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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48) - 그날 저는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서석훈
  • 입력 2013.03.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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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그날 저는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대리기사를 불러 자신의 차 BMW를 몰게 하고, 뒷자리엔 모델 고대해를 태워 자신은 그녀 옆에 앉은 채 은근슬쩍 허벅지를 떼었다 붙였다 하고 있는 와중에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남자가 여자를 집에 바라다 주는 시간이었다. 첫 만남을 가진 남자가 여자를 집에 데려다 준다며 전철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건 그다지 권장할 방법은 아니다. 청소년이나 대학생이 아닌 이상 첫 만남엔 승용차, 아니면 택시라도 이용해 여성을 안전하게 모셔야 함이 마땅하다 하겠다. 지금처럼 자신이 술을 마셨을 경우 대리기사를 불러 모셔다 드림은, 여자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동시에 남성의 배려를 느끼게 하는 좋은 경우라 하겠다. 허나 은근슬쩍 허벅지가 붙었다 떨어졌다 함은 경우가 아닌데, 둔감한 여성은 그걸 차가 좀 흔들리는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고대해도 크게 신경은 안 쓰고 차의 진동을 이용해 이 남자가 뭔가 갈구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해한다는 건 아니지만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 건 남자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 않겠나? 남자에게 경각심을 줘 봐야 남자가 얼마나 절실히 느끼겠는가? 다리를 부딪쳐라, 느끼려면 느껴라, 참 가지가지다. 이 정도의 심정이 고대해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되겠다.
차는 바야흐로 한강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여길 걸어서 건너가 본 적이 있습니다."
남자가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산책했다는 이야기인가? 아님 뒈지기라도 하겠다고 걸었단 이야기인가? 고대해는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1999년 12월 28일이었습니다." 남자가 무슨 소설 쓰듯 구체적인 시간을 언급하였다. 그날이 그 자신에겐 의미가 있는 날인 모양이었다. "오후 세 시 반 경이었습니다." 점입가경이었다. 시간까지 나오고 있었다. "저는 여기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해는 그가 계속 말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비가 흩날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는 한참을 침묵하였다. 우산은 없었나? 이렇게 물으려다 고대해는 가만히 있었다. 맞장구를 쳐주면 어디까지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비가 점점 거세졌고 저는 다리 중간에서 멈춰 섰습니다. 이때쯤 차는 다리를 거의 건너가고 있는 중이었다. 먹물 냄새를 풍기는, 양복 입은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조용히 몰고 있었다, 차 안엔 남자의 말 외엔 정적이 감도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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