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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72) - 잔을 부딪쳤으니, 밤의 시작이었다

서석훈
  • 입력 2013.09.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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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잔을 부딪쳤으니, 밤의 시작이었다


동영상 제작자와 여배우가 고급일식집에 자리를 잡은 것은 저녁 6시 40분 경이었다.
회사원들은 보통 7시 넘어야 회식을 하거나 이러한 곳에서 데이트를 하는데, 회사원이 아닌 이들, 특히 예술 쪽 사람은 그보다 좀 더 일찍 이러한 곳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 것이 일번적인 경향이라고 하겠다. 물론 시인이나 화가나 이런 자들은 대낮부터 마시기 일쑤이고 일부 부유한 여인들도 때로는 대낮부터 와인 파티를 연다고 하나 그런 예외는 예외로 두고 단지 이 두 사람 의 경우엔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뭐가 좋나요?”
보통은 이러한 질문을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뭐가 좋기만 하면 금액과 상관없이 가져오라는 말이 담긴 이러한 질문은 함부로 했다간 덤태기를 쓰기 마련이었다. 무론 주위에 동료가 있어 종업원의 추천 음식에 대해 적당히 제지도 하고 다른 적당한 값의 음식으로 대체도 시키고 하는데, 특히 오래된 연인이거니 부부이거나(부부라면 이런데 오지 않는다. 그들은 동네에서 퍼질러 앉아 먹는다)도 바로 제지가 들어가지만, 이렇게 적당히 알고 지내는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사이라면 종업원이 뭘 추천하든 남자가 뭘 시키든 여자는 통상 가만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종업원은 당연히 ‘자연산 특 코스’라는 걸 추천했고 이는 흔쾌히 받아들여져 이제는 술만이 남았는데 남자는 태연히 양주 작은 거 하나를 시키는 거였다. 여기서 민아는 굉장히 놀랐다 .왜냐하면 이런 집에서는 그녀가 봐온 바로는 사내들이 자동차에 양주를 싣고 다니며 가져 와 마시지, 여기서 양주를 시키는 이러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즉 감독이 무슨 계약 건을 따냈거나 선금을 받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위였다.
민아는 돈이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남의 돈을 아까워하면 정든다는데... 민아는 잠시 부끄러워졌다. 물론 그녀는 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돈을 차비 하라고 자기를 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긴 이러 정도의 씀씀이라면 차비 뿐 아니라 용돈까지 찔러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민아는 본격적으로 음식이 나오기 전 가볍게
싱싱한 회 몇 조각이 나오고 양주가 얼음과 함께 나오자 평소 하던 솜씨를 부려 일단 한 잔 따라 감독에게 건네고 자기 잔에도 부어 잔을 쨍 하고 부딪쳤다. 잔을 부딪쳤으니 이제 밤의 시작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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