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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49)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서석훈
  • 입력 2013.04.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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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자신의 차 BMW에 모델 고대해를 태우고 한강 다리를 건너가며 과거를 회상하는 유명한 장면을 지난주에 소개한 바 있다. 1999년 12월 어느 날 이 한강 다리를 비를 맞으며 홀로 걸었다는, 비에 젖은 추억의 목소리를 들려줄 때 고대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리를 건너가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다. 소설 속에 나오고 영화 속에 나오고 두 시의 데이트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에도 나온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의 첫 장면은 워낙 유명하지 않은가. 세느 강 다리 위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에게 한 여자가 말을 건다. 아.... 우리는 세월이 가도 그 다리는 화면 속에서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영화 속 남녀도 영원히 그 자리에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제 그들은 죽고 없어도, 감독도 죽고 남녀배우도 죽고 거기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없어도 그 영화를 개봉관에서 본 사람들도 죽고 없어도, 그래도 필름은 남아 EBS를 통해 KBS1을 통해 우리를 찾아온다.
동영상 제작자는 비에 젖은 자신의 목소리에 스스로 취해 마치 울음을 참는 듯, 휴화산이 분출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대단히 격렬하게 흐느끼듯 온몸과 마음이 추억의 그 장소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대해는 하품을 하지는 않았다. 고대해는 하품이 나오면 하는 편이지만 일부러 하품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그만 입을 닥쳐주기를, 울려면 울고 발작하려면 그렇게 하고, 아니면 잠자코 있었으면 싶었다. 비에 젖은 낙엽 같은 목소리로 주절주절 떠드니 귀가 피곤하였다. 그러면서 자칫하면 몸이 무너져 그녀의 어깨에 기대기라도 할 형국이었다. 위태로운 자세로 허벅지를 고대해의 허벅지에 간간이 닿았다 떨어졌다 하며 혼자 쇼를 하고 있었다. 참, 차 하나 얻어 타고 가는데 많은 걸 감수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먹물 냄새를 피우는 대리기사 아저씨는 묵묵히 운전대를 잡은 채 마침내 차를 한강다리 건너로 이동시켰다.
고대해가 왜 당신이 1999년 12월에 비에 젖어 한강다리를 건넜는지 그 이유를 물어오지 않자 남자는 그만 할 말이 막힌 듯했다. 사실 남자가 이 이야기를 오늘 처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여러 여성에게 하였던 것으로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오늘 처음 고백하는 것처럼 스토리를 풀어 놓았는 바, 도대체 이 고대해라는 여자처럼 아무 반응이 없는 여자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늘은 고대해라는 별미 메뉴를 내가 특별히 선택한 거 아니겠냐고 남자는 스스로를 위무했다. 에...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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