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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케기행 65 ] 지리를 향하여

김홍성 시인
  • 입력 2019.07.29 06:00
  • 수정 2019.09.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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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도로는 도로의 경사도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멀리 에돌며 왔다. 걷기는 그 길이 편하겠지만 시간이 배 이상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경사가 급한 옛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랍짜 반장 3104 미터에서 피케를 향해 합장하였다. 랍짜 반장을 넘어서면 더 이상 피케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피케 방향이 아니다. 가우리 상칼 등의 설산 연봉이 보인다. ⓒ김홍성   

 

청명한 아침이어서 피케가 잘 보였다. 잘 하면 오늘이 이번 순례에서 마지막으로 피케를 바라보는 날이라 생각하니 피케의 자태가 새삼스러웠다. 피케 정상을 시계의 중심에 놨을 때 우리의 현 위치는 7시 방향이었다. 3주 전에 우리는 8시 방향인 지리에서 피케로 접근하여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크게 돌아 이제 지리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3주전, 우리는 순례를 시작하면서 배에 왕짜王字가 새겨질 때까지 걷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데는 한 달이면 족하다고 나는 장담했었다. 한 달 내리 걸으면 배에 왕짜가 새겨진다는 이야기는 결코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라다크의 잔스칼과 마카밸리를 한 달 쯤 걸었던 1992년 여름에 내 몸무게는 70 킬로그램에서 58 킬로그램으로 줄었다. 그 때 빠진 12 킬로그램은 오직 뱃살이었는지 허리띠에 새 구멍을 두 번이나 뚫어야 했고, 배의 지방층 밑의 왕자 근육이 선명하게 두드러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라다크의 잔스칼 도보여행은 해발 평균 고도가 약 4000 미터 정도 되는 건조한 사막 지대였다면 이번 피케 도보여행은 해발 평균 고도가 3000 이하여서 근 3주를 걸었음에도 우리들 배는 여전히 항아리 배처럼 불룩했다. 나는 우겼다. 지방층은 막바지에 한꺼번에 빠지므로 열흘 정도만 더 씩씩하게 걸으면 정말 배에 왕짜가 새겨진다고, 그러니 더 걷자고.

우리는 사실 몹시 지쳐 있었다. 그리고 무르팍이 뜨겁게 달구어져 화끈거렸다. 자다가 무릎이 아파서 깰 지경이었다. 지치는 것은 쉬면되니까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무르팍은 아껴야 했다. 우리는 일단 지리에 가서 하루 이틀 쉬고 난 다음 한 달을 채울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의논하기로 했다.

 

맨 왼쪽 설산이 가우리상칼. ⓒ김홍성 

 

설산 가우리상칼 ⓒ김홍성 

 

여장을 꾸려 놓고 뜨거운 차를 마시는 중에 동네 노인네들이 들어왔다. 그 중 한 노인네가 내 스틱 한 짝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살피더니 기어이 달라고 말했다. 내 스틱 두 개는 짝이 안 맞는 것이었으며, 눈 비탈이 아니라면 한 개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서 한 개를 그 노인에게 주었다. 노인은 크게 기뻐하며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하면서 다음에 오면 자기 집에 초대하여 술을 내겠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주막집 할머니가 나머지 한 짝을 만지작거리며 달라고 했다. 그녀는 내게 하루만 더 걸으면 쓸모가 없는 지팡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지리부터 다시 열흘 쯤 더 걸어야 한다고 대답했지만 할머니는 섭섭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7시에 길에 나서서 반쩨레(Banchere) 마을을 지나고, 랍짜 반장(Lapchane 해발 3104 미터)을 넘었다. 반쩨레 마을로 가는 길에서는 설산이 잘 보였다. 특히 가오리 상칼이 멋지게 보였다. 지리에서 토세(Those)를 거쳐 랍짜 반장을 넘어온 트랙터 도로는 산허리를 길게 허물며 반달로 이어졌다.

 

도로 경사를 줄이기 위해 멀리 에도는 트렉터길. ⓒ김홍성  

  

잠수교가 생겼지만 교통이 뜸해서 빨래터가 되었다. ⓒ김홍성  

 

 

흘러가는 개울물을 따다서 지리로 가는 나그네들 ⓒ김홍성  

 

트랙터 도로는 도로의 경사도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멀리 에돌며 왔다. 걷기는 그 길이 편하겠지만 시간이 배 이상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경사가 급한 옛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랍짜 반장 3104 미터에서 피케를 향해 합장하였다. 랍짜 반장을 넘어서면 더 이상 피케를 볼 수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랍짜반장 너머부터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나왔고, 숲 너머로 랑탕과 가네시히말 쪽 설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레빠니라는 곳의 따망 여인들이 운영하는 주막집에 도착하니 아침 10시였다. 나는 이곳에서 아침밥을 먹고 싶었으나 앙 다와는 장이 서는 큰 마을인 토세로 내려가서 먹자고 했다. 결국 차만 마시고 또 걸었는데, 경사가 심해서 주고 온 지팡이 한 짝이 아쉬웠다. 토세까지 약 두 시간이 걸렸다.

토세는 시바라야의 하류에 있는 마을로 시바라야와 아주 흡사한 마을이었다. 지리로부터 들어오는 트랙터 도로는 이곳에서 갈라져 하나는 반달로, 다른 하나는 시바라야로 들어간다고 했다. 우리는 시장 통 어느 밥집에서 국수를 먹었다. 국수 맛은 형편없었지만 양이 차지 않아서 두 그릇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소를 몰고 나와서 뜨게질을 하는 부인 ⓒ김홍성  

 

무거운 쇠파이프를 운반하면서도 씩씩하게 걷는 소년들. ⓒ김홍성  

 

신작로를 달리는 화물트럭ⓒ김홍성 

 

시냇물을 건너고, 마을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서 마주 오는 트랙터 길에 내려서자 시냇물이 흐르는 드넓은 분지에 자리 잡은 지리가 아득하게 보였다. 커다란 쇠파이프 형태의 전봇대를 나르는 소년 둘이 지나갔고, 트럭이 먼지를 풍기며 지나갔다. 학생인 듯한 처녀들도 여럿 지나갔다.

이제 눈앞에 나타난 지리는 아무리 걸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아득했다. 시냇가 논에서 추수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뭘 먹고 가라는 시늉도 했다. 딴 때 같았으면 이때다 하고 내려가 뭘 좀 얻어먹었겠지만 지쳐서 빨리 지리에 가서 쉴 생각만 났다.

나중에 김 선생은 이 순례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리가 눈앞에 나타나고부터 약 한 시간 동안이라고 했다. 우리가 접어든 길은 지리의 시냇가 초원에 자리 잡은 목장을 통해서 시장통으로 나 있었는데, 시장통이 보이자 비로소 안도했으며 갑자기 식욕이 솟더라고 했다. <계속> 

 

지리의 학교에서 돌아오는 여학생들인 듯하다 ⓒ김홍성  

 

추수하는 여성들. ⓒ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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