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용원 음악통신 77] 불공감의 사회학: 영화 조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0.14 09:07
  • 수정 2019.10.14 09: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트밴의 아치 에네미 조커의 탄생을 그린 영화 <조커>는 아주 섬세하고 세밀하게 인간 아서가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흑하화되어가는 과정이 급박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으며 매우 밀도 있어 왜 아서가 조커가 되어야 했는지 공감이 가고 조금 더 과장하자면 내가 조커가 되어 버린다. '살면서 단 1분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 '살면서 한 번도 주목받은 적이 없었다'라고 조커는 말한다. 유명 코미디언을 꿈꾸고 노력하지만 단단한 사회 구조는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웃기다고 여기지만 타인은 공감하지 못한다. 거기서 불행이 싹트기 시작한다.

영화 조커의 공식 포스터
영화 조커의 공식 포스터

클래식 음악인, 예술가는 타자(他者)다. 글자 그래도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아닌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해석된다. 그런 모습과 기질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타인이 아닌 타자로서 클래식 음악과 예술가들을 존중해야지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자꾸 예술 외적인 걸로 외부에서 끌어와서 희석시키면 안 된다. 그럴 때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다중을 위한 상업이자 경영이 되어 버린다. 그런 마당에 누군가 자신의 연주나 공연에 대해 칭찬이 아닌 그 외의 모든 언급에 대해선 상처받고 원망하며 견뎌내지 못한다. 진정 어린 애정이 뒷받침된 조언이나 비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힘들게 고생고생해서 한 것을 인정해주지 않고 남들 다 좋아고 하는데 당신만 그렇게 삐딱선을 타느냐'라고 항의하고 원망한다. 좋다는 말, 박수갈채와 맹목적인 환호에 그렇게 목말라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긴장과 떨림을 감추고 관객들의 브라보에 용기를 얻고 추켜세우는 말에 어린아이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그들의 성취와 평생에 걸친 학문과 공부의 성과에 그렇게 목말라 있고 피드백이 전무하다는 방증이다.

내용을 안다면 손뼉을 칠 데 쳐주고 웃어주고 호응하며 진정성을 담아 반응하며 같이 즐기고 소통이 될 건데 음악 자체가 막혀있으니 그걸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아닌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해석되고 칭찬, 박수갈채와 맹목적인 환호에 목말라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긴장과 떨림을 감추고 관객들의 브라보에 용기를 얻고 추켜세우는 말에 어린아이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노래 하나 부르고 들어와서 무대 뒤에서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고 서로 추켜세워주며 어깨를 토닥여준다. 자기 돈으로 개최하면서 몇 년에 한번 올리는 독주회엔 무슨 큰 벼슬이나 한거 같이 예민하고 마치 입시를 앞둔 수험생 같다. 하긴 빈 수레가 요란하고 명인은 연장 탓하지 않으며 레슨이 아닌 음악이 일상인 사람은 무대 자체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

사진제공: 시인 박시우
사진제공: 시인 박시우

그럼 질문에 빠진다. 우리 시대, 웃음과 감동을 위해 존재하는 광대, 즉 인류와 세상에 영혼 간의 치유와 안식을 선사하는 예술가의 존재가 과연 필요가 것인가? 광기와 분노만 팽배한 사회 그래서 광장의 충동이 솟구칠 때야 만이 모두가 광대가 되어 집단으로 광장으로 나아가 자신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다면체적인 사회에 광대의 자리는 과연 있는가? 자신의 조크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총으로 쏴 버리는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의 모습은 광인 그 자체며 연기인지 실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배역에 일체화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실행만 하지 않을 뿐, 마음속으로 우린 얼마나 많은 '살인'과 '거짓말'을 하는가. 조커가 대신 해준다. 미술가 반 고흐가 그렇게 강렬한 색채감을 뽑아낼 수 있었던 요인은 그의 천재성에 기인한 게 아니라 압생트라는 술에 중독이 되어 황시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모든 세상이 노란색으로 보였고 그래서 본 대로 그렸으며 악마가 그린 이글거리는 강렬한 에네지를 후대는 감상한다.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1986)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1986)

아르헨티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나이를 먹을수록 시력을 상실하는 끊을 수 없는 유전병이 있었는데 그건 베토벤이 귀머거리가 된 것만큼이나 잔인한 현실이었다. 보르헤스의 대표작인 <불한당들의 세계사>, <픽션들>, <알렙> 같은 작품은 모두 안 보이는 상태에서 창조해낸 각고의 결실이다. 다시 반 고흐로 돌아가도 심해지는 정신병과 끊임없이 들려와는 환청에 의해 스스로 귀를 자르고 만다. 조커든 고흐든 보르헤스든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클래식 음악이든 같은 운명이다. 서로 이해하는 못하는 타자와의 해후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