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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신사(150) - 뒷좌석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서석훈
  • 입력 2013.04.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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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뒷좌석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강 다리를 막 건넌 BMW, 뒷좌석엔 40대의 동영상 제작자와 사진 모델 고대해, 그리고 운전석엔 제작자의 차를 몰고 있는 먹물 냄새나는 대리기사. 이것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이다.
1999년 12월에 한강 다리를 비에 젖어 건넜다는 남자의 고백 아닌 고백에 고대해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자, 아니 특별히 반응이랄 것도 없는 미미한 반응을 보이자 남자는 당황하며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러나 애써 표정을 감추며 에에 하고 무슨 말인가 꺼내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대해는 묵묵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가 뭔가 말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가 묵묵히 있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닌데 고대해는 어머, 정말, 이러한 추임새도 넣지 않고 하다못해 네에 같은 소리도 않고 잠자코 앞만 보고 있으니 뭐 이런 여자가 있나 생각해도 잘못은 아니었다.
남자가 “에 그날 그게” 하고 어렵게 입을 떼는데 “아저씨 여기선 우회전해서 가시는 게 편해요.” 하고 고대해가 기사에게 갑자기 말하였다. 그러니까 말을 못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필요한 말은 하는 여자였다. “네. 알겠습니다.” 기사가 대답하였는바 기사는 꼭 필요한 말만 하도록 교육을 받거나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리기사가 운전대에 앉아보면 뒤에 별별 놈이 다 차의 주인이라고 시시껄렁한 말을 시키거나 휴대폰으로 지랄 같은 사업 얘기나 떠들고 아니면 내가 누구 누구를 잘 아는데 같은 허풍이나 떨고 아니면 마누라 아닌 다른 여자를 꼬시거나 달래느라고 전화기를 붙들고 살며 아니면 돈 한 천만 원만 빌려달라는 돼도 않은 소리를 하거나. 하여튼 가지가지이지만 기사는 나는 여기 없다 하고 묵묵히 운전대만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뒤에 남녀라도 같이 타면 눈꼴 신 장면을 많이 보는데 젊은 것들은 뽀뽀 같은 걸 많이 하며 중년들은 치정 같은 짓거릴 많이 하며 나이 차가 날 땐 성추행 같은 광경도 많이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 왜 그래. 같은 소리가 뒷좌석의 여자에게서 나오더라도 기사는 흔들리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온 터라, 그리고 그의 목적은 안전운행 및 무사히 도착한 고객으로부터 약정금액과 약간의 보너스를 받아내는 것이기에 남녀의 대화에 관심을 갖는 건 금물이었다.
“그때 한강을 왜 건너셨다고요?” 별안간 고대해가 물어왔다. 남자는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고대해는 이미 그 이유를 들은 것처럼 물어대고 있었다. 아무튼 그것조차 남자는 반가웠다. 남자는 고대해의 무릎에 슬쩍 손을 얹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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