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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8) - 나의 성격과 기질은?

서석훈
  • 입력 2010.07.0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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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토요일의 마지막 레이스가 끝난 밤 시간, 오늘의 경기를 돌아보고 내일의 경기를 점쳐보며 동료와 함께 하는 소박한 술자리는 경마팬이라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도 돈을 잃었다고 한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일은 기필코 승리하리라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생이란 어차피 하나의 긴 승부임을 새삼 깨달으며, 경기 도중 내내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했던 가슴을 동료와 함께 찬 술로 식히는 이 정화의 시간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동료를 보고 있자면 심지어, 우리의 운명이 이와 같이 엮여 흘러가는구나 하는 감회마저 들며 숙연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당나귀 신사 백팔만도, 절친한 여동생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미모의 동료 마돈걸과 파전에 막걸리를 한 잔하는 이 시간이 (귀에는 지축을 울렸던 말발굽 소리가 아직도 메아리치고 있지만) 눈물 날만큼 따뜻하게 다가왔다. 오늘 전 레이스를 통틀어 단 한 레이스도 못 건지고 큰돈을 잃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건진 건 바로 눈앞의 여자 마돈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팔만은 냉정한 승부사라기보다는 감정에 자주 휘둘리고 바람에 날리는 비닐 한 조각만 봐도 쓸데없이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루저가 되어서도 오늘의 경기에서 교훈을 끌어낼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지금 내 앞에 한 여자가 있다는 걸로 뭐가 부족한가 하는 감상에 젖어있었다.
마돈걸도 그러할까? 여자지만 사회를 좀 알고 남자도 대충 겪다 보니, 백팔만 보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빼어났다. 실제로 마돈걸은 오늘 큰돈을 잃지는 않았다. 왠지 불길한 느낌에 경기마다 돈을 조금씩만 걸었던 것이다. 해서 연속 패에도 불구하고 잃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느낌 또는 자기관리라는 것인데, 마돈걸은 베팅은 투자자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그 결과가 상당히 좌우된다고 보고 있었다. 주식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상황 하에서도 투자자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전쟁의 기원을 따질 때 지도자의 성격과 판단이 국제 정세 등 객관적인 상황 못지않게 전
쟁 발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설이 있다. 백팔만 같은 성격은, 투자에 적합하다기보다는 감성적인 역할의 재연 배우가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었다.
결국 자기관리 내지는 통제가 정보나 조건보다 승패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 투자에 적합하게 사람의 기질을 바꿀 수 있을까?
성형수술은 외부를 바꾸는 거지만 이건 내부를 리모델링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가능할까? 마돈걸은 불쌍한 백팔만 오빠를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백팔만은 잃은 돈 생각은 않고, 오로지 단 돈 2만원으로 이렇게 푸짐한 술자리를 갖게 된 사실에 감동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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