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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80] 불멸의 명마(名馬) 씨비스킷 (Seabiscuit)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0.17 08:37
  • 수정 2019.10.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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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부터 1941년 동안 89전 33승과 13개 경주의 거리별 신기록을 달성하는 등 불세출의 기록을 남긴 경주마 씨비스킷이 떴다 하면 경마장 주변 도로가 마비되고 인근 숙소와 식당은 인산인해를 이뤄 하나의 아이템을 통해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일거리를 창출한 말 그대로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이다. 매주 400만 명이 씨비스킷의 라디오 중계를 청취했으며 마지막 레이스에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숫자인 현재의 챔피언십 리그 결승전 관중 수에 맘먹는 7만 8천 명이 몰려들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를 쉬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씨비스킷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5분 이상 눕지 못하는 다른 말과는 달리 몇 시간씩 누워 느그적 거리며 뻗대기를 하는 건 예사요 몸집도 작고 다리는 구부정해 경주마로서는 최악의 체형으로 주인들한테 맨날 얻어맞아 성격까지 포악한 말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영화 씨비스킷 포스터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영화 씨비스킷 포스터

사업 실패로 재산을 탕진하면서 사고로 아들을 잃어 이혼까지 당한 빈털터리 마주 찰스 하워드 (Charles Howard), 한물간 카우보이이자 대공황으로 실직한 조련사 톰 스미스(Tom Smith), 어려서 가족과 헤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권투를 해서 한쪽 눈을 실명해 마구간에 거주하는 기수 레드 폴라드(Red Pollard), 이들은 암울하기만 한 캄캄한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패배자, 즉 루저(Loser)였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루저에서 위너(Winner)로 변모하고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큰 고통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승화된 것일까? 하나하나 따로 떨어져 있으면 맥을 못 추던 이들이 조직의 일원이 되자 놀랄만한 시너지를 창출했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야생마 씨비스킷을 중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고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와 신뢰로 재기한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말라깽이 씨비스킷에게 맹렬한 속도와 영민한 머리 그리고 근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씨비스킷에 의해 스스로 각성되기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억지로 훈련을 시키는 대신 스스로 질주하고픈 야성을 자극했으며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채찍 대신 간식과 함께 안심 시켜가면서 신뢰를 쌓아갔다. 잘 때는 마음대로 자게끔 내버려 두면서 덕지덕지 붙은 지금까지의 안 좋은 버릇들을 단번에 도려내려고 하지 않고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작은 것부터 달래고 칭찬해 가면서 기다렸다. 기다림의 전제조건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인정이다. 그들이 씨비스킷의 잠재성과 진가를 인정하고 믿어 주었기에 씨비스킷이 서서히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고 만개하게 된 것이다. 한 마리 말조차 인정과 칭찬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원래 씨비스킷은 게으르고 초라한 말이었는데 파트너를 잘 만나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인가? 아님 원래 훌륭한 말이었는데 그 진가를 제대로 알아 주지 못한 사람들만 만나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일까?

질주하는 씨비스킷, 사진 갈무리: 영화 씨비스킷
질주하는 씨비스킷, 사진 갈무리: 영화 씨비스킷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은 엄청나게 많은 식객들을 거르리고 있었는데 그중엔 당대의 명사와 책사 등과 함께 밥만 축낸다고 구박을 받았던 무위도식하는 놈팡이들도 많아 빈축을 샀다. 진소왕의 부름이 받아 진나라에 간 맹상군은 진귀한 선물인 호백구(狐白裘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이 있는 부분으로 만든 갖옷.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 가죽이 굉장히 소량이므로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우가 소모되었을까를 예측하면 어마어마한 보물이다.)를 진소왕에게 선물한다. 진나라의 신하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린 맹상군은 탈출을 위해 진소왕의 애첩인 총희에게 애걸복걸하는데 총희는 진소왕에게 선물한 호백구를 요구한다. 그때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 「신이 능히 호백구를 얻어 오겠습니다.」 하고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바쳤던 호백구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곳을 빠져나와 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진소왕은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는 에피소드에서 유래한 한자성어가 계명구도(鷄鳴狗盜,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다. 

세상에 '그냥 사람'은 없다. 다들 존중 받기 마땅할 각기 다른 개별 인격체들이다.
세상에 '그냥 사람'은 없다. 다들 존중 받기 마땅할 각기 다른 개별 인격체들이다.

절뚝거리며 태어난 경주마와 퇴물 복서, 부도난 사업가에 1등 한번 해보진 못한 조교사가 한 팀이 되어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재능을 활짝 피우면서 세상의 상처로 고통받고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영혼들이 상호 치유 과정을 통해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씨비스킷 또하 그들을 통해 최고의 경주마로 재탄생하게 된다. 인생에서 한번 실패했다고 해도 좌절하고 포기하지않고 재도전,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의 길로 나아가에 하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일깨워 주며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가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각오가 되새기게 만드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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