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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영의 고려아리랑 15]리모컨 선점 제안 … MBC 한글날 특집 프로그램 ‘겨레말모이’ 오늘 밤 11시 제2부 방송

최희영 전문기자
  • 입력 2019.10.14 12:24
  • 수정 2020.02.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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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한글날 특집으로 제작한 겨레말모이’ 2부가 오늘(14) 11시부터 방송된다동영상을 클릭하면 예고편을 볼 수 있다. MBC

 

지난 9월 11일 밤 8시. 한국에서는 추석연휴가 막 시작되고 있을 무렵.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국제공항에서 정길화 PD를 기다렸다. 그는 오늘(14일) 밤 11시 방송되는 MBC 특집 프로그램 <겨레말모이> 제작을 위해 스탭들과 함께 5,000Km를 날아오는 중이었다. 그가 현지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고려인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우리말이었다.

방송장비를 찾느라 늦는 걸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순간 세 사람의 얼굴이 교차됐다. 김형수와 정도상, 그리고 정길화다. 김형수 시인은 지금 ‘신동엽문학관’을 맡아 여러 의미 있는 일을 펼치고 있다. 정도상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다. 또 PD연합회장 출신의 정길화는 MBC 중남미지사장에서 돌아와 통일협력사업팀 국장이란 명함을 갖고 있다.

▲MBC 정길화 국장이 타슈켄트 서울공원에 세워져 있는 고려인 정주 80주년 기념탑을 찾아 제작진들에게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최희영
▲MBC 정길화 국장이 타슈켄트 서울공원에 세워져 있는 고려인 정주 80주년 기념탑을 찾아 제작진들에게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최희영

청년시절부터 작품으로만 알았던 정도상을 처음 소개한 건 김형수였다. 프로그램으로만 만나왔던 정길화를 소개한 이는 정도상이었다. 그리고 문청 시절 흠모했던 김형수와 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문익환 평전》 때문이다. 2003년 가을 그가 문 목사 평전을 출판했을 때 그의 책을 조금 특별하게 소개했다. 인터넷 책방송 프로듀서로 일하던 때였다.

“참 묘합니다. 정길화 국장을 지금 우즈베키스탄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도 겨레말 프로그램 일로 그 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해요. 특히 이번 프로그램이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 30주년 계기 작품이라 해서 더욱 흥분됩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형수 작가가 5년여에 걸쳐 집필한 ‘문익환 목사 평전’. 사진 오른쪽은 2003년에 출간된 초판본이고, 사진 오른쪽은 2018년 다산북스를 통해 다시 펴낸 개정판이다. Ⓒ실천문학사, 다산북스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형수 작가가 5년여에 걸쳐 집필한 ‘문익환 목사 평전’. 사진 오른쪽은 2003년에 출간된 초판본이고, 사진 오른쪽은 2018년 다산북스를 통해 다시 펴낸 개정판이다. Ⓒ실천문학사, 다산북스

그를 기다리며 곁에 섰던 지인에게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이건 분명 16년 전 가을 어느 날의 운명적 약속이었다. 그 사이 30대와 40대가 갔다. 그 세월 속엔 노무현과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으로 이어진 ‘되찾은 30년’과 ‘잃어버린 10년’과 ‘다시 되찾은 10년’의 정치적 부침이 심했다. 그때마다 남북 관계가 달라졌고, 겨레말 또한 모였다 흩어졌다.

마침내 정길화 국장이 입국장으로 나왔다. 그리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늦은 시간까지 향후 4박 5일 간의 촬영 전략에 몰두했다. 타슈켄트 세종학당에서는 표준어로서의 한국어를 배우는 500여명 학생들의 눈빛을 잡기로 했다. 추석 당일엔 고려인들의 성묘 모습과 그들의 한가위 축제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또 그밖에도 3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 고려인 가정집을 방문하고, 타슈켄트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고려인 1세대들의 말 속에 살아있는 겨레말의 흔적을, 가급적 많이 낚아보기로 작정했다.

▲타슈켄트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고려인 1세대들의 삶에 녹아 있는 우리말의 흔적을 촬영 중인 제작진 모습. Ⓒ최희영
▲타슈켄트 아리랑요양원을 찾아 고려인 1세대들의 삶에 녹아 있는 우리말의 흔적을 촬영 중인 제작진 모습. Ⓒ최희영

“정도상 작가로부터 겨레말큰사전 남북편찬사업을 영상으로 기록했던 최희영 작가가 마침 우즈베키스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이거 대박이다, 그이에게 현지 코디 맡기면 속살까지 챙기겠구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책임지십시오.”

정길화 국장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압박했다. 몇 순배 돈 보드카 ‘다드나’(러시아아로 원샷)조차 맨송맨송했다. 긴장감 탓이었다. 그건 2005년 처음 평양에 갔을 때도 그랬고, 10여 차례 입경을 거듭하면서도 늘 같은 긴장감이 반복됐다. 김형수와 정도상이 무대 중심이라면 기록문학가의 16년 역할을 늘 무대 뒤였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오랜 ‘노고’와 ‘긴장감’은 이렇듯 늘 정확하게 비례했다.

