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시루봉 이야기 2

최진규 작가
  • 입력 2019.07.01 11:19
  • 수정 2019.09.28 16: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편한 이야기

텃밭 순둥이
텃밭 순둥이
텃밭 겨울
텃밭 겨울

  그가 사는 아파트 침실 창에서는 텃밭과 시루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도 못 가릴 자그마한 시루봉이지만, 양 옆구리 뒤로 북한산, 도봉산 주봉들이 솟아 있어, 구도를 잘 잡은 풍경화를 보는 듯했다. 한편 텃밭을 가운데 두고, 아파트, 시루봉, 애기단풍나무숲이 된 신사(神社) 터, 시루봉과 이어지는 능선이 동서남북으로 에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방향에서든 소리를 내면 공명현상을 일으키며 한층 크게 들렸다. 이를 잘 아는 그가 창가에 서서 휘파람을 불면, 워리와 순둥이는 낯익은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몰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희한하게 개들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지 못했다. 어쩌다 작은 회사 개가 슬금슬금 텃밭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포착하면 그는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놈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그는 함께 산책하는 개가 팔짝팔짝 뛰면서 저만치 앞서 가다가 불쑥 사라지기도 하고, 무슨 냄새를 그리 맡겠다는 건지 아무데나 코를 들이박고 수시로 가던 길을 멈추는 등, 제멋대로 하는 행동을 한 번도 성가셔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 행동을 너그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될 수 있으면 개의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또한 어떤 동물이든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주인이 잘 대해 준다 해도 목줄에 묶여 있는 개는 죽지 못해 억지로 목숨만 붙어 있는 존재라 여겼다.

  마음이 여린 그는 원치 않는 결별을 겪고 나면 오래도록 잔상에 시달렸다. 워리가 죽고 나서 다시는 다른 개에게 정을 주지 않겠노라 작심을 한 것도 이런 경험이 반복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순둥이의 보호자로 자처한 것 또한 여린 마음 때문이었다.

  그가 작은 회사 개를 혼내준 사건을 계기로 순둥이는 그의 새로운 단짝이 되었다. 예전에 워리에게 쏟던 그의 사랑이 고스란히 순둥이에게 넘어 왔다. 이 후로 순둥이는 그가 나타날 시간이 가까워지면 눈이 빠지도록 텃밭 입구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의 냄새와 소리를 먼저 알아채고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그는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순둥이 모습을 보면서, ‘어라 개도 웃네. 허허’하며 즐거워했다. 사실이었다. 순둥이뿐만 아니라 모든 개들은 기쁨이 넘치면 눈을 가늘게 뜨고 헐떡이며 웃었다.

  순둥이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는 워리와 그랬던 것처럼 순둥이를 데리고 공원묘지에 갔다. 남들은 일부러 피해 다닐 장소였지만, 순둥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굳이 이곳을 찾은 것이다. 자기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그가 옆에 있는 한, 순둥이는 더 이상 겁 많고 소심한 개가 아니었다. 녀석은 공원묘지 구석구석을 종횡무진으로 헤집고 다녔다. 자기만 보면 죽어라 도망치는 꿩, 들고양이, 다람쥐, 청설모를 알고 나서부터는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어찌나 바쁘게 뛰어다녔던지 쥐가 나서 몸이 마비되는 일도 종종 생겼다. 그는 풀밭에 고꾸라져 허우적대는 순둥이에게 다가가서 몸을 주물러주다가, 순둥이의 얇아 빠진 다리와 빈약한 발을 보면서 ‘이렇게 약해 갖고서 어떻게 살아가겠냐?’하는 말을 했다.

  여하튼 그와 함께 있으면 작은 회사 개하고도 맞설 용기가 생겨나는 순둥이였다. 놈이 슬금슬금 피해 다니며 멀리서 짖기만 할 뿐이니, 순둥이 눈에는 이제 그놈이 별 것 아닌 존재로 보일 만도 했을 것이다. 작은 회사 개는 집요하게 순둥이 주변을 맴돌았다. 이를 알아챈 순둥이는 자신만만하게 달려가 으르렁거리고 용감하게 짖어댔다. 약이 바짝 오른 놈이 본때를 보이겠다며 순둥이 가까이 접근해 위협을 가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소리를 지르며 돌을 집어 던지는 시늉을 하면 놀라 자빠져 도망쳤다. 그런 작은 회사 개를 뒤쫓는 순둥이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하고 보내는 달콤한 시간의 대가는 너무 컸다. 그가 순둥이를 싸고 돈 뒤부터 회사 개가 더욱 포악해졌기 때문이다. 순둥이가 심각한 죽음의 공포를 느낀 것은 그때부터였다. 다들 집으로 돌아간 저녁 시간이 되면 순둥이는 텃밭에 있을 수가 없었다. 놈의 해코지를 피해 이 곳 저 곳으로 도망 다녔다. 주로 시루봉 위 바위 사이나 공원묘지의 움푹한 공터, 아니면 예전에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참호를 잠자리로 삼았다.

