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15 ] 깊은 잠이 그리워서

김홍성 시인
  • 입력 2019.11.05 07:30
  • 수정 2021.03.27 09: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 트기 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수많은 절에서 빛살처럼 어둠을 뚫고 건너오는 종소리는 내 마음에 공명을 일으켜 죽 솥에 눌어붙은 누룽지 같은 근심을 조금씩 조끔씩 떨어낸다.

ⓒ 김홍성 

 

깊은 잠이 그리워서 절을 찾았던 적이 있다. 네팔 땅, 룸비니의 대성석가사. 오갈 데 없었던 한 시절을 그 절에서 기숙했던 인연을 믿고 찾아간 것인데 주지 스님은 식구처럼 반기며 전에 내가 쓰던 방을 내주었다.

출국 전의 나는 심한 불면에 시달리고있었다. 불면 초기에는잠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자다가 깨면 깨는 대로, 책상에 앉아있었다. 읽을 책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으니 '잠 안 오는 밤은 얼마나 다행이냐' 생각하면서 동 틀 때까지 책상에 앉아있었다. 불후의 명작을 쓰고 있다는 자부심도 들었지만 그렇게 써서 모은 글을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한숨이 나왔다.

출판된 책은 팔리지 않아 출판사 사장 볼 면목이 안 섰다. 그러다 보니 잠은 점점 더 안 오고, 일도 안 되고, 짜증은 늘고 ……. 그야말로 모든 걸 잊고 잠이라도 푹 자고 싶어서, 아니 살고 싶어서 도망치듯 다시 네팔을 찾아갔다.

ⓒ김홍성 

 

네팔에 도착한 후, 우선 히말라야 산길을 스무 날 가량 걸었다. 마을에 들러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쉬엄쉬엄 계속해서 산길을 걸었다. 날이 새기 무섭게 길에 나서서 걷다가 적당한 주막집에 들어가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걷다가 어둡기 전에 여장을 풀고 쉬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환청일 수밖에 없는 모바일 폰 소리가 문득문득 들렸으나 사나흘이 지나자 들리지 않았다. 냉혹한 비난이나 비웃음과 함께 비통하게 엉켜들던 수많은 상념도 서서히 가라앉더니 어느 날 밤부터는 저절로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한뎃잠이나 다를 바 없는 산촌 주막의 헛간 같은 방에서 자는 잠이라 편하지는 않았어도 제법 달콤한 꿈도 꾸면서 잤다. 그러나 귀국을 위해 산길을 벗어나 카트만두로 나오기 전 날부터는 다시 잠이 달아났다. 하루 이틀은 견딜 수 있었으나 사흘 밤을 그렇게 못 자고 나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쳤는데 신경은 바지직 바지직 타들어가는 듯 예민해져 있었다.

ⓒ김홍성 

 

그래도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렇게 카트만두 시내를 무작정 걷다가 길가에서 지압 시술소를 발견했다. 나는 망설임도 없이 어둑한 계단 꼭대기에 있는 그 집 문을 열었다. 벽에 설산을 배경으로 한 호수 그림이 인체해부도와 함께 걸려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 스피커에서는 명상 음악이 낮게 흘러나왔다.

금슬 좋아 보이는 현지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부인의 안내로 지압침대에 누웠다. 남편의 손이 내 발목 관절을 잡았다. 이내 감동을 느꼈다. 아픈 곳, 저린 곳, 쓰라린 곳, 멍멍한 곳을 차례차례 짚어가며 누르고 문지르고 두드리고 살짝 비틀고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나를 혼곤한 잠에 빠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날부터 사흘 동안 하루에 90분 씩 지압을 받았다. 그러면 30분 정도는 달게 잘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엎드리게 하고, 그 다음에는 바로 눕게 하고, 마지막 단계에 일으켜 앉혀서 몸통을 비틀고 목과 머리를 만지기 때문에 깊은 잠을 지속할 수가 없는 게 흠이지만 그렇게라도 한숨 자고 나니 신경이 누그러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맑은 정신에 생각해 보니 귀국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귀국을 위해 카트만두에 온 결과 잠이 안 오는 것이라면 귀국 후에는 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릴 것이 뻔했다. 나는 더 걸어야 했다. 걷고 또 걸어서 현실에 적응하고 고유의 생체 리듬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내가 고향처럼 생각하는 땅, 즉 룸비니였다.

ⓒ김홍성 

 

나이 먹을수록 새벽잠이 없어지는 건 근심이 많아지는 탓이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나처럼 초년에 담배를 배운 골초들은 나이 먹을수록 점점 더 니코틴에 중독된 나머지 니코틴 약발이 떨어지면 잠을 깬다. 자기 전에 아무리 충분히 흡입하고 자도 한밤중에 깨서 다시 흡입해야 잘 수 있는 시절에는 머리맡에 큼직한 재떨이와 담뱃갑을 모시고 잤던 적도 있으니 흡연 욕구도 잠을 깨는 원인인 것이 분명하다.

