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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를 향하여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07.25 08:52
  • 수정 2019.07.2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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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시를 향하여 』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꼽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 중 하나로, 독자들을 두 번 속이는 기발한 트릭이 등장한다. 노부인의 저택에 일류 테니스 선수와 그의 부인과 전부인을 비롯한 일곱 명이 초대된 후 의문의 살인이 일어나 배틀 총경이 출동해 테니스 선수가 범인임을 나타내는 각종 증거와 증거를 밝혀내면서 수사가 쉽게 끝나는 듯 하다가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트리려는 수작임이 들어나고 모든 정황이 집결되는 '0시'가 다가옴에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애거서 크리스티 특유의 치밀한 전개와 반전 그리고 인간애가 살아 숨쉬는 명작으로서 올 여름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음료 한잔 마시며 독서로 피서를 보낼 분들께 추천한다.

해문출판사에서 출간한 애거서 크리스티 명작시리즈 0시를 향하여
해문출판사에서 출간한 애거서 크리스티 명작시리즈 0시를 향하여

 그런데 나도 0시가 두렵다. 0시만 되면 쿵, 쿵 하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불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차라리 일정한 박자에 맞춘 소리라면 안정이라도 찾겠지만 그렇지 않다. 바로 0시만 되면 집 앞의 교대 운동장 농구대에서 누군가 혼자 와서 하는 농구공 튀기는 소리가 사람을 짜증나게 만든다. 온갖 생활소음에 시달리는 도심 한복판이지만 대신 생활의 잇점을 잘 누리고 살기 때문에 왠만하며 감내하는데 0시가 넘어 퉁퉁하는 농구공 튕기는 소리는 참으로 고약하다. 방학인데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임용교시나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교대생이 공부하다 지쳐 자정에 나와 혼자 농구를 하면서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거 왜 모르겠냐만은 농구공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반동의 소리가 제각각이다. 어떨 때는 장거리 슛을 하는지 포물선을 그린 공이 골대 백보드를 맞고 튕겨나오는 소리, 혼자서 빠르게 드리블을 하는지 잔발로 총총거리는 볼 바운스, 한번은 길게, 한번은 짧게 불규칙적인 폴리메트릭의 진수가 야심한 정적을 깬다. 그 학생은 자기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단 잠을 방해하는지 모를거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새벽이든 낮이든 학교에서 학생이 고성방가로 난동을 피우는 것도 아니요 운동을 하는건 당연한 권리이다. 내 불만의 대상은 체계화되지 않은 도시개발로 온갖 유흥시설과 상점들과 학원가들이 주택가와 한데 섞인 마구잡이 획지분할이다.

새벽 1시에 술 마시고 담배피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밤이니까 조용히 하자라는 의식자체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단면
새벽 1시에 술 마시고 담배피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밤이니까 조용히 하자라는 의식자체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단면

지난 주 대구의 한 스크린 골프장에서 불이 났는데, 옆집에 살던 50대 남성이 골프공 치는 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면서, 유서를 남기고 불을 지르고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오죽 했으면~~'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불을 지른 A씨는 소음 문제로 스크린 골프장 측과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 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근 주민의 인터뷰에 의하면 밤 9시 넘어서 좀 조용해지려면 딱딱하는 공치는 소리가 심하게 난다고 수시로 고통을 토로했고 몇번이나 스크린 골프장에도 찾아갔다고 한다. 또한 A의 집에서는 '조용한 주택가에 스크린 골프장이 들어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라는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유서까지 발견되었다고 한다. 비극이다.....이건 스크린골프장의 잘못이라기 보다 초등학교 근처에 버젓이 모텔, 주점, 경마장이 허가되서 공존하는 후진국형 구조가 낳은 비극이자 건설업자들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층간소음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남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어느 누구도 피해자가 되지 마란 법이 없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마련한 벤치에서 술을 마시지 마란 법은 없다. 다만 밤에는 제발 취해서 거센 척하면서 욕지거리와 깔깔거리지 말고 조용히 마시고 담배도 좀 안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 앞 바로 앞에 하필이면 대학교의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이 있어 일주일에 2-3번 기계로 쓰레기를 수거하고 좁디 좁은 골목에 마을버스까지 들어와서 엉키고 성킨 진풍경이 하루에도 수십차례 연출되는 바로 그 앞에서 오늘도 작곡을 하고 칼럼을 작성한다.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예민하고 매사에 철저한 놈이 항상 피해보고 다른 이들이 못 듣고 못 느끼는 것을 유난히 반응하는 사람의 괴로움은 다른 이들은 모른다. 오늘도 0시가 다가오고 있다......학원생들이 수업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평화로운 학교 운동장, 밤 10시에 주민들이 운동하는 건 어느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다.
평화로운 학교 운동장, 밤 10시에 주민들이 운동하는 건 어느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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