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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평] 트리술리 물소리 “네팔 향한 한없는 사랑, 사진·글로 표현”

이용준
  • 입력 2019.08.13 12:02
  • 수정 2020.02.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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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탐방기, 김홍성 시인의 『트리술리의 물소리』(다시문학 2019) 호평 이어져

김홍성 시인, 『트리술리의 물소리』(다시문학 2019).
김홍성 시인, 『트리술리의 물소리』(다시문학 2019).

담백하다. 좋지 아니한가. 정녕이든 너무든 아주든 부사가 생략돼 과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좋지 아니한가. 목적 없는 여행기는 지루하다. 목적이 추상적이면 더욱이 지루하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내려놓기, 낯선 삶의 동경 따위는 감흥이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트리술리의 물소리』는 나까네 무아, 석청을 찾아 떠나는 네팔기행이다. 목적이 절로 웃기되, 아무튼 구체적이다. 좋지 아니한가. 12월이고, 일본은 하시모토 류타로가 총리로 있던 시절이다. 아베가 지랄하는 시절은 아닐 때다. 이 땅은 그럭저럭 조용하던 때다. 김 씨, 박 씨, 황 씨, 권 씨는 네팔로 간다. 복 받은 자들이다.

복 받은 자들은 가트랑에서 석청을 구한다. 복 받은 자들은 네팔의 소주 격인 럭시를 타서 그 석청을 마신다. 석청이 온몸에 퍼진다. 일시적 충격이지만 그들은 골로 갈 지경에 이른다. 12월 24일, 바깥은 눈이 내리고 있다. 죽어도 좋지 아니한가.

어쩌고저쩌고해도 『트리술리의 물소리』 미덕은 절제에 있다. 담백한 문장은 단숨에 나오지 않는다. 몇 번씩 곱씹어야 나오는, 감정을 절제한 부러운 문장이다. - 유채림


책은 28년 전 추억을 소환하고 있지만, 저자 내면에서는 트리술리의 물소리가 부활하고 있다. 다시 가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저자의 심정이 한편의 산문시 같다. 이런 그리움의 경지라면 포천 우음산 우거의 낙숫물소리에서 트리술리의 물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홍성 선배의 방랑벽을 떠올리면, 가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위의 방랑자’와 슈베르트 ‘방랑자-환상곡’이 겹쳐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이 음반을 틀었다. - 박성용


글자로 산을 형상화한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네팔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트리술리강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합니다. 시작은 차가운 빙하였지만 깊고 좁은 계곡을 노도처럼 밀고 내려가 평원을 적시는 강이죠. 그 강을 따라 가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이 책은 김홍성 선배님이 카트만두에 소풍이라는 음식점을 내고 살던 시절에 떠난 여행입니다. 그 시절에 선배님은 참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 네팔을 갔을 때 카트만두에서 만나 맥주잔을 나누고, 누렇게 익은 보리밭길을 함께 거닐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선배님이 영영 그곳에 사실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포천 산정호수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으셨네요. - 김산환


평소에 그토록이나 흠모하고 존경하는 형님의 책이 나왔다. 이야기의 골개는 네팔의 석청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나까네 무아를 복용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기실 그들이 찾아다닌 풍광은 아무런 번잡도 없이 오로지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들만 놓인 소박한 풍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홍성 형님은 이로부터 히말라야에 매료되어 이듬해 인도 라다크, 그 이듬해 티벳 등을 다니다가 급기야 네팔 카투만두에서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열고 9년간을 지내게 된다. 형님은 ‘오지탐험 여행가’라는 타이틀도 있다. 젊은 시절 강원도 홍천의 내면 땅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사진= 최삼경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 최삼경 페이스북 갈무리).

