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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김종삼 시인의 드빗시 山莊 22

박시우 시인
  • 입력 2019.10.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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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드뷔시 『영상』

―한 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구조(構造)의 大理石(대리석). 그 마당(寺院) 한 구석―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앉았다.

-김종삼 ‘주름 간 大理石’ 전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가 1971년에 녹음한 드뷔시 『영상』. 모노 시대 음반은 발터 기제킹의 연주를 첫손으로 꼽는다. ⓒ박시우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가 1971년에 녹음한 드뷔시 『영상』. 모노 시대 음반은 발터 기제킹의 연주를 첫손으로 꼽는다. ⓒ박시우

김종삼이 드뷔시를 통해 추구한 시의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인상파의 기법을 시작에 도입한 것입니다. 소리와 색채, 사물의 움직임을 음악으로 표현한 인상파처럼 김종삼의 시 곳곳에는 드뷔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와 연관된 대표적인 시는 『현대문학』 1960년 11월호에 발표한 ‘주름 간 대리석’을 비롯해 ‘뾰죽집’ ‘북치는 소년’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주로 짧은 시에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시는 드뷔시의 피아노 작품 『영상』 제2집 중 제1곡 잎사귀를 스치는 종소리, 제2곡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이 연상됩니다. 첫 행에 문장부호 줄표를 표기한 것은 과감하게 생략한 전제를 환기시킨 의도로 보입니다. 줄표 너머는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세계이면서 절제된 음악의 감흥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줄표를 문장부호가 아닌 악보의 덧줄로 해석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이 덧줄은 5선의 범위에 담을 수 없는 이미지를 함축시킨 김종삼의 음표이자 시 전체를 음화(音畫)로 바꾸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주름 간 大理石’은 인상파 기법으로 쓴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됩니다.

인상파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드뷔시의 피아노 독주곡은 『영상』 말고도 『전주곡』이 있습니다. 제1·2집 총 6곡이 수록된 『영상』과 제1·2권 총 24곡으로 구성된 『전주곡』의 특징은 첫째, 개별 곡들의 연주시간이 짧게는 2분대에서 길게는 6분대인 소품이라는 점 둘째, 개별 곡마다 시의 제목 같은 부제가 달려 있는 점 셋째, 음향과 회화 이미지로 가득 찼다는 점입니다. 『영상』에 비해 수록된 곡이 많은 『전주곡』에도 ‘들을 지나는 바람’ ‘소리와 향기가 저녁 대기 속에 감돈다’ ‘서풍이 본 것’ ‘아마빛 머리의 소녀’ ‘달빛 쏟아지는 테라스’ 등 시적 분위기가 넘치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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