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사회를 재정비하게 하는 힘
[임순만 칼럼] 사회를 재정비하게 하는 힘
  • 임순만 언론인·소설가
    임순만 언론인·소설가 hnanjn@naver.com
  • 승인 2019.09.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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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 전 국민일보 편집인·편집국장

국내외 환경이 어지럽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 여파로 세계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정세는 그 어느 나라보다 복잡하게 꼬여있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경제 갈등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한미 관계도 동맹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며 어떤 것도 국익에 우선할 것은 없다는 논리가 매일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중이다. 방위비 분담금 압력이 폭탄급으로 몰려올 기세다. 남북관계도 계속적인 잡음이 흘러나오며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내외 환경이 어지럽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 여파로 세계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정세는 그 어느 나라보다 복잡하게 꼬여있다.

내부적으로는 더욱 심각하다. 여야의 대립은 남북관계보다 거칠고, 대일 관계보다 심하면 심하지 약하지 않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한 달 가량 국회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조국 장관 임명 이후의 정국은 더욱 시끄러울 것이다.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여야의 협치는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대통령을 향해 “총살감”이라는 막말을 퍼붓는 정치인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 이런 어려움을 감싸고 품어줄 어떤 제도적 장치도, 정치세력도, 지성적 인적 자원도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고학력 인적자원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자랑했던 우리사회가 논리와 지성을 벗어던지고 언제부터 이렇게 막무가내로 치닫는지 난감한 나날이다.

내 서랍 속 장지갑에는 일본 1000엔짜리 지폐 하나가 들어있다. 일본 작가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얼굴이 들어있는 돈이다. 2004년부터는 1000엔 권 지폐 인물이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오로 바뀌어 지금은 거의 유통되지 않는 구권(舊券)이다. 소세키는 우리나라의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보다 앞선 시기의 근대 작가였음에도 오늘날 읽어도 산뜻한 감각과 흡인력, 깊이를 동시에 갖춘 작가다.

소세키는 1900년 일본 문부성 제1호 국비유학생으로 런던에 유학 가 쓴 단편 ‘런던탑’에서부터 말년의 산문집 ‘유리문 안에서’에 이르기까지 낮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고 있지만 그의 작품에 ‘애국애족’이나 ‘계몽’ 같이 누군가를 계도하려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적 모순과 개인의 불안과 같은 작은 단위 속에서 정확하고 유려한 문장이 펼쳐진다.

지금 소세키를 얘기하는 이유는 좋은 작가 한 명을 갖는 것이 한 사회에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역사적 주요 전환기 때마다 소세키 문학 붐이 인다고 한다.
지금 소세키를 얘기하는 이유는 좋은 작가 한 명을 갖는 것이 한 사회에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역사적 주요 전환기 때마다 소세키 문학 붐이 인다고 한다.

지금 소세키를 얘기하는 이유는 좋은 작가 한 명을 갖는 것이 한 사회에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역사적 주요 전환기 때마다 소세키 문학 붐이 인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패배 직후에도 일대 바람을 일으켰지만 1989년의 동구혁명, 1991년 소련 붕괴, 2003년 자위대 이라크 파병문제 등 일본사회가 떠들썩할 때마다 여러 매스컴에서 소세키를 재조명하고, 그의 문학전집이 다시 출판된다고 한다. 일본에는 사회가 불안할수록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성찰케 하는 텍스트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반성적 힘을 제공해서 어려울 때 사회를 재정비하게 하는 그리움의 인물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사회의 중심을 잡아줄 원로들이 존재했었지만, 좌·우의 대립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지금은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렵고, 나선다고 한들 누가 존경을 하거나 깊이 경청할 것 같지도 않다. 한국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을 얻어 21세기 지구촌에 꽤 오래 전부터 확산되어 왔다. 그러나 그 중심에 전범(典範)이라고 여길만한 작품 혹은 캐릭터가 여간해서 등장하지 않는다. 한류는 오랜 일제식민지와 군부독재 시절을 극복한 사회의 기층에서 발현되는 발랄한 문화현상으로 시작해 경제한류로 옮겨가고 있지만 그것을 리드해 줄 근원적인 힘을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 몇 몇의 대중연예기획사에서 가혹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팝과 드라마가 그 줄기이고 내용은 혼성문화의 짜깁기와 모방의 언저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류가 한 단계 상승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경박함을 극복하고 지구촌 동시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서사(敍事)이 출현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의 중심은 문학의 서사력에 있고, 그런 서사의 출현이 가능한 사회라야 중심이 깊어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츠메 소세키 등장 이후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기구치 칸(菊池寬),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등을 비롯한 쟁쟁한 작가군이 약 100년간 세계문학에 선풍을 일으킨 일본의 경우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내일 모레가 추석이다. 곧 3천만에 육박하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핵가족 단위의 삶에서 일가친척들이 만나는 더 큰 단위의 만남이 형성될 것이다. 우리 전통의 삶이 핵가족 단위로 바뀌면서 명절 문화도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추석 명절 가족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한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먼저 가족에게서 우러나오는 힘을 얻어 바로 서야 한다. 우리를 본질적으로 바로 서게 하는 것은 부모형제나 고향과 같이 존재의 탄생과 관련된 근원적인 힘이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성찰케 하는 텍스트나 인물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가족이 1차적인 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명절은 중요하다. 가족들과의 만남을 통해 흐트러진 힘을 모으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석 명절이 흐트러진 우리를 재정비하게 하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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