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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김종삼 시인의 드빗시 山莊 18

박시우 시인
  • 입력 2019.07.24 16:52
  • 수정 2019.09.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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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거울』 중 제2곡 ‘슬픈 새’

새 한 마린 날마다 그맘때
한 나무에서만 지저귀고 있었다

어제처럼
세 개의 가시덤불이 찬연하다
하나는
어머니의 무덤
하나는
아우의 무덤

새 한 마린 날마다 그맘때
한 나무에서만 지저귀고 있었다

-김종삼 ‘한 마리의 새’ 전문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지저귀고 있다
이 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천체에 반짝이곤 한다
나는 인왕산 한 기슭
납작집에 사는 산 사람이다

-김종삼 ‘새’ 전문

▲워너클래식이 EMI를 인수한 후 2013년 에라토 레이블로 재발매한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수아의 라벨 음반. 『거울』을 비롯한 모리스 라벨의 주요 피아노 음악들이 수록돼 있다. ⓒ워너클래식
▲워너클래식이 EMI를 인수한 후 2013년 에라토 레이블로 재발매한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수아의 라벨 음반. 『거울』을 비롯한 모리스 라벨의 주요 피아노 음악들이 수록돼 있다. ⓒ워너클래식

김종삼 시인은 새를 주제로 두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1974년 9월 『월간문학』과 1977년 1월 『심상』에 발표한 시들입니다.

김종삼에게 새는 슬프고 외롭고 더 나아가 자기 죽음을 예고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김종삼의 새는 자유의 상징이나 낭만의 표상이 아닌 무덤가를 배회하고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를 내는 처연한 실존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그맘때는 가시덤불이 찬연한 날이기도 하고, 고생만 하다가 죽은 어머니와 먼저 세상을 뜬 어린 동생의 기일이기도 합니다. 새는 시인이 사는 산동네 납작집 근처의 나무에 날아와서 웁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새는 슬픈 사연을 알기라도 하듯 한 나무에서만 지저귀는데, 세 개의 가시덤불 중 하나는 언젠가 들어가게 될 시인의 무덤이기도 합니다.

두 편의 시는 단순하지만 몇 번 읽으면 페이소스가 있는 여백을 느낍니다. 김종삼이 좋아했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음악 『거울』 중 제2곡 ‘슬픈 새’가 떠오릅니다. 고요한 분위기와 부제처럼 새를 바라보는 슬픈 마음이 투영된 작품입니다. 새가 앉은 숲과 울음소리를 치밀한 묘사와 빛나는 색채감으로 표현한 짧은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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