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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6) - 하루에 한 번은 적중한다

서석훈
  • 입력 2010.06.2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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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비록 경마에서 큰돈을 잃었지만 재차 승부를 걸겠노라고 주먹을 불끈 쥔 백팔만의 용기에 주목해보자.
돈을 건 경주에서 크게 패한 이후엔 잠시 호흡을 고르고 침착하게 다음 레이스에 대처해야 하는 게 경마인의 바람직한 자세이거늘, 백팔만은 분한 마음과 오기에다 본전을 찾기 위한 조급함으로 뒤범벅이 되어 곧장 승부에 결연히 돌입하고자 했다. 이에 감명을 받은 마돈걸은, 엉터리 정보로 큰돈을 날리게 한 정보통 ‘말대가리’를 다시 호출하였다. 말대가리보다 못한 그 인간이 이번에는 또 뭐라고 지껄이는지 들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말대가리의 휴대폰은 조용했다. 꺼져 있었던 것이다. 빗발치는 비난의 전화에 일시 몸을 피한 듯했다. 말대가리로 말할 것 같으면, 본인 진술에 의하면 한때 경마계의 큰손과 동업자였다가 큰 배신을 당하고 무일푼으로 떨어졌지만, 그의 재기를 원하는 진실한 동료들이 날마다 훌륭한 정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정보를 독식하는 대신 자기처럼 불행한 수많은 경마팬들과 조촐한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해서 행운을 거머쥔 팬들로부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간의 봉사료만 받고 있다는 거였다. 정보만 정확했다면, 마돈걸은 봉사료 뿐 아니라 말대가리를 호화스러운 저녁식사에 초대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말대가리와 거꾸로 투자하려해도 그가 어떤 그릇된 정보를 갖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한편 백팔만은 마돈걸이 아무리 사랑스러운 여동생이고 모두가 경탄할만한 글래머이고 비음이 들어간 목소리는 간장을 녹일 듯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다시 승부를 걸려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그녀가 옆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여자와 돈이 한꺼번에 굴러들어오는 걸 본 적 있는가? 돈이 넘치면 여자는 또 마련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마돈걸은 백팔만이 몇 번 말에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 또한 평소의 자기 이론과 동물적인 직감에다 경마정보지를 참고해 번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속이 타들어가는 백팔만을 위해 원두냉커피를 사러갔다. 그때 매점 앞에서 휴대폰에 대고 뭐라고 떠들어대는 말대가리를 발견하였다. 말대가리의 휴대폰이 몇 개인지는 말대가리만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보가 하루에 한 번은 맞아 들어간다는 것도 그만이 알고 있었다. 바로 거기서 자잘한 수입이 들어오는 것이다. 말대가리는 마돈걸을 보자 더욱 큰소리로 통화를 하며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났다. 마돈걸은 그의 사타구니를 콱 움켜쥐었다. 그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자 모두가 쳐다보았다. 마돈걸이 말했다. “이번엔 몇 번이야? 응? 빨리 말해! 몇 번, 몇 번이냐고?” (다음주에 계속)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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