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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춤

윤한로 시인
  • 입력 2019.10.04 16:17
  • 수정 2019.11.2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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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춤
   
윤 한 로

나뒹굴 듯 추랴
고꾸라질 듯 추랴
궁구를 듯 추랴
팽개칠 듯 추랴
피 토하듯 추랴
배 가를 듯 추랴
기막힌 듯 추랴
막돼먹은 듯 추랴

새 쫓듯 추랴
밭 매듯 추랴
절구질하듯 추랴
나무하듯 추랴
똥장군 지듯 추랴
용두질하듯 추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듯 추랴
멍석말이 둘둘 말리듯 추랴
접시물에 코나 박고
, 죽어 버릴라 추랴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웃고 굶고
절룩이고 기고
잘리고 떨어지고
뜯기고 채이고 뽑히고
꺾이고 터지고 깔리고
맞고 잃고 뺏기고 깨지고
들이 몽땅 춤이랑게

, 깨춤 절로 나듯 추랴

바가지 얼굴, 밴댕이 배창새
부지깽이 고무래 팔다리 훠이 훠이
이 세상
이다지도
이쁜 춤
어여쁜 사람
있을 줄이야


알기나 할란가

개도 소도
다 추는 춤 말고

 


시작 메모
우리 외숙모 꼭 병신춤을 추는 공옥진 여사처럼 생기셨다. 그런데 곱사등이, 앉은뱅이, 곰배팔이 그딴 춤 하나도 못 추셨다. 늘 낡은 밥상다리 놀 듯 절룩거리기만 할 뿐. 선진병원 요양실에 찾는 자식, 동무 하나 없이 그저 아침마다 머리 깨끗이 빗고 앉았다가, 짓무르고 눈곱 낀 눈 뚜릿뚜릿 사람들만 훑다간, 또 천장만 뚫어지게 훑다간,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마침내 안경을 벗어 밥을 떠먹으시더라. 그걸 숟가락이라 여기셨는감. 아아, 시인이시구나 우리 외숙모. 가시기 전 대세(代洗)를 드리니 곧 선종(善終)하셨다. 아가다 외숙모. 이제 하늘의 별보다도 병신춤 공옥진 여사보다도 훨씬 이쁘셔라.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고, 나는 자 위에 기는 자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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