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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 기행 66 ] 체르둥 롯지

김홍성 시인
  • 입력 2019.08.05 07:19
  • 수정 2019.09.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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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전, 이번 순례를 위해 지리에 도착했을 때 들은 바에 의하면 엉망이 되었다던 체르둥 롯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아내와 어린 자녀와 처제를 비롯한 식구들 모두 환한 얼굴이었다. 태양열을 이용한 온수 샤워기도 잘 작동되고 있었으며 침구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지리 골짜기에 흐르는 천변의 녹지에 소를 방목하는 목장이 있다. ⓒ김홍성  

 

목장에서 가꾸는 메리골드. ⓒ김홍성  

 

지리의 장터 ⓒ김홍성 

 

피케 순례의 마지막 날, 마침내 지리의 시장통에 들어섰을 때였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마주 오는 사람들 속에서 '안녕하십니까'하며 반갑게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지리 시장통 초입에서 여인숙 겸 식당인 체르둥 롯지를 운영하는 비제이 지렐(30 대 초반)씨였다. 지난 봄 순례의 마지막 밤을 그의 롯지에서 묵었을 뿐인데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지렐(Jirel)이라는 성이 말해 주듯이 그는 지리의 토박이이며, 지리를 거쳐 간 수많은 트랙커들 사이에서 잔뼈가 굵었기에 여러 나라의 인사말을 구사할 줄 알았다. 그는 나에게 영어 불어 독일어는 물론 일본 스페인 러시아 등의 인사말을 줄줄이 들려주고는 한국어로는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그가 말한 '안녕하십니까''감사합니다'와 함께 그 때 나에게 배운 것이었다.

3 주전, 이번 순례를 위해 지리에 도착했을 때 들은 바에 의하면 엉망이 되었다고 들은 체르둥 롯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아내와 어린 자녀와 처제를 비롯한 식구들 모두 환한 얼굴이었다. 태양열을 이용한 온수 샤워기도 잘 작동되고 있었으며 침구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체르둥 롯지의 키보드와 레스토랑 ⓒ김홍성  

 

체르둥 롯지의 전면은 지리의 중심 도로에 인접해 있다. ⓒ김홍성 

 

샤워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은 김 선생은 힘이 나는지 '돼지고기뚱바'를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체르둥 롯지에서의 저녁 식사는 7시에 맞춰 놓고, 앙 다와는 볼 일을 보게 자유 시간을 주고, 김 선생과 나 둘이서만 거리로 나왔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집은 3 주 전에 돼지 요리를 맛나게 먹은 그 집이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썰렁했다. 낯익은 종업원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낯선 사내 혼자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장사 안 한다'며 퉁명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가 결국 타파팅에 갔다. 지난 봄 순례 때 지리에서의 첫 날 밤을 보낸 허름한 주막집이 타파팅인데, 앙 다 씨와 총누리를 비롯한 오컬 둥가의 빠쁘레 마을 출신이 주로 드나드는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빠쁘레 마을 출신인 앙 다와 씨는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도 돼지 고기가 없었다. 앙 다와 씨가 타파팅 종업원을 푸줏간에 보냈으나 빈손으로 왔다. 이미 다 팔고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말린 물소 고기볶음을 안주로 뚱바를 마셨다. 안주는 시원치 않아도 뚱바는 진했다. 김 선생은 오랜만에 맛보는 그 진한 뚱바만으로도 행복하다며 흐뭇해했다.

타파팅에는 한 무리의 청년들도 뚱바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의 집은 네레 바잘 인근이며 다음 날 아침 일찍 네레를 향해 떠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시금 그들을 따라 산중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스쳤다. 네레 바잘의 맨 끝 주막집의 큰 딸 줄리 구릉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중 한 청년이 사티(친구)라고 하며 반가워 했다.

우리는 한 열흘 더 걸어서 배에 왕짜를 새기고 돌아간다는 우리의 당초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앙 다와 씨는 적극 찬성이었다. 트레킹 시즌이 끝나가는 판에 열흘치 일거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리에서 비쿠 곰파를 거쳐 따또바니로 내려가는 열흘 코스가 있다며 우리가 지나갈 마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댔다.

 

- 지리, 체르둥, 자야쿠, 롤바링, 라마갈, , 슈쿠티, 비쿠 곰파, 싱상, 다랑사, 칼딸, 바라비제 …….

 

지명만 들어도 새삼스럽게 가슴이 뛰는 그 지역은 따망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리에서 가기 보다는 반대편에서 지리로 오는 것이 수월하다는 말도 했다. 내가 '어떻습니까, 여기서 며칠 쉬었다가 한 열흘 더 걷는 거 말입니다' 했더니 김 선생은 자신이 없는 듯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나는 무르팍이 안 좋다고 했던 김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나 또한 무르팍이 안 좋아서 밤이면 잠을 못 이룬 며칠 밤이 떠올랐다. 배에 왕짜가 새겨지는 건 좋지만 무르팍을 버리면 걷지 못하니 무슨 낙으로 살겠나 싶었다. 우리는 더 걷기를 포기하고 앙 다와 씨를 시켜서 다음 날 아침에 카트만두로 나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체르둥 롯지의 주인 비제이 지렐씨의  딸 ⓒ김홍성 

 

체르둥 롯지의 주인 비제이 지렐 씨의 아들 ⓒ김홍성 

 

체르둥 롯지의 자녀들을 친척 언니가 돌보고 있다. ⓒ김홍성   

 

비제이 지렐 씨의 어린 딸이 신문을 펼쳐놓고 글씨 연습을 하고 있다. ⓒ김홍성 

 

얼큰히 취해서 체르둥 롯지에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김 선생은 그가 쓰던 스키 스틱 한 벌을 앙 다와 씨에게 주었다. 나는 내 우모복을 주었다. 앙 다와 씨는 몹시 기뻐했다.

산중에서는 저녁 먹기 무섭게 잤지만 내일이면 카트만두로 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허전했다. 식당에 그대로 앉아 맥주를 마시는 중에 여러 명의 나이 든 현지인들이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서 전투복을 입고 자동 소총을 든 경찰들도 들어왔다. 그들은 테이블을 달리하고 앉았지만 같이 차를 주문했고 간간히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두 그룹 사이가 왠지 어색했다.

그들이 간 다음에 비제이 지렐 씨에게 물으니 나이든 현지인들은 마오이스트 공산당들이었다. 경찰들과 마오이스트들이 같이 차를 마시는 일은 이전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네팔 총선이 무난히 치러지기를, 그리하여 네팔 정치가 안정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 날 밤 꿈에 나는 어떤 곰파를 방문했다. 높직한 바위 벼랑 위에 있는 그 곰파에서 아주 어린 스님도 만났는데 그 스님의 입에서 비쿠 곰파라는 말이 나왔다. 그 때 잠에서 깨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쿠 곰파는 지리에서 따또바니로 가는 열흘 여정의 중간에 있다는 곰파였다. 공연한 꿈을 꾼 나머지 나는 또 그곳을 찾아 떠날 생각에 잠기곤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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