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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살면 안 될까요? 사랑의 고백에 환호

최형미 전문기자
  • 입력 2019.07.01 09:00
  • 수정 2019.07.3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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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없는 정의는 냉혹한 이데올로기고 정의없는 돌봄은 지배자의 통치 도구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돌봐온 아시아 YWCA
여신이 3천명이 넘어도 생리하는 여성들은 여신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남아시아
지구 평화와 지속적 발전에 기여하는 아시아 지역 연대에 기금을 투자해야

마지막 만찬을 마치고 기념촬영(사진 제공= 한국 YWCA).
마지막 만찬을 마치고 기념촬영(사진 제공= 한국 YWCA).

“사회복지운동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지만,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 자체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홍콩 인류학자 시우미 마리아 탐의 말이다. 이런 시선은 종종 YWCA처럼 사회복지 운동을 다방면에 펼쳐온 단체가 진보적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했다는 비판을 하게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회구조를 정의롭게 바꾸는 지향성도 필요하고, 약자들에 대한 돌봄이 동시에 필요하기도 하다. 돌봄 없는 정의는 냉혹한 이데올로기고, 정의 없는 돌봄은 갈등만 임시적으로 덮는 지배자의 교활한 통치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번 YWCA 아시아 지역모임에 참여한 아시아 대표들은 각 나라의 활동을 발표했다. 강대국 빅시스터가 주도하는 모임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소란하고 흥겹게 오고가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공통적인 특성이 있었다. “그 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이 누구인가?” 에 활동이 집중되어 있었다. 싱가폴에서는 저소득 가정의 어머니들이 노동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직장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에 초점을 두었으며, 일본은 지적발달장애 여성들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카페를 운영 사례를 발표했다. 대만에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 이주민 여성들을 임파워하는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었다. 태국은 주변 국가에서 들어온 불법이주민들, 무국적자들 혹은 소수민족들에게 직업훈련 지원을 하고 있었다.

인도, 네팔, 스리랑카와 같은 남아시아 지역은 인도문화권아래 있는 나라들이다. 그 지역은 숭배하는 여신만 3천여 명이 넘지만, 생리하는 여성들은 여신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종교가 남성지배자들에 의해서 통치의 도구가 되면서 성차별적 문화와 관행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결혼은 여전히 심각하다.

한영수(한국 YWCA)회장은 ‘벌써 헤어질 때가 되었네요. 가지 말고 우리 함께 살면 안 될까요?’ 라고 하자 참가자 환호를 본부가 있는 명동을 들썩이게 했다.
한영수(한국 YWCA)회장은 ‘벌써 헤어질 때가 되었네요. 가지 말고 우리 함께 살면 안 될까요?’ 라고 하자 참가자 환호를 본부가 있는 명동을 들썩이게 했다.

조혼의 관행은 우리에게 철없고 이쁜 어린신부를 상상하게 하게 하지만, 이것은 여성차별과 폭력의 기본적 사회구조가 된다. 나이가 어려 결혼을 하면 교육의 기회가 없고, 온갖 종류의 폭력에 노출되며,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다. 뿐만아니라, 어린 나이에 출산을 겪으며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다. 이렇게 살아온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 돌봄의 대상이 되는 노인여성이 되었어도 차별과 폭력을 겪게 된다.

이런 면에서 인도 YWCA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인생 전반에서 관여하고 있다. 이미 역사가 137년이 넘은 스리랑카는 여성교육에서 미용이나 바느질이 아니라 농업기술, 운전기술을 가르치며 전통적 여성역할이나 여성성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미얀마의 경우, 오랫동안 종족갈등으로, 분쟁지역에서의 인권문제로 심각한데, 미얀마 YWCA는 다양한 직업교육과 인권교육 뿐 아니라 집단상담을 통해 취약한 여성들을 임파워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이 함께 모여 바느질을 하며 위로하고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필리핀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성평등이 지수가 높은 국가인데, 그들은 여성들에게 경제적 임파워를 구체화 시키기 위해서 금융문해력을 높이고 있었다.

마지막 날, 각 참가자들은 아시아 여성들이 모여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 했다. 자유로운 상상의 장이 열린 것이다. 여성들이 의견을 내고 여성들이 결정을 하는 공간이 펼쳐졌다. '아시아 지역 홈페이지를 만들자’ ‘각국 청년들을 서로 인턴으로 보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청년 인재를 기르자’ ‘펀드를 만들어 서로 나누고 돕는 일을 하자’ 등등 아시아 공동체에 관해 뜨거운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아시아에서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 더 많은 이득을 얻자고 덤비는 기업들과 달랐다. 여성들의 모임에는 서로를 살려내고 서로를 임파워하고 돌보려는 사랑이 넘쳐났다. 그것이 영성(Spirituality)인 것이다.

전체 지역 발표를 진행한 한미미(세계 YWCA )부회장은 무대 위에서 참가자들에게 아시아가 나갈 길을 이야기 했다. “여러분 우리가 함께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 펀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공통으로 나왔군요. 우리는 이제 펀드를 달라고 매달리지 말고(begging fund) 우리에게 투자를 하라고(raising fund)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는 아시아 여성들의 연대가 지구 평화와 지속적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전문가 집단과 활동가들이 체계적으로 설명해 펀드를 모금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 날 만찬의 시간이 되었다. 무대에 오른 한영수(한국 YWCA)회장은 ‘벌써 헤어질 때가 되었네요. 가지 말고 우리 함께 살면 안 될까요?’ 라고 하자 참가자들의 환호가 본부가 있는 명동을 들썩이게 했다. 이 소박한 인사에 담긴 커다란 사랑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아시아 지역모임은 다음을 기약하며 뜨거운 포옹을 했다. ***

정성스럽게 한복을 입고 만찬에서 아시아 참가자들을 맞아준 한국 대표들(사진 제공= YWCA).
정성스럽게 한복을 입고 만찬에서 아시아 참가자들을 맞아준 한국 대표들(사진 제공= YW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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