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21] 선동열·정삼흠의 음주 투구

기영노 전문기자
  • 입력 2019.08.05 11:24
  • 수정 2019.09.27 18: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선수의 현역 시절 구위는 난공불락이었다. 마무리 투수로 활약할 때는 그가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 팀은 공격 패턴이 달라졌다.

사실, 2005년 선동열 감독이 내세웠던 삼성 라이온즈의 ‘지키는 야구’는 선동열을 보유했던 김응룡 감독이 써먹던 작전이었다. 아무튼 해태 타이거즈를 제외한 다른 팀들은 선동열을 꺾기 위한 갖가지 비책을 마련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선동열의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웬만한 선수 직구에 버금가는 140km 대의 슬라이더는 알고도 당하는 傳家(전가)의 寶刀(보도)였다. 선동열은 제구력도 정상급이었기 때문에 기다린다 해도 1루로 나갈 확률은 거의 없었다.

선동열과 선발 로테이션에 맞대결하는 투수들은 ‘아~ 1패는 떼놓은 당상이구나’라며 자책을 해야 했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MBC 청룡의 ‘자살 폭탄주 작전’이었다. 어차피 맨정신으로 맞붙어서는 승산이 없기 때문에 술을 먹고 싸워 보려는 것이었다. 당시 MBC에는 선동열과 고려대 동기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면서 술친구이기도 한 정삼흠 투수가 있었다.

정삼흠은 머리 좋고 운전 잘하고 노래 잘하고 술도 잘 먹는, 한마디로 팔방미인이었다.

1987년 9월 2일 잠실에서 있을 해태 타이거즈 대 MBC 청룡(지금의 LG 트윈스) 경기를 하루 앞두고 선발투수로 나설 정삼흠(MBC 청룡) 투수가 해태 타이거즈 선발로 예정된 선동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태의 선동렬(좌)과 청룡의 정삼흠.
원조 국보급 투수 선동렬(좌)과 정삼흠 선수.

“동열아~ 나다.”
“응, 삼흠아. 웬 전화냐. 내일 잘 던져라.”
“나야 자신 있지만, 네가 웬만큼 던져야 이겨 보지.”
“그건 그렇고 왜 전화했어?”
“오늘 좀 만나자.”
“엄청 몸을 사리는 놈이 선발을 하루 앞두고 나를 만나자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네가 서울로 왔으니까 내가 한잔 사지.”
선동열은 잠시 뜸을 들였다. “좋아, 어디로 나갈까?”

두 사람은 내일 선발 투수라는 사실들을 애써 잊은 채 부어라 마셔라 술을 먹어 댔다.

“삼흠아! 근데 너 무슨 일 있는 거니?”
“······.”
“혹시 내일 선발 취소된 거 아니냐고?”
“내일 나 선발 맞아, 근데 술이 땡기는 걸 어떡하니.”
“그런데 하필 술 파트너가 나냐고?”
“마, 우리 팀에서 누가 내일 선발인 나와 술을 마시겠냐, 그렇다고 나 혼자 마시자니 불공평하잖아.”
“맞다, 너는 술 먹고 던지고 나는 그냥 맨숭맨숭한 상태로 던지면 그렇지….”
“이제 알았으면 마시라고.”
“좋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뜰 테니까 마셔.”

두 사람이 술집을 나선 것은 새벽 5시가 지나서였다. 저녁 6시 30분의 등판 시간을 13시간여 남겨 놓고 있었다. 그들이 마신 술은 양주 4병에 맥주가 수십 병이었다. 정삼흠은 선동열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구단에 전화를 걸었다.

“일단 성공했습니다.”
“너는?” 구단 관계자는 그때까지 자지도 않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네, 저도 마실 만큼 마셨지만, 저녁도 든든히 먹고 컨디션도 챙겼기 때문에 말짱합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잠실야구장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선동열이 평소보다 더 완벽한 투구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정삼흠도 7회까지 2점만 내줄 정도로 좋았지만, 워낙 선동열의 球威(구위)가 좋아서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후 MBC 라커룸으로 선동열이 찾아와서 맥없이 앉아 있는 정삼흠에게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야, 우리 다음에도 또 음주 투구하자. 광주에서는 내가 살게.”

P.S 이 꽁트는 1987년 9월 2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해태 타이거즈 대 MBC 청룡(지금의 LG 트윈스 전신)의 경기를 앞두고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경기 결과는 선동열의 호투로 해태 타이거즈가 MBC 청룡에 5대0으로 완승을 거뒀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기 전날 술을 마시는 경우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투수가 거의 없습니다. 모든 선수가 시즌 중에 술을 일절 마시지 않습니다. 뭐, 식사한 후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 정도 하는 것은 이해해 주자구요.

<미디어피아>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기영노 기자의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를 연재합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기영노 콩트는 축구, 테니스, 야구 등 각 스포츠 규칙을 콩트 형식을 빌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기획 연재입니다. 기영노 기자는 월간 <베이스볼>, <민주일보>, <일요신문>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 생활을 했으며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