술이 설취해서 잔 이튿날도 꼭두새벽에 잠을 깬다. 목이 말라서 술이든 물이든 마시기 위해서 깨지만, 전립선이나 방광의 이상 또는 관절염 등에서 오는 고통으로 잠을 깨기도 한다. 니코틴과 알코올 동시 중독, 전립선 비대, 지방간, 관절염, 그리고 산란한 꿈과 근심이 총화 단결하여 잠을 깨우는 것인데, 잠 깬 자리가 절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나에게 절이라는 곳은 잠을 못 자도 안심이 되는 곳이었던 것이다. 특히 룸비니의 대성석가사가 그렇다.

동 트기 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수많은 절에서 빛살처럼 어둠을 뚫고 건너오는 종소리는 내 마음에 공명을 일으켜 죽 솥에 눌어붙은 누룽지 같은 근심을 조금씩 조끔씩 떨어낸다. 그 때 쯤 법당에서 목탁 소리가 나고, 주지 스님은 염불 하며 도량석을 시작한다.

ⓒ김홍성 

 

한여름이 지나면 예불이 끝나도 아직 캄캄하다. 예불은 4시에 시작하여 5시 전에 끝나기 때문에 아침 공양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아 있다. 이 한 시간 동안 첫 산책을 나선다.

정문을 나서면 별들이 가득한 하늘, 때로는 안개가 자욱하여 길마저 희미한데, 어디선가 배고픈 새들이 울기 시작하고, 새들의 울음소리는 정문 앞 중국 절에서 쿵쿵 울리는 큰북 소리에 묻힌다.

나는 걷는다. 내 발길은 우선 서쪽으로 향한다. 어둑한 들이 있고, 지평선이 있고, 기우는 보름달이 있고, 들 가운데 보리수가 있는 서쪽이슬에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논두렁길을 걸어 보리수에 다녀오는 중에 일출이 시작된다. 내가 살았던 10 여 년 전에 기초 공사를 시작하여 겨우 형태를 갖춘 대성석가사 대웅전 너머로 붉은 햇살이 뻗친다.

나의 아침 산책은 그 대웅전의 난간에서 마무리 된다. 운 좋은 날은 설산 다울라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운이 더 좋은 날은 그 설산을 넘어온 황새들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절 밥을 먹으면서 예불을 안 하면 눈치가 보이는 법이라 조석 예불을 빠짐없이 드리면서 걸었다. 예불 마친 새벽은 물론, 아침 공양 마친 후에 또 걷다가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입은 옷을 빨아서 널었다.

먼지와 땀에 전 옷가지를 욕실의 고무 함지에 뭉쳐 넣고 물을 틀어 적신 다음에 세제를 뿌리고 한참 발로 밟은 후에 몇 차례 헹궈서 널면 해가 채 기울기 전에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뜨거운 햇살에 빨래가 마르는 동안 낮잠도 자고, 임자 없는 헌 책도 읽다가 태양의 열기가 좀 누그러지면 저녁 공양 시간까지 다시 걸었다. 저녁을 먹고는 곧 예불이 시작되므로 멀리 걸을 수 없어서 절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김홍성 

 

대성석가사는 네팔 정부가 주도하는 룸비니개발위원회에서 십 수 년 전에 개발한 국제사원구역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둘레를 한 바퀴 빙 도는 데 너 댓 시간 족히 걸린다. 그리고 그 둘레로 난 길 밖은 광막한 들판이다.

북쪽 들판은 그 뒤에 히말라야 연봉이 늘어서 있으며 나머지 세 방향은 지평선까지 경작지가 이어진다. 경작지 가운데는 여러 마을들이 듬성듬성 낮게 엎드려 있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로들이 경작지 사이로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나는 관광객들로 번잡스러울 때가 많은 룸비니 국제사원 구역 내부에 조성된 산책로보다는 구역 밖 사방팔방으로 끝없이 뻗어 나간 옛길과 그 주변의 풍광을 좋아했다. 특히 인도와 접경을 이룬 지평선을 향해 가는 길가의 경작지와 마을과 장터와 선술집들이 이루는 풍광이 좋았다. 나는 그런 풍광 속을 날마다 걸었다.

열흘인지 보름인지 모르도록 터덜터덜, 느릿느릿, 날마다 걷고 난 어느 새벽에 나는 그토록 그리던 깊은 잠을 이루며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잠을 방해하던 무엇이 안개가 흩어지듯 저절로 흩어진 것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전처럼 심한 불면으로 고통 받는 일은 없다. 그러나 깊은 잠을 못 자고 얕고 짧은 잠을 자는 것은 여전하다. 한밤중에 깨어나면 어쩔 수 없이 들추는 책들 중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몇 구절을 소개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행진하는 대열 속에서 보조를 맞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북소리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던,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