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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74] 콘서트 프리뷰: 2019 서울시향: 장이브 티보데의 생상스, 10월 19일 토요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0.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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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서울시향만의 도전, 프랑스의 똘레랑스(Tolerance)를 품은 과거와 현재를 품은 화합

작곡가로 살면서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의 노타시옹(Notation)을 한국에서 오케스트라의 실연으로 들을 줄은 몰랐다. 독일 유학 시절, 멋도 모르고 '학업'을 위해 공부해야 했던 곡 중에 하나로서 20세기 음렬 작곡 기법 수업의 과제이자 듣는 음악이라기 보다 학술대상이었다.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가 파리 음악원 학생 시절 작곡한 피아노곡 '노타시옹"(Notation의 프랑스어 발음)은 단 하나의 음렬을 사용 단 12 마디 길이의 다양한 습작, 스케치, 연구인 제목 그대로 <기보>였다. 그저 기보된 상태로 남겨진 이 피아노곡은 1977년 파리 오케스트라로부터 관현악곡 위촉을 받아 불레즈에 의해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확장되었다. 즉 12마디의 씨앗이 여러 다양한 형태로 열매를 맺은 것이다. 20여년 전 교과서에서나 배우고 유럽에서나 실황으로 들을 수 있었던 작품을 한국에서 듣다니 아마 한국에서는 초연이 아닐까 싶지만, 한국음악사적으론 의미가 큰 날이다.

10월 18일, 19일 이틀간 오르간이 설치된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서울시향의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 연주회 포스터
10월 18일, 19일 이틀간 오르간이 설치된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서울시향의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 연주회 포스터

불레즈의 생소함과 기괴함 그리고 고립성은 생상스의 관후 장대함, 코즈모폴리턴적인 보편성 그리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덕인 관용(Tolerance, 프랑스 발음으로 똘레랑스)과 비교될 것이다. 불레즈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난 생상스의 음악은 프랑스를 넘어 두루두루 통용되고 사랑받는다. 그의 악풍은 친근하다. 그리고 어느 한 악기, 장르, 편성에 집중된 게 아닌 다방면에 걸작을 남겼으며 19세기 말 방대한 외국 식민지를 보유한 유럽의 부르주아, 중산층의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 그리고 정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래서 생상스를 통해 비로소 프랑스 음악계에 첫 선을 보인 장르가 피아노협주곡이다. 그런 대중적인 양식이 19세기 중엽까지 문화강국 프랑스에서 자신 있게 내보일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게 의아할 정도인데 생상스에 의해 피아노, 바이올린 등의 협주곡이 양산되고 콘서트 레퍼토리화되었다. 그중 생상스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회를 위해 작곡된 다섯 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이집트'라는 부재가 붙었있는데 생상스가 이 곡을 작곡할 다시 자주 찾았던 나일강 중류의 여러 풍경과 인상, 소리 등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어 그렇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프랑스 태생의 장이브 티보데(Jean-Yves Thibaudet)가 협연한다. 올 9월호 서울시향과 베토벤을 협연한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떠오른다. 독일 정통파 연주에 대한 기대와 다른 접근과 시도는 파격적이었으나 한국의 청중 입장에서 조금 이질적이기도 했기 때문인데 괜히 또 프랑스 피아니스트에게 생상스에 대한 고정 관념을 세워두었다가 혼란이 올까 조심스럽다. 어찌 되었든 필자에겐 올해 가장 충격적인 연주자와 앙상블이 서울 시향(지휘 만프레트 호네크)과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베토벤 협주곡이었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프랑스 태생의 장이브 티보데(Jean-Yves Thibaudet)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프랑스 태생의 장이브 티보데(Jean-Yves Thibaudet)

오르간이 포함된 교향곡! 오르간이 있는 데서만 할 수 없는 장소적 한계, 교향곡의 일반적인 4악장에서 벗어난 2악장의 구성, 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게 변하시키는 마치 리스트 스타일의 순환 기법, 푸근하고 인자한 보수적인 인상의 할아버지 같은 생상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진보이자 개혁이다. 오르간만 있는 게 아니다. 생상스가 고백한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광활한 에너지였으며 바그너에서나 맛볼 수 있는 종교적 카타르시스(우린 이미 바로 전 서울시향의 파르지팔 연주에서 체험했다)와 승화며 동시에 당시 파격적인 미래음악으로 칭송되던 리스트와 바그너의 강력한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음악회는 불레즈로부터 시작된 실험이 생상스에 의해 귀결되는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화합이다. 같은 정체성, 프랑스라는 뿌리로 나온 원류가 붙일 때는 일반적으로 앵똘레랑스(불관용)의 경향으로 흐르기 쉬운데 관용의 시작은 다양성의 인정이다. 지난 9월 말의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의 파르지팔과 영웅'에 대해 필자는 독일에서나 들을 수 있는 수준의 호사를 서울에서 누린 구원으로 얻은 평화라고 정의했다. 이번에 프랑스인가? 불레즈의 노타시옹, 생상스의 2번도 아닌 5번 피아노 협주곡에 오르간 교향곡까지 프랑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수준의 호사를 다시 한번 서울에서 누리길 손꼽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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