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당나귀 신사(171) - 사 준 만큼만 가져라

서석훈
  • 입력 2013.09.07 15: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영창(소설가, 시인)

사 준 만큼만 가져라


여배우 민아는 동영상제작자 즉 영화감독이라고 부르는 남자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여자들끼리는 스파게티니 피자니 하여튼 서양음식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있을 리 없지만, 남자들이 그러한 데 가는 걸 본 적이 없으므로 그런 음식에 대한 기대일랑 접고 뼈다귀 해장국이나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잠깐 눈을 의심한 것이, 감독은 간판도 세련된 일식집으로 향한 것이다. 이러한 일식집은 동네 어귀에 있는 동해수산이니 싱싱해산이니 그러한, 커다란 유리창 안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가 있고 밖의 수족관에는 광어니 도다리니 하는 것들이 돌아다니는 그런 집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우선 뭐 드시겠냐고 큰 소리로 묻는 아줌마 대신 은박 메뉴판을 올리며 ‘오늘은 무엇 무엇이 좋습니다’ 하고 나긋한 여자가 소곤소곤한 목소리로 말씀을 올리는데 그 가격을 보면 대략 1인당 10만원은 하는 것으로 ‘우리는 손님이 이 정도 돈은 아낌없이 내놓는 분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는 듯한 표정으로 종업원은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민아가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4인용 또는 8인용 식탁에, 양 다리를 방 한가운데 푹 꺼진 공간으로 집어놓고 빙 둘러 들 앉아 먹어본 기억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해진 코스에 따라 음식 하나하나를 모양도 예쁘게 상을 차리는 여인의 섬섬옥수가 전등불 아래 빛을 발하는 그러한 곳에 사내와 한두 번 가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 데려가는 남자의 속셈은 뻔한 것이었다. 더러는 아무데서나 먹이고 아무데서나 작업을 걸어보려는 무식한 놈들이 없는 게 아니지만, 약간의 양식이라도 있다면 사 준 만큼 즉 그녀가 얻어먹은 만큼만 합당하게 가지려고 해야 맞는 것이다. 준 것은 눈곱인데 가지려는 건 뻥튀기여서는 곤란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 이러한 자리에 감독이 그녀를 모시려고 하는 건, 한편으론 그녀의 가치를 평가해 준다는 흐뭇함이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 자리 후에 어떠한 수작을 부려올지 사뭇 두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내를 겪어봤다면 겪어본 민아였다. 감독의 성정으로 볼 때 강제로 덤벼들 용기는 없는 인간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만용이라도 부리는지 기대해보자는 심사도 한 켠엔 있었다. 일단 차려지는 상이니 오랜만에 포식해 볼까. 그리고 혹시 아나, 여기서 중요한 제의를 해올지. 즉 ‘주연을 맡아라’ ‘할리우드 공동 제작이다’ ‘동양의 숨은 진주를 찾는다’ 또는 ‘안젤리나 졸리의 적으로 너를 추천하겠다’ 등 말이다. 민아는 여러 상황이 예상되는 즐거움을 안고 감독을 따라 일식집으로 들어섰다. 이들의 행색을 일별한 지배인이 ‘어서 오십시오’ 하고 지나친 공경은 빼고 활기차게 인사를 하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