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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7] 친일 넘어 친나치, 친일파 작곡가의 우리 군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08.09 08:45
  • 수정 2020.11.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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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친일" 안익태가 만든 애국가 부르지말자는 공청회 열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은 8일 국회에서 재단법인 씨알과 공동으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어랴 하나'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개최했다. 안 의원은 한일 경제 갈등이 고조되어 반일감정이 극대화 되어 있는 이번 기회야말로 친일 잔재를 청산 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판단하여 국민에게 판단을 맡겨보자는 의미로 공청회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뉴시스1]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뉴시스1]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1906~65)가 친일파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하며 육군에 입대하면 누구나 배우게 되는 '육군가'를 포함 국방부가 만든 '군가 총록집'의 군가 298곡 중 35곡이 친일파로 분류된 김동진, 이흥렬, 김성태가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김동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된 대표적인 '친일음악가', 1940년과 50년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위한 연주활동을 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곡을 만들며 부역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흥렬과 김성태 역시 일제의 징용, 징병을 찬향하는 노래를 다수 작곡한 어용 친일 작곡가이다. 정부는 '국군이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지만, 병영에서는 매일 친일파가 만든 군가가 울려퍼지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 국민 역시 친일파 작곡가 안익태의 노래를 무 비판적으로 받아서 쓰고 애국가로 숭상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음악이 유입되었을 때 그런 신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는 유한계급, 엘리트 계층이 용이 했을 것이고 학업을 통해 출세를 하려고 하면 일본 사람들이 세운 학교나 문화선진국인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의 문화를 숭상하고 받아들이면서 찬미자로 조금 씩 변모할 것이다. 꼭 친일파 아니여도 해방 후 급속도로 증가한 미국을 떠 받드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유학을 갔다오면 갔다 온 나라의 문물을 흡입하고 수용하는 건 당연하다. 그럴려고 유학 가는 것이다. 그 당시 서양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이나 본 고장인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 온 것도 아니고 유럽의 문화를 일본이라는 나라를 통해 전해 받은 것에 일차적인 문제가 있다. 당시 기술과 통신의 한계로는 전체와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 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 잃은 국민의 설움으로 우리 것을 배척하고 선진문명은 무조건 대단한 사대주의가 팽배해 있었고 그건 배운 사람들이 더 했을 것이다.

친일을 하려고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 좋아 음악을 배우고 음악으로 성공하려고 하니 친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작년 6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콘서트 & 오페라 [백년의 약속]
작년 6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콘서트 & 오페라 [백년의 약속]

그건 꼭 음악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20세기 초반에 그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작곡가 입장에서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역사적, 사상적, 민족적 담론은 활발하면서 정작 음악자체에 대해 이해과 관심은 약소하다는 것이다. 음악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문화가 성숙하고 감상자들의 심미안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멜로디만 듣고 어떤 곡이 친일파 작곡가의 노래인지 아님 항일이나 민족정기를 표출 한 노래인지 맞추는 블라인드 테스를 해보자. 음악은 뒤로 제쳐두고 인물의 행적에만 모든 분야가 맞춰져 있다. 물론 기회주의자이자 민족반역자이고 자신의 영달과 성공을 위해 민족과 양심을 판 파렴치한이다. 허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남겨 놓은 카르텔이다. 그렇게 공부하고 입지를 굳힌 사람들이 사회 각 요처에 자리 잡아 제자를 양성하고 음악을 전파했다.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로 바뀌고 초대 음악대학 학장이 친일파 음악인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양성된 제자들이 스승의 과오를 캐물을 수 있을지 아님 도리어 끼리끼리 더욱 엘리트 의식에 파묻혀 선민사상으로 음악계를 좌지우지 했을지 그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음악성과 예술성이 높아서 당대 최고의 작곡가고 애국가로 선정되었고 군가로 보급되었다면 어떤 점이 그런지 평가하고 지적해야지 그저 아는 노래고 지금까지 해왔고 불러왔고 그 기본적인 거니까 보급되고 그저 무의식에 젖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안익태는 친일이자 스승인 슈트라우스와 마찬가지로 나치에 부역한 사람이다. 그럼 안익태 애국가의 어떤 점이 음악적으로 오류가 있어서 애국가로 적합하지 않은지도 함께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슈트라우스나 칼 오르프 등 당대 독일의 작곡가들은 그럼 파시즘이 아니고 나치가 아닌가?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작곡가니 그럼 우리나라에서 연주를 금지했는데 어떤 음악적인 맹독성과 사상적 위험성 때문에 당국에서 그런 조치를 내렸는가?

 안중근의 옥중가는 그럼 왜 친일파 작곡가의 군가에 밀려 우리 장병들이 부르지 않는가? 김동진에 비해 군가로서 효용이 떨어져서 인가? 아니다. 힘이 없고 세력이 없고 안중근의 옥중가를 학계에서 뒷받침해 줄 세력이 없어서이다. 친일파가 만든 노래 대신 올바른 곡들을 병영에 보급해야 한다. 그럴려면 그 카르텔부터 끊어야한다. 우리는 너무나 세뇌 당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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