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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54) - 사람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서석훈
  • 입력 2013.05.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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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먹물냄새 나는 대리기사의 사연은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그저 어느 신문이나 어느 잡지나 어느 방송이나 어느 포털이나, 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눈에 띄는 - 그렇다고 보려고 하면 정작 잘 보이지 않는 - 그저 그런 것이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동정심을 가지면서도, 그렇게 살고도 불행해지지 않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이중적인 태도를 갖기 마련이다.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식의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엔딩 이후에 자기들끼리 해야 하는 것이지 관중들에게 대놓고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건 큰 결례인 것이다.
해서 우리의 대리기사는 그 처연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기업 상무며, 차마 들을 수 없는 이혼 사유며 떨어져 있는 아들, 딸이며, 재직 시절 밤마다 마신 술의 후유증으로 부어오르는 간이며, 쓰린 위며, 운전대에만 앉으면 뻐근하게 저려오는 허리며, 빠지는 머리카락이며, 한번씩 쑤셔대는 손목 관절이며, 말한들 무엇하며, 들어줄 이도 없는 신세타령 해서 무엇하며, 그렇다고 끝나고 한 잔 같이 마실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옛 동료들 찾아가자니 창피스럽고 후배도 그렇고 친척도 그렇고 이젠 이웃조차 피해 다니며 그저 시장 어귀 선술집에서 소주 한 병 해장국 한 그릇 놓고 자작하며 하루를조용히 마감하곤 하였던 것이다. 오늘은 어떤 자의 부름에 의해, BMW라는 예전에 골프장에 같이 간 동료들이나 심지어 하청업체 대표들도 타고 오는 그런 차를 이제 기스 나랴 조심조심 대리운전 하며 뒤에 계신 남녀 두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리는 성스러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대도시는 온갖 사연을 안고, 오늘도 눈을 뜨고 움직이고 저물고 있다. 각자가 사연과 상처와 꿈을 안고 하루를 살고 있다. 대리기사나 뒷좌석의 동영상 제작자나 사진모델 고대해나 모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각자가 맡은 역할은 세월에 따라 변하고 있다. 먹물냄새 나는 남자가 대기업상무에서 부르심을 받는 대리기사로 살아가듯, 동영상제작자는 또 무엇으로 살아가게 될지, 어느 날 노숙자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며 고대해는 남자의 장담대로 여배우가 될지 또는 재벌가의 며느리가 될지 또는 장관의 안주인이 될지 또는 화류계의 마담이나 뚜쟁이가 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대리기사가 어느 날 복권에 당첨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그는 옛날 버릇이 되살아나 또다시 젊은 여인을 하나 두게 될지도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는 없었다. 대도시는 이제 과거보다는 사람들에게 성공이나 한 몫 잡을 기회를 많이 부여하지 않는, 매우 인색한 곳이 되었다. 물론 사진모델 고대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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