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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영 칼럼 淸風明月] 촛불의 꿈은 사그러지는가

김문영 글지
  • 입력 2019.11.02 06:27
  • 수정 2019.12.0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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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만추다. 중부 산간 지역은 겨울로 달려가고 있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간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몹시도 아깝다.

매주는 아니더라도 촛불 집회에 나가면서 3년 전 이맘때 촛불집회에 참여하던 상황이 오버랩된다. 당시 촛불은 이듬해까지 이어져 겨울을 뜨겁게 달궜다. 국정을 농단했던 세력을 처벌하고 정권을 바꿨다. 참으로 대단한 힘이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촛불의 힘이었다.

그때 촛불의 꿈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적폐 청산 평화 번영 통일이었다. 지금도 촛불의 꿈은 변함이 없으리라. 또한 앞으로도 촛불이 밝혀진다면 그 꿈은 변함이 없으리라.

그런데 당시 촛불은 정권은 바꿨어도 적폐는 청산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탄핵 파면되었으면 해당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은 해체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국정농단이라는 적폐 때문에 대통령이 파면되는 혁명이 발생했는데 대통령이 속한 정당은 그대로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그 아이러니는 적폐 세력의 부활을 인정하는 현실이 되었다. 평화 번영 통일의 기대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적폐 청산이라는 나뭇기둥은 내팽개치고 정적들의 비리 파헤치기 곁가지에만 매달려 물어뜯고 할퀴며 생채기 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평화 번영 통일의 큰길로 달려가야 하는데 쓸데없는 곳에 국력을 소진하고 있다. 더 맑아지고 투명해지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진흙탕 싸움만 계속하다 보면 맑아지기는커녕 맑은 물조차 진흙탕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세계는 더 잘살기 위해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각종 규제와 통제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현재 정치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조선 중엽 장례절차를 두고 논쟁을 벌여 정적들을 제거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은 충, 효, 예를 인간 삶의 최고 가치로 삼았다. 조선 현종과 숙종 시절 서인(기호학파)과 남인(영남학파)들은 성리학에 따른 장례 절차를 두고 치열한 정쟁을 펼쳤다. 현상은 율곡 이이를 받드는 서인과 퇴계 이황을 받드는 남인은 서로를 물고 뜯고 할퀴며 생채기를 내는 데 혈안이 되었다.

이를 역사 용어로 예송이라 한다. 예송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와 효종비의 복상 기간을 둘러싸고 일어난 서인과 남인 간의 투쟁을 말한다.

인조는 장자인 소현세자가 죽자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승계한다. 이가 바로 효종이다. 당시 왕위 승계법에 따르면 소현세자의 장자인 석철이 왕위를 이어야 했다.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죽자 그의 아들 현종이 왕위를 잇는다. 이때 효종에 대한 장렬왕후의 복상 기간이 문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논쟁이지만 당시는 정적 간에 사활이 걸린 싸움이었다.

성리학의 <주자가례>에 따르면 부모가 별세했을 때 장자는 삼년상, 차남 이하는 기년상(일년상)을 치르는 것이 예의였다. 당시 서인과 남인은 이에 대한 해석을 달리했다.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은 장렬왕후는 효종의 어머니이므로 신하가 될 수 없으며 둘째 아들이므로 기년상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비록 왕위를 계승했다고 하더라도 사종지설(왕위를 계승하더라도 삼년상을 할 수 없는 경우) 중 체이부정(적자이면서 장자가 아닌 경우)에 해당되어 기년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인의 윤선도, 허적 등은 효종이 비록 둘째 아들이긴 하지만 왕위를 계승하였으므로 장자로 대우하여 삼년상을 치러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누구든지 왕위를 계승하면 어머니도 신하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왕이든 일반인이든 종법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수구 주자학파(보수꼴통)와 왕에게는 일반인과 똑같이 종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탈 주자학파(입진보) 사이의 이념적 차이에서 빚어진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왕위 계승의 정당성과 연결되었다. 서인의 주장대로 종법에 따라야 한다면 왕위를 효종이 아닌 소현세자의 아들이 계승해야 했다. 서인의 주장은 효종을 부정하는 꼴이 되었다. 남인의 윤선도는 이런 논리상의 오류를 지적하며 서인의 송시열, 송길준 등이 역모를 꾀하는 것으로 몰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유선도의 주장은 오히려 송시열 등 서인들을 제거하려는 모함이라는 상소가 받아들여져 보길도로 귀양 가는 신세가 되었다. 현종은 더 이상 예송을 거론치말라고 엄명했다.

그런데 남인 유생들의 윤선도 구명 운동이 일어나 조정에서 끝난 예송이 지방으로 번졌다. 그리고 효종 비 인선왕후가 별세하자 예송 논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갑인예송과 경신대출척으로 이어지면서 정치가 대혼란을 거듭했다.

지난 8월부터 계속된 소위 '조국 대전'을 지켜보면서 몇백 년 전 역사가 떠올려지는 건 왜일까? 울분을 넘어 안타까운 마음 가눌 길 없다. 똥 묻은 개들이 겨 묻은 개를 물어뜯고 할퀴는 모습이 가관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촛불의 꿈은 적폐 청산 평화 번영 통일이다. 이 큰 줄기를 내팽개치고 곁가지 붙들고 아귀다툼을 벌일 시간이 없다. 남북간 철도와 도로도 연결해야 하고 개성공단도 재가동해야 하며 금강산 관광도 재개해야 한다. 백두산도 우리 땅을 밟고 가야 하지 않는가. 촛불이 정권을 바꾼 초기에는 부푼 꿈이 현실이 될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촛불의 꿈을 짓밟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공 안보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촛불의 꿈을 사그러트리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촛불은 이미 다시 불붙었다. 억압의 바람이 거셀수록 촛불은 더 힘차게 활활 타오를 것이다. 횃불로 활활 타올라 혼돈의 정치를 정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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