▲타슈켄트 세종학당을 찾아 허선행 학당장과 인터뷰 중인 모습. 허 학당장은 1992년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 교육을 맡아온 최초 한류 전도사다. Ⓒ최희영
▲타슈켄트 세종학당을 찾아 허선행 학당장과 인터뷰 중인 모습. 허 학당장은 1992년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 교육을 맡아온 최초 한류 전도사다. Ⓒ최희영

그런 긴장감은 현지까지 날아온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바로 그런 긴장감이 오늘(14일) 밤 11시부터 방송되는 <겨레말모이> 2부 프로그램 속에 농축됐다. 오늘 밤 방송분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겨레말이 중심축이다. 그리고 남북한과 해외동포의 말을 모으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본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은 땅속에 굴을 파거나 깔로 흙집을 짓고 살았다. 이것을 그들은 ‘깔뚜막’이라고 불렀다. 정길화 국장은 “이 말 한마디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했다. 제작진은 그 살아있는 역사 현장과 고려인 가족의 추석맞이와 성묘 나들이까지 동행해 2부 프로그램 속에 녹여냈다.

이날 방송은 또 국어학자와 학생 9명이 만나 광화문 일대에서 한글의 역사를 탐방하는 내용도 소개한다. 세종대왕 동상에서 시작해 조선어학회의 뿌리가 된 국어연구학회의 창립터 봉원사를 찾고, 서울 북촌의 조선어학회 터를 돌아본 학생들은 광화문 한글회관의 묵은 서랍장에서 주시경 선생의 염원이었던 ‘말모이’ 낱말카드를 찾아낸다. 바로 이 말모이가 ‘조선말큰사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줄기는 다시 ‘겨레말큰사전’으로 뻗어갔다.

MBC 예고편 이미지
MBC 예고편 이미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제작진은 독일 베를린도 찾았다. 통일 후 30년이 지난 독일의 사례를 통해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고 공존하는 과정을 모색해 보기 위해서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다. 분단 40여년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올해로 통일 30주년을 맞았다. 통일 이후 독일은 공적인 자리에서나 표준어를 사용할 뿐, 대다수는 자신의 지역 방언을 사용하는 실용적인 지혜를 택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8개월 전인 1989년 3월, 한반도에서는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길을 걸어온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주석을 만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자리에서 문 목사는 남북의 말이 너무 많이 달라지고 있으니 남북 공동으로 ‘통일국어대사전’을 편찬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2005년 금강산에서 남북공동편찬사업회가 결성됐다. 그리곤 지금까지 25차례에 걸쳐 공동편찬위원회 회의를 진행했다. 이제 이 사전이 완성되면 분단 이후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함께 편찬하는 첫 사전이 된다. 즉 겨레가 함께 볼 최초 사전이다. <겨레말모이> 2부 방송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지난 시기 어떤 과정 속에서 이 사전이 기획됐고, 어떻게 추진됐으며, 또 때론 왜 멈춰 섰는지 생생하게 보게 될 것 같다.

▲2005년 평양 취재차 인천국제공항을 떠나기에 앞서 기념 촬영한 최희영 작가 모습. 최 작가는 그로부터 오랫동안 ‘남북작가대회’(평양-묘향산-백두산),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 등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십 수 차례 북녘 땅을 밟았다. Ⓒ최희영
▲2005년 평양 취재차 인천국제공항을 떠나기에 앞서 기념 촬영한 최희영 작가 모습. 최 작가는 그로부터 오랫동안 ‘남북작가대회’(평양-묘향산-백두산),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 등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십 수 차례 북녘 땅을 밟았다. Ⓒ최희영

사족 하나 달고 글을 마무리하자. 앞에 썼던 지난 9월 11일 밤. 기자는 정길화 국장을 만나기 바로 직전 김형수 시인을 타슈켄트에서 배웅했다. 즉, 같은 날 밤 타슈켄트 출국장에서 김 시인을 배웅하고, 입국장에서 정 국장을 마중하는 묘한 상황을 맞게 됐다. 두 사람은 아직 안면이 없는 사이다. 김 시인은 요즘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조드》 3, 4권을 집필 중이다. 그 배경이 우즈베키스탄이다. 그래서 기자와 함께 현지를 여행하고 그날 밤 돌아갔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고 했습니다. MBC가 만든다는 프로그램이 바로 겨레말의 길을 내는 일입니다.”

김 시인은 공항을 떠나면서 칭기즈칸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오늘밤 방송을 보며 그의 말이 다시 생각날 것 같다. 그러면서 김형수, 정도상, 정길화. 아주 오래 전부터 남북이 하나 되는 길을 내기 위해 여러 역할을 해온 그들의 노고에 다시 머리 숙여질 것 같다. 오늘(14일) 밤 11시다. 약속이 있더라도 일찍 귀가하자. ‘드라마에 빠진 마눌님 모르게 리모컨 미리 감춰둬야징~’ 한 폐친의 조크가 고마운 방송 당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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