  새끼들도 텃밭 집에서 낳을 수 없었다. 그렇게 태어난 첫 번째, 두 번째 새끼들은 텃밭 일꾼 이 씨가 귀신같이 찾아내 빼 갔다. 순둥이는 모성애가 강해서 누구도 새끼 근처에 못 오도록 사납게 굴었다. 그와 이 씨만 예외였다. 새끼 젖을 뗄 무렵이 되면 이 씨가 새끼를 꺼내러 왔다. 평소에도 이 씨만 보면 슬금슬금 곁눈질을 하며 도망 다니던 순둥이는 주눅이 들어 이빨만 조금 드러내다가 포기하고 달아났다.

  이 씨는 앞머리가 벗겨지고 눈썹이 거의 없는 40대 남자였다. 튀어나온 눈두덩이 푹 꺼진 눈을 덮고, 미간 사이의 콧등이 여러 겹 접혀 있어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였다. 대화할 때는 특유의 얇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에이’하면서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 반박부터 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씨는 떠돌이개만 보면 눈빛이 달라졌다. 일단 포획한 개는 하루 이틀 묶어 놓았다가 주인이 없는 걸 확신하면 자기 손으로 직접 잡아 삶아 먹었다. 그러니까 떠돌이개들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몸보신용 고기를 개고기 위주로 삼았을 확률이 큰 이 인간에게 순둥이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그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순둥이의 운명도 보다 빨리 마감되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새끼들은 이 씨 몫이었다. 그는 새끼까지 책임지는 부담을 안기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순둥이 새끼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순둥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다음과 같은 말만 했다.

  ‘순둥아, 이제는 새끼를 낳지 마, 새끼 낳아 봤자, 다 뺏기잖니, 그리고 그 새끼들은 좋은 데 가지도 못 해. 너처럼 살 수 없어. 그러니 새끼를 낳지 말아야 돼.’

  순둥이가 암내를 풍기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수캐들이 나타났다. 대부분 주인이 없는 떠돌이개들이었다. 그 중에서 순둥이의 첫 신랑이었던 몽이(옅은 눈동자 때문에 늘 잠자는 것처럼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서 그가 지은 이름이었다.)는 오랜 방랑 생활에 지쳤는지 이 텃밭에서 살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순한 데다 붙임성도 좋았지만, 나쁜 습관이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몽이에게 도둑개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먹으려고 갖다 놓은 음식을 훔쳐 먹기 일쑤였다. 이 씨는 이를 빌미 삼아 벌건 대낮에 몽이의 목을 매달아 버렸다. 순둥이의 두 번째 신랑이었던 진돗개 믹스견도 이 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이 녀석은 오래 전부터 어미 개와 동네 주변을 떠돌다가 어미 개가 잡아먹힌 뒤로도 잘 버틴 끝에 성견이 되었지만, 끝내 한 해 남짓 짧게 살다 명을 다했다. 그러니까 순둥이는 영문도 모르고 미끼가 되고 덫이 되어 두 마리를 희생시킨 셈이다.

  순둥이의 마지막 사랑은 장군이었다.(이 또한 그가 붙인 이름이었다.) 늦가을에 장군이는 참모처럼 뒤따르는 진돗개 잡종견과 나타났다. 장군이! 정말 늠름한 대형견이었다. 어마어마한 덩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장군이 옆을 따르는 녀석도 결코 작은 개가 아니었음에도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순한 개였다. 종류를 알 수 없었고, 눈에 곱이 끼고 몸에 피부병이 심하긴 했지만, 다리가 길어서 겅중거리며 달릴 때는 흡사 잘 생긴 말이 연상되었다. 태산만한 이 덩치로 지금껏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었다. 두 마리 개는 서로 동맹 관계를 맺은 듯했다. 겉으로만 보면 두 녀석은 천하무적이었다. 장군이에게 푹 빠진 순둥이는 다른 수캐들에게는 그렇게 까칠할 수가 없었지만, 녀석에게는 먼저 달라붙어 온갖 앙탈과 교태를 부렸다. 그러면 장군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치근대는 순둥이의 성가신 짓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그가 순둥이와 산책하러 갈 때, 장군이와 참모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다녔다. 의기양양한 순둥이는 가장 앞장서서 가다가 그에게 달려와 몸을 비비고, 장군이에게도 달려가 몸을 비비며 골고루 애정을 나누어 주었다.

  장군이의 출현 이후로 작은 회사 개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순둥이는 구태여 산이나 다른 곳으로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다. 장군이가 곁에 있으니, 텃밭이 터져 나가도록 장중하고 규칙적으로 울어대는 풀벌레들의 대합창을 마음 졸이지 않고 들으며 잠을 잘 수 있는 평화의 밤이 보장되었다.