네팔의 풍경만큼이나 조미료기가 없는 담박한 문장은 한 줄씩 읽을 때마다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되는 느낌이다. 지금은 경기도 포천 땅 명성산 기슭에서 칩거하고 있다. 세월을 어쩌랴 조실이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허공한 헤어스탈에 등도 조금 굽었지만 형님은 여전히 소년이다. 술 한 잔 걸치면 걸직하게 나오는 그 소탈한 웃음과 호탕한 목소리를 기억하자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에 드리운 우울의 커튼이 걷어지는 느낌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한 소년들이 있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시를 쓰고 글을 쓰며 지낸다. - 최삼경


아우, 향산 김홍성이 보낸 ‘김홍성 사진에세이’란 부제가 붙은 책이다. 그가 이 책을 출간했다는 건 얼마 전 그의 페북을 통해 보고 나도 축하의 덕담을 달았다. 향산은 한 때 고철이란 이름으로 십 년 가까이 히말라아 자락을 헤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나도 그 덕분에 몇 차례 히말의 설산과 붉은 라리그라스와 쏟아지는 별떨기를 보기도, 앓기도 했다.

이 책은 고철이란 이름으로 히말 자락을 헤매던 한 풍경을 그의 눈과 감성으로 사진과 글을 담은 책이다. 그가 높고 먼 산자락의 방랑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고철’이란 이름은 히말 설산과 함께 깊이 접어두고 대신 고향의 낮고 포근한 산에 마음 두라는 바람에서 ‘향산(鄕山)’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는 흔히 시인이라는 족속이 스스로의 나약함을 숨기려고 괜한 객기를 부리는 것처럼 오랜 날들을 용감한 척하며 지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더 없이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사람과 풍경 속에서 그의 따스한 시선과 가슴이 느껴진다.

유난히 뚱바와 락시를 좋아했던 그의 히말 시절 또한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이 책은 그 때의 한 풍경 속 기록이기도 하다. 내 바람은 향산 아우가 다시 원기와 건강을 회복해서 숨 가쁜 설산은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 자락 어디쯤에서 뚱바 통을 함께 비우며 쏟아지는 별들과 끊임없는 계곡 물소리를 밤새워 듣고 싶다. 인연 닿는 페친들도 구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날이다. - 이병철


어제 오후엔 택배로 배달된 책 한 권을 읽으며 더위를 이겼다. 매미 울음소리 제법 음조를 잡아가는 장마 끝의 무더위에 책 한 권 들고 앉아 삼매경에 빠지면 이보다 좋은 피서법이 어디 있으랴. <트리술리의 물소리> 제목부터가 피서에 제격이다. 트리술리는 히말라야 쪽의 지명이고 그 깊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라니.

김홍성 사진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일가를 이룬 물흐르듯 자연스런 필치로 엮어내는 글들과 시원하게 만년설을 이고 서 있는 고봉준령들의 모습과 함께 눈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현지인들의 순박한 모습들 그리고 현지 어린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들이 사진으로 담겨 있다.

이 책은 온전한 사진집이라 해도 될 듯싶다. 글로 쓴 에세이들마저 저자의 이미 정평이 있는 뛰어난 묘사력으로 시각적 형상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른 인분덩어리들이 굴러다니는 학고네(똥)마을, 코까네(똥을 먹는다) 마을 풍경에서 어렴풋이 떠올리는 우리 기억 속 고단했던 시절의 삶의 편린들이 네팔을 우리의 전생처럼 인연으로 맺어 놓는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 담긴, 트리술리의 물소리처럼 잔잔하게 우리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인간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눈 덮인 팡상데스 패스를 지나 힌둥으로 가는 꿈에서 깬 날 뒤척이며 남은 밤을 훤히 밝힐 저자 김홍성 시인의 건강과 건필을 빈다. 김 시인이 좀 더 건강해지면 좋아하는 위스키라도 한 병 들고 가야겠다. - 박정규


‘트리술리의 물소리’는 27년 전, 내가 일하던 잡지사의 편집주간과 그 일행들의 네팔 원정기다. 그들은 어느날 아침 불현 듯 뭣에 꽂힌 듯이 네팔의 야생꿀을 채취하는 허니헌터를 취재하기 위해 대규모 취재단을 꾸려 네팔로 떠났다…사진들은 이미 네팔 시골의 27년 전 모습을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모습들은 우리나라 1960년 혹은 70년대 시골 모습과 많이도 닮아 있다. 27년 전 네팔 시골 사람들의 생활상과 가난하지만 맑고 선한 그들의 눈동자에 대해 저자는 한없는 사랑을 사진과 글로 표현하고 있다. - 조광래


