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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61] 느그가 프로여? 최악의 2019시즌 기아 타이거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09.23 08:09
  • 수정 2019.09.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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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가 9월 21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또 지면서 9월에만 16전 6승 10패 승률 375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현재 정규시진 7위에 랭크되어 있다.성적을 떠나 40년 가까운 타이거즈 원년팬으로서 올해만큼 한심하고 재미도 없고 근성도 없었던 타이거즈의 모습은 처음보았다. 리빌딩을 표방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건 리빌딩도 아니요 타 팀 선수들과의 현저한 실력차이가 나는 2군 선수들의 기용으로 인한 어이없는 본헤드 플레이, 예상치 못한 실책 도미노 등으로 안타까운 한숨을 넘어 채널을 돌리거나 야구장에서 절로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저질야구에 불과하다.

해외토픽에 나올법한 진기명기, 사진갈무리=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해외토픽에 나올법한 진기명기, 사진갈무리=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도루왕이 유력한 박찬호라는 혜성 같은 스타의 탄생, 윤석민 이후 20세이브를 돌파한 든든한 뒷문지기 문경찬 그리고 무명의 이창진, 유민상, 고영창 같은 중고 신인들의 약진과 젊은 투수들의 성장들이 있었지만 시즌 초반부터 삐걱거리더니 어떤 성인군자도 육두문자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플레이의 연속된 한 해였다. 2년 전 우승 팀이라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기력함과 그에 따른 김기태 감독의 중도 하차, 그리고 박흥식 감독 대행으로서 남은 시즌을 꾸리면서 생긴 피로감과 목표의식의 결여로 성적은 반등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가을야구는 건너갔으며 지금은 리빌딩이라는 명목하에 1군에 올리면 안 되는 수준의 선수들이 올라와 명백한 기량 차이를 보이고 있다. 90년대 말에 모기업이 도산했을 때도, 선동열과 이종범이 일본에 가 있었을 때도, 김성한이 나가고 유남호와 서정환이 감독을 맡았을 암흑기에도 그리고 선동열이 사퇴하고 김기태가 막 부임해 센터라인이 망가졌던 2015년도 올해 같지는 않았다. 그냥 올해는 야구 자체가 재미없다. 나지완은 한 시즌 내내 부진이고 김선빈과 안치홍은 살이 너무 쪄 둔해져 현저하게 수비 범위가 좁아졌으며 실책이 잦았다. 실책을 하고 문책성으로 교체되자 자기 짐을 챙기고 나가버린 안치홍의 뒷모습은 계속 그 선수를 믿고 응원하며 지지했던 팬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1년 내내 패배감에 젖어 있던 오합지졸 기아 타이거즈
1년 내내 패배감에 젖어 있던 오합지졸 기아 타이거즈

꼴찌 팀도 우승 팀을 이길 수 있는 게 스포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야구의 명언처럼 9회 말 투아웃의 다 끝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홈런 한방에 역전을 하며 다 진 경기를 이기고 3시간 59분이기고 있다가 1분 만에 승리는 내주는 경우도 있으며 기대 안 한 선수가 올라와 혼신의 힘을 다한 투구로 삼진을 잡으며 그 투수와 팀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에 감동을 더한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이기심만 팽배하고 각자도생이다. 9월 한 달간 16경기에서 저지른 실책만 해도 28개라니 평균 한 경기당 2개꼴이다. 이게 바로 실력이고 이런 야구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곤혹이다.

이런 경기력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은 팬을 위한 야구가 아닌 선수 위주의 선수 일자리 창출과 야구인 생계를 위한 10구단 운영체제이다. 아마추어 인프라가 부족하고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현저히 작은 시장 규모에 비해 몇 년 야구가 중흥기를 맞이하니 이때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구단을 늘렸다. 고교팀이 50여 곳에 불과한데 리그 확대에 따라 선수 부족으로 경기력이 저하되었고 언제까지나 리그가 호황일 수 없는데 야구장 등의 인프라 개혁도 없다. 절반의 팀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건 현재의 상위팀들 순위와 일치한다.

빨간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의 유니폼만 보아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 정도의 포스를 과시했던 해태 타이거즈 시절
빨간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의 유니폼만 보아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 정도의 포스를 과시했던 해태 타이거즈 시절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에서의 음악대학의 몰락이 연상되었다. 호황기에 미래를 대비하고 설계하지 못한 폐해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1980년대, 미래 발전 가능성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과목으로 예술이 각광을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클래식교육학과가 지방의 전문대까지 확산되는 등 서구 클래식음악이 호황을 맞았다. 그때는 수요가 있고 가르칠 수 있는 자원이 많지 않았으니 유학만 갔다 오면 교육기관의 취직이 용이했으며 음악가들도 사회적으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음악이 예술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천 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내 경제성장 정체와 학령인구의 감소, 그리고 IMF를 겪고 난 후 사회의 고용불안정으로 인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예술보다는 안정적이고 보장된 직업으로의 사회관심의 선회, 그리고 실용음악의 위상 정립과 그에 따른 수요 급증, 한류 열풍으로 인한 다른 타 엔터테인먼트과에 밀려 음악대학, 예술대학이 현재는 대학구조조정의 1순위요 기존 교수들만 명예퇴임하면 폐과의 순을 밟는 단계에 와 있으니 어느 누구도 쉬 짐작하지 못한 급박한 변화와 추락이라 밖에 할 수 없다. 클래식음악 위상 추락의 일차적인 책임은 클래식 음악계 스스로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수용할 문화 사업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학원이나 교육기관은 포화상태이고 연주 단체에는 선배 음악인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어 호황기에 조절 없이 배출된 수많은 음악 인재들의 활동과 생계를 유지할 공간이 없다. 야구나 음악이나 사람들이 사는 곳은 탐욕이 문제다. 끝도 없는 욕심은 인간 본연의 심성이긴 하지만 '적당히'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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