순둥이의 삶에 있어 가장 황홀하고 찬란했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 했다. 장군이와 함께 한 날은 삼 일을 채 넘기지 못했다. 장군이를 반긴 것은 순둥이만이 아니었다. 이 씨는 가을걷이가 다 끝난 터라 텃밭 일도 없었을 텐데 순둥이가 암내를 내면서부터 텃밭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장군이 모습을 보고 나서는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을 햇살이 좋았던 늦은 오후, 장군이는 양달이 진 곳에 퍼질러 엎드린 채 가볍게 졸고 있었다. 순둥이도 장군이 옆에서 가장 편할 때 나오는 콧바람을 짧게 내쉬고 막 잠을 청할 참이었다. 이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장군이를 훑어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마 안 있으니 서너 명의 사내들이 더 나타났다. 그들도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 개들의 동태를 살폈다. 무슨 계획을 짜고 몰려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미 참모견은 불길한 낌새를 채고 시루봉 위로 줄행랑을 놓았고, 겁결에 순둥이도 숨어버렸다. 그들은 그리 빠르지 않은 장군이를 도망 못 가도록 에워싸려고 했다.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갈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장군이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껑충껑충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어, 매우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와중에 빠져 나갈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빈틈은 많았다. 장군이는 사람들이 미처 막아서지 못한 애기단풍나무숲으로 뛰어 올라다. 그리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장군이는 늦가을의 짧아진 해만큼 잠깐 머물다 떠났다. 순둥이는 두 번 다시 장군이를 볼 수 없었다..

  순둥이는 장군이 자식들을, 시루봉 꼭대기에 있는 바위굴에서 낳았다. 회사 개가 여기까지는 오지 않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선택한 장소였다. 두 바위 사이로 뚫려 있는 작은 굴속은 웬만한 눈비나 바람도 막을 수 있었다. 순둥이가 새끼를 낳은 장소를 알아낸 이는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혹한이라고 떠들어댈 만큼, 그해 겨울은 징글징글하게 추웠고 눈도 많았다. 그나마 순둥이가 이 끔찍한 겨울을 버틸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먹이를 갖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은밀하게 먹이를 실어 날랐다. 시장에서 닭발이며 돼지 내장 등속을 사다가 푹 고아 순둥이 산후조리를 도왔다. 다행히 이 씨는 순둥이가 새끼 낳은 사실을 몰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텃밭 근처로 오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끝내 순둥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어두워지자 순둥이가 다시 굴 밖으로 나왔다. 새끼들이 덤벼들면서 젖을 달라고 성화였지만 나올 젖이 없었다. 당장 배부터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그가 사는 동네로 내려가야 음식 찌꺼기라도 구할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작은 회사 개가 수시로 돌아다니는 텃밭을 지나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순둥이는 밤이 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보름에 가까워진 달이 작은 물체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눈밭을 밝히고 있었다. 아파트 불빛도 거들었다. 주위가 환한 밤은 순둥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낮보다는 바람이 잦아들었지만 뼈까지 시리게 하는 추위는 여전했다. 그러나 배고픔의 유혹이 워낙 강렬해 그 어떤 것도 순둥이를 붙들지 못했다. 잔뜩 겁을 먹은 채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추위와 공포로 위축된 순둥이의 발걸음이 더뎠다. 정면으로 차가운 불빛을 토해내는 아파트가 보였다. 두려웠지만 순둥이는 멈출 수 없었다. 길 위에 쌓인 눈은 얼음처럼 단단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순둥이의 가붓한 몸이 금방이라도 나동그라질 듯 위태로웠다. 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계속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훤하다지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물체들은 무수히 많았다. 무엇이 순둥이를 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순둥이는 더욱 긴장했다. 눈을 믿을 수 없기에 코를 들어 위험 대상을 필사적으로 찾아내 보려고 했다. 수상한 냄새 대신 혹독한 한기만 코 속을 후비고 들어왔다. 조금 더 가야 동네로 들어서는 입구가 나올 것이다. 잠시 제 자리에 서서 두리번거리던 순둥이가 다시 움직였다. 한때 보금자리였던 원두막 옆을 지나고 있었다. 바람막이 덮개 안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이 그 어느 곳보다 무서웠다. 순둥이는 한시라도 빨리 원두막에서 멀어지려고 발걸음을 재게 했다. 갑자기 커다란 돌덩이 같은 것이 순둥이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빙판이나 다름없는 산비탈을 그것과 한 덩어리가 되어 몇 바퀴 굴렀다. 중심을 잡고 일어서기도 전에 뜨거운 것이 목 밑으로 파고들더니 강한 압박을 가했다. 순둥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단단하게 목을 옭아맨 이것을 털어내려 아무리 버둥거려 보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옥죄고 들었다. 순둥이의 숨통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 눈을 부릅뜨고 몸부림치던 순둥이이의 저항이 이윽고 멈추면서 생명의 기운이 서서히 빠져 나갔다.

  눈밭에 누운 순둥이가 숨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파트 불빛과 달빛이 어지럽게 섞여 번들거리는 그놈의 눈이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