오늘 아침 나는 소중한 보물 같은 작은책을 보았다. 너무 기쁘다. 작가 김홍성 님의 속살이 훤히 비치고 있다. 참 행복하다. 노순의 경지에서, 맘씨 좋은 시골 할아범 같은 그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스럽게 트리술리의 물소리가 되어 전해진다. 사랑해요 산정호수할아범! - 강찬모


노인 하나 세상을 떠나면, 대도서관 하나가 화재로 사라진 것과 같다고 한다. 저자는 선배님으로 설산 바닥을 내 집처럼 지냈던 분이다. 표지 안쪽 저자 소개에는 '영구 귀국'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책을 통틀어 유일한 부적합, 부적절 단어로 여겨진다. 영구라니? 영구, 영원, 이런 단어는 사내들에게는 금기어가 아닌가. 더구나 귀국이라니, 어디가나 이불 펴는 곳이 본국이기로 마음먹고 사는 사내들에게 자발적 폐쇄적 표현을 툭! 던지시다니. 책 안의 내용은 물론, 찡한 사진 등등, 다른 흠집을 전혀 잡을 수 없어, 영구+귀국을 붙잡고 늘어진다. - 임현담


홀로 방랑하며 사진을 찍고 그 속에 담긴 ‘서정적’ 기억을 기록한 책을 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리술리의 물소리> 첫 장을 펼쳐들게 되었다. 특별한 효험이 있다는 석청을 찾아 네팔의 산골 마을을 헤매는 한국 아저씨들, 닭을 삶아 먹고, 밤마다 네팔식 막걸리인 창을 (퍼)마시고, 하필이면 네팔 사람들이 사람은 못 먹고 가축이 아플 때만 먹인다고 하는 나까네 무아를 찾아 이 마을 저 마을로 수소문 하며 헤매다니는 그들. 늑대 소년 무리의 방황기를 보는 듯한 느낌, 홀로 치즈와 와인을 맛 본 뒤 총각김치와 막걸리로 느끼한 속을 씻어내는 뒤풀이를 한 느낌이기도 했다. 재밌어서 한 달음에 읽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선명한 풍경들,

비행기 타고 먼 나라로 떠나는 일에 이제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음에도, 이런 장면들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그곳이 그리워졌다. 도대체 누가 이 많은 돌계단을 놓았을까, 궁금해 하며 랄리구라스 꽃그늘 아래서 가쁜 숨을 고르던 그곳. - 부희령


선생님, 책장을 덮으니 트리술리의 물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요. 더운 공기로, 간밤의 빗소리로. 책에 있던 단어들은 몇 년 전 선생님 계신 우음산골에서 보았던 색색의 룽따가 있던 풍경과 겹치기도 합니다. 선잠에서 깨어 울던 아이의 입에 넣어준 박하사탕이 내 입에서 굴러다니고요. 이곳은 더운데 트리술리의 물소리 따라 겨울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아요. 길모퉁이마다 돌아보면서요. 책이란 건 참 신기해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본 것처럼 나를 데려다 놓네요. 길 위에서 멈춘 불도저가 된 것 같고, 그곳에서 물소리를 따라 다시 걷게 만드니까요. 읽는다기보다 책 속을 걷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이 찾아나선 나까네 무아를 맛본 그 새벽, 무게도 없는 눈송이일 뿐인 싸락눈이 가한 충격으로 물처럼 전율하는 몸 부분을 읽는데 ‘치소’, ‘아 치어’라는 셀파의 단어가 튀어나왔어요. 고통과 공포가 사라진 다음날의 고요는 ‘따또’! 몸은 좀 어떠신가요? 소가 아플 때 먹는다는 나까네 무아, 혀에 한 방울, 딱 한 방울 얻어먹고 싶어지는, 여름 속에서. - 하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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