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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52) - 사회의 법칙

서석훈
  • 입력 2013.04.2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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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사회의 법칙


40대의 동영상 제작자의 차 BMW를 대리 운전하고 있던 대리 기사는 뒷좌석에서 두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를 속수무책으로 듣고 있었다. 대화라기보다는 남자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이지만 말이다. 대리기사는 원래 차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해야 하지만 일부러 안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따라 마치 라디오 생중계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기사로 말하자면 먹물냄새를 심하게 풍긴다고 진작 소개한 바 있지만 사실 냄새뿐 아니라 그 뿌리까지 먹물이었다.
기사는 전직 대기업 상무이사였다. 하청업체만 수십 개 있어 회사 월급 외에도 선물이나 상품권을 적잖이 챙기고 있었다. 봉투도 자주 건너왔다. 적당히, 봐서 큰 문제없을 것만 선별해서 드셨다. 주말이면 골프장에 가 있었고 선물 받은 호텔 숙박권을 이용해 1박 2일 도심 휴가를 즐기기도 하였다. 대기업 상무이사는 평일 약속도 하루에 두 개는 잡아야 할 만큼 바쁘신 몸이었다. 그 와중에 미모의 30대 여성을 틈나는 대로 만났다. 정신적 긴장을 육체적 향연으로 풀며 노곤해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부서 실적도 무난하여 조만간 전무이사로 진급하게 되어 있었다.
헌데 어느 날이었다. 말 그대로 어느 날이었다. 여자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뭐겠는가? 맞다. 임신한 것이다. 것인지는 모르고 임신하였다는 소리를 듣는다. 남자는 말했다. ‘미쳤어?’ 그 말은 임신한 게 미쳤다는 거고 이렇게 말하는 게 미쳤다는 거고 모든 게 미쳤다는 거였다. 며칠 후 여자는 죽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남자가 허겁지겁 달려가자 피자가루를 입에 묻히고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애가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임신 몇 개월인데 벌써 애가 피자가 먹고 싶나? 남자는 봉투를 건넸다. 지우고 어디 가서 새 생활 하라는 주문이었다. 여자는 보지도 않고 돈을 집어던졌다. 남자는 며칠 후 두 배의 금액을 건넸다. 여자가 죽겠다면서도 봉투를 챙겨 넣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배가 남산만한 여자의 사진이 휴대폰에 날아왔다. ‘너 어디야? 남자는 문자를 넣었다. ‘지하 월셋방’ 여자가 말했다. ‘웃기지 마. 누구 앤지 어떻게 알아?’ ‘유전자 검사가 있잖아?’ 여자의 대꾸에 남자는 뭘 원하느냐고 영화 대사처럼 말했다. ‘아무 것도. 당신 하나면 돼.’ 그 말은 전부를 원한다는 의미였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러 갔다. 이것이 막물냄새 나는 남자의 과거 중 일부였다. 뒤에서 동영상 제작자가 모델 고대해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는 와중에도 사연 있는 남자는 묵묵히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회의 법칙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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