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산중을 돌아다닌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이렇듯 딱 부러지게 돈을 거절하는 주민은 처음 만났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그 부인은 순왈 사람이며 순왈은 자기네 셰르파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길은 잠시 완만해지더니 다시 긴 오르막으로 이어졌다가 계곡으로 내려섰다. 외딴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는 계곡 끝의 어느 집 샘가에 이르러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그 집 부인에게 청해서 더히(요구르트)를 큰 컵으로 한 컵 씩 먹고 돈을 내려고 했더니 그 아낙이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 파이사 뻐르다이나. 바토 자누 만체라이 더히 엑 길라스 디에 뻐치 파이사 버나우네 람로 차이나. (돈 필요없어요. 나그네에게 더히 한 컵 주고 나서 돈 받는 거 안 좋아요.)
네팔 산중을 돌아다닌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이렇듯 딱 부러지게 돈을 거절하는 주민은 처음 만나 보았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그 부인의 종족은 순왈이며 순왈은 자기네 셰르파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이 날 이 시간 이후 곳곳에서 여러 순왈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셰르파들만큼이나 우리 조상들을 닮았다고 느꼈다. 생김새는 물론, 술과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나그네를 배려해 주는 마음도 닮았다. 나는 순왈의 조상이 혹시 저 북만주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유민, 즉 우리와 같은 핏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의 몽골계 원주민들을 만나면 버릇처럼 그런 생각을 해 온 나이기는 하지만, 순왈의 조상과 우리의 조상도 같은 마을에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고 빡빡 우기고 싶었은 심정이었다.
다시 반시간 쯤 힘겹게 걸어서 오후 1시 반에 올라선 고개 위 마을은 쭈부릉 반장이었다. 앙 다와 씨와 안면이 있는 부인이 주인인 셰르파 호텔에서 요기를 하고 다시 걸어서 3시에 도착한 마을이 키지 바잘이었다.
키지 바잘 마을은 장이 서는 큰 마을이었다. 학교도 있고, 경찰서도 있었다. 머지않은 곳에는 군부대도 있다고 했다. 앙 다와 씨도 이곳으로 장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날은 장날이 아니어서 널찍한 장터는 비어 있었고, 빈 장터에서 서성이던 어떤 중년의 부인이 우리에게로 달려와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가. 죽었다네. 죽었다네. 기다리다 죽었다네.
보기엔 멀쩡했는데 곡조를 실어서 하는 말이 실성한 사람의 말이었다. 무시해 버리고 돌아서 걸으니 따라 오면서 지껄였다.
- 어딜 가누, 어딜 가누, 오자마자 어딜 가누, 나 혼자 놔두고 어딜 가누.......
그녀는 갈퀴 같은 손을 뻗쳐 내 소맷자락을 잡으려 했다. 이크 싶어서 빨리빨리 걸었다. 경찰들이 서성이는 경찰서 앞을 지나 저만치 가서 돌아보니 그 여인은 경찰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었고 기다리는 누군가는 오지 않았기에 실성하지 않았나 싶었다. 사람 눈물 나게 미친 여인이었다.
앙 다와 씨는 그곳 키지 바잘에서 숙소를 구하고 싶어 했으나 김 선생과 나는 좀 더 걷기를 고집했다. 걷기 좋은 시간이었으며, 길은 평탄했고, 경관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미친 여인과 다시 마주치게 될 일이 꺼림칙했다.
일부러 더 씩씩하게 걸어서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자 설산 가우리 상칼이 후련하게 보였다. 하오의 햇살을 받아 양잿물처럼 하얗게 빛나는 설산을 보니 며칠 전에 마셔본 코냑 생각이 났다. 김 선생이 조금 남겨두자 했을 때 남겨둘 걸 그랬나 싶었다.
능선 위에 불룩 솟은, 임신부의 배 같은 언덕 위에 살벌한 철조망을 겹겹이 두른 군대의 병영이 나타났다. 그리고 웃통을 벗어 제킨 젊은 군인들이 병영 정문 앞 공터에서 배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드넓은 산비탈 곳곳에 자리 잡은 마을과 경작지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그 병영이 생긴 지는 얼마 안 되었고, 이 지역은 얼마 전까지 마오이스트 게릴라들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이라고 했다.
이날 우리의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큰 길을 따라 해질녘까지 걷다가 만나는 농가에서 민박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병영 앞에서 큰 길을 놓쳤다. 큰 길은 병영 앞에서 비탈로 내려서야 하는데 우리는 능선을 따라 난 길을 걸었고, 그 길 끝은 벼랑이었다.
가시덤불 사이로 난 아주 미끄러운 샛길을 1시간 넘게 헤매다가 5시쯤에 물바토(큰길)를 찾아 들어섰다. 노을이 설산 룸불 히말을 붉게 물들이는 그 시간에 우리는 길가 유채밭 저만치 나지막이 엎드려 있는 외딴 오막살이를 발견했다. 앙 다와 씨에게 하룻밤 신세질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오라고 하고 뒤쳐져 오는 김 선생을 기다렸다.
김 선생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 집에 다녀 온 앙 다와 씨가 말했다.
- 아우누스 반차. 됴 가르꼬 만체하루 순왈꼬 만체하루 호. (오라고 하네요. 저 집 사람들은 순왈 사람들입니다.)
- 순왈?
- 허어즐.(네, 맞아요.)
이리하여 우리가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그 오막살이집은 찬데소리 랄람이라는 마을의 농민 러빈 순왈(56세) 씨의 집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