나락을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 치는 여성들의 행렬은 여전히 농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새들도 더는 날기 어려워 보금자리에 들기까지 종종종 종종종 굵은 땀방울 뿌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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