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뜨거운, 그대 촛불의 꿈
굵고 뜨거운, 그대 촛불의 꿈
  • 윤한로 시인
    윤한로 시인 jintar@hanmail.net
  • 승인 2019.10.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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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뜨거운, 그대 촛불의 꿈
김문영 글지의 시집 촛불의 꿈발간에 즈음하여
    
윤 한 로

 

1

그대
온갖 부정부패와 거짓, 모함, 불공정, 억압
들이 설치는 사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무너뜨리는 현실에
시대는 분연히 촛불을 들었다
했다
주름지고 거친 손으로 움켜잡은 촛불과
어리고 여린 손으로 꼬옥 쥔 촛불이 만나
세상을 밝혔다
했다, 그리고
정의와 진실, 양심의 거대한 외침은
마침내 정권을 바꿨다
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역사의 대변혁을 일으켰다
노래했다

, 그러던 촛불은
한때 한갓 꿈
허무한 바램에 지나지 않았을까

적폐와 모순, 허위, 부패는
다시 또 그 더러운 민낯
......
천박한 천민자본주의는
여전히 이 나라 이 땅 깊은 곳에
......
그대 부르짖는다, 아파한다
새로운 경계를 요구하는
추상어들이 만들어지고
부정부패 세력을 비호하는
음모가 이어지고, 악다구니
반란의 언어들에 난도질당하는 현실
그대 안타까워한다, 비통해한다
그래서 그대 촛불 위엔
추적추적, 찬 겨울비만 내리는구나
노심초사, 애달픔만 가득하구나

2

이제 그대
누구누구누구들처럼
아름답게 쓰질 못하는구나
이제 그대
누구누구누구들처럼
깜짝 놀래킬 줄도 모르는구나
이제 그대
누구누구누구들처럼
째지게 즐겁거나, 째지게 재미있게
사람 홀릴 줄도 모르는구나
이제 그대
누구누구누구들처럼
지적 자극인지 나발인지
도통 불러일으킬 줄도 모르는구나

그대 굵고 뜨겁게
아파할 뿐
대 굵고 뜨겁게
눈물 흘릴 뿐
그대 굵고 뜨겁게
외칠 뿐
그대 애오라지
굵고 뜨겁게 쓸 뿐, 쏟을 뿐

그대 아직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기

3

그대 시 부럽다
싯누런 똥 몇 바가지나 퍼먹었길래
이렇게 올곧은가
투박스러운가 싱그러운가
정제되지 못한 단어의 나열
상투적 비유, 억제할 수 없는
감정, 울분, 애통
그대 미리사
시다운 시가 아닐 수도 있다
스스로 비시 시첩이라!
아니다 아니다, 자꾸 그러지 마라
화가 난다
그대 시는, 그대 시집은
못쓴 시, 같잖은 시집 아니라
개도 소도 다 쓰는 시, 아니기
다 내는 시집, 아니기
비시比詩 시첩詩帖이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뇌, 양심에서 솟아올라
목청껏 외칠 수밖에 없는
열렬한 참여, 실천
둔탁한 실재이다
저들!
세련, 교묘, 화려, 현란, 기발 따위가
어떻게 감히 미칠 수 있겠는가
진정성이고 치열함이다
후련하게 갈겨쓴 악필
몰매처럼 쏟아지는 짱돌이다, 그대 시

결코 아름답지 않다
다만, 옳을 뿐이다

4

그러나 그대
정의롭고 선량하고 진실하고 분노하고
양심적이고 애달프고 치열하고 열렬하고
하는 것들
왠지 어울리지 않아
그대 주먹코에 메기입에 작달막
워낙 못나지 않았나
빌어먹을,
청풍 골짜기에 무두룩 틀어박혀
감자 심고 고추나 짓쟈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철철철 똥장군이나 지쟈
그까짓 시

 


시작 메모
이번에 친구 김문영 글지의 시를 읽으며, 정말 굵고 뜨겁구나, 무엇보다 옳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 삶 자체가 굵고 뜨겁고 옳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한가지 더, 진정한 참여는 순수보다 더 순수하다는 걸 깨달았다.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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