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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9) - 너의 승리를 축하하는 건 가능한가

서석훈
  • 입력 2010.07.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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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지난 주에 우리는 베팅에 적합한 성격과 기질은 따로 있다는 설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실 우리의 주인공인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성격은 못 바꾸더라도 투자기법만은 좀 달리 할 필요가 있었다.
‘잘 난 척, 다 아는 척, 전문가인 척 하지만 결국 별 볼 일 없더라고.’
이것이 좀 신중해보라는 주위의 충고에 대고 백팔만이 주로 떠들어대는 얘기였다. 백팔만의 얘기대로라면 어차피 복불복인데 그저 되는 대로 베팅하는 게 속 편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래서야 백팔만을 개조시키기는커녕 우리도 투자의 허무에 빠져 들어갈 공산이 크다. 과연 그런가? 전문가와 원숭이를 내세워 주식 종목을 찍게 했더니 원숭이 승률이 더 높았다는 실험 결과에 경악한 투자자들이 그러면, 전문가 대신 원숭이에게 조언을 구하기에 이르렀는가? 그건 아니다. 자칭 전문가들 앞엔 여전히 겸허한 투자자들이 복채를 들고 줄을 선다. 하는 얘기는 똑같다. ‘종목 하나만 찍어 주세요.’ 어째 ‘말 하나만 찍어주세요.’ 하고 그리 닮았는가? 성급한 투자자일수록 진짜 전문가들의 신중한 조언을 놓칠 공산이 크다. 백팔만은 심리 상담사의 치료와 투자 전문가의 조언이 시급한 자였다.
마돈걸은 백팔만에 비하면 영리하게 투자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자라면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최악까지 감안해 투자하는 것이다. 해서 여자와 짝을 이뤄 베팅하면 차비까지 날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자신할 수 있다. 빈털터리가 된 백팔만에게 이렇게 소주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건 역시 여자인 마돈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쓸쓸하고 눈물겨운 자리에 어디선가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의 영웅적인 베팅과 행복한 결과에 대한 자축의 찬탄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술집에 앉아있던 모든 루저들의 못마땅한, 내심 부러운 시선이 한껏 떠들어대는 두 사내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기본 예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루저들을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런 시선으로 째려보는 백팔만의 소매를 마돈걸은 가만히 잡았다. 비록 본인은 졌지만 상대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배포 있는 사내가 되는 건 불가능한가? 이런 책망이 담긴 마돈걸의 시선을 대하고, 백팔만은 미소를 짓고 잔을 들어 올려 축하한다는 뜻의 몸짓을 깍두기처럼 생긴 두 사내에게 보냈다. 이들은 어떻게 베팅했기에 이렇게 승리의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함께 전철을 타자는 마돈걸의 제의를 결연히 물리친 백팔만은 심복 당나귀의 등에 올랐 다. 이 와중에서도 백팔만은 당나귀 식사만은 거르지 않았다. 당나귀가 뭘 알겠는가? 주인이 땄는지 잃었는지? 사촌인 말만 뛰면 왜 환장하는지? 허나 워낙 노련하고 영리한 동물인지라 주인의 기분만은 잽싸게 알아챘다. 당나귀는 오늘밤 매우 조심해서 주인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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