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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은 내수업에 들어오지 마라' 주장한 종신교수 학교를 떠나다.

최형미 전문기자
  • 입력 2019.06.09 17:42
  • 수정 2019.06.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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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지 못한채, 남학생이 한명 들어와도 그들을 중심으로 수업이 돌아가기 때문
'지난 2천년동안 여성을 침묵시킨 문화, 내수업에서 그들은 차별을 경험해봐야 한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 레디칼 페미니즘의 전통을 잇나?
양극화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어디를 향해가나?

남학생들은 내 수업에 들어오지 마라

20여 년 전 미국법원은 대학에서는 평생 페미니즘을 가르치던 종신교수 메리 델리(Mary Daly)가 남학생들을 차별해 주정부 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오랫동안 여성학 심화과정수업에 남학생 등록을 허용하지 않았다. 남학생들에게 여성학기초와 개인지도만 허용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여학생에게만 질문을 받았다. 법원은 메리 델리에게 남학생들에게도 똑같은 수업 기회를 주라고 명령했다. 그는 그것을 거부했고 학교를 떠나야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메리 델리 ( Mary Daly), 자신의 여성학 심화수업에 남학생 참여를 허용하지 않아서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 (유튜브 캡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메리 델리 ( Mary Daly), 자신의 여성학 심화수업에 남학생 참여를 허용하지 않아서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 2천년 동안 남성들은 여성들을 침묵시켰고, 차별해왔다. 내 수업에서 남성들은 그것을 경험해봐야 한다.” 그가 여학생만 수업에 허용한 이유를 덧 붙였다.
 
“20명의 여학생과 1명의 남학생이 함께 있을 때, 수업은 눈에 띄게 혹은 의식하지 못한 채, 남학생들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우리가 오랫동안 남자들을 우선적으로 대접하고 존중하도록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메리 델리가 학교를 떠났지만 페미니즘 교육에 있어서의 그의 단호함과 깊은 통찰은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게다가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긍정적인 차별은 사회정의를 위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당신은 인종차별을 하고 여성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시스터아웃사이더>를 쓴 흑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는 메리 델리가 쓴 'Gyn/ecology(여성생태학, 1976)'를 읽고 그에게 긴 편지를 써 보냈다. ‘왜 당신은 유럽여성, 유태인 여성 등 백인 여성들의 전통만 이야기 하면서 마치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하고 있는가? 흑인 여성들의 경험을 별거 아닌 것처럼 묘사하고 생략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며, 그것이 여성들 간에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로드는 델리와 백인여성중심의 페미니즘을 비판했다.
 
흑인 여성들은 백인 여성들과 달리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동시에 겪는다. 그들은 억압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가족, 섹슈얼리티, 노동 그리고 여성성 등을 다르게 경험한다. 여성들을 약하게 보지 말라고 백인 여성들은 주장했지만 흑인 여성들은 공장에서 남성들과 같이 무거운 매트리스를 날라야했고, 끝도 보이지 않는 목화밭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고 통제하는 남성사회를 비판했다. 그러나 흑인여성들은 끔찍하게 강간을 당하면서도 동물적 욕망만 가진 그들이 백인남성을 유혹했다는 누명을 써야했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가족은 여성억압의 기제라고 비판했지만, 처절한 인종차별사회에서 흑인여성들에게 가족은 서로를 위로하는 휴식처였다. 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들은 인종차별을 함께 겪는 흑인남성들을 쉽게 적대시하여 비난할 수 없었다. , 중층 억압아래 있는 흑인 여성들은 메리델리의 주장처럼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운동에 동의할 수 없었다.


흑인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반영하지 않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을 권력을 쫓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흑인 여성들에 이어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아시아 페미니즘, 이슬람 페미니즘, 치카나 페미니즘, 레즈비언 페미니즘 등. 이런 현상을 보고 이제 여성주의가 분열로 쪼개져 침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처음 등장부터 주류사회에 도전하는 소수 목소리였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소수의 다른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또다시 새로운 정치학을 모색했다
 

약자의 목소리 /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온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언제나 주변화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페미니즘은 약자우선, 피해자 우선의 학문이다. 약자의 목소리가 더욱 강한 객관성을 갖고 있으며 문제해결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본다. 가부장제는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지우고 침묵시켜왔다. 인권의 상징인 프랑스혁명에서 올랭프 드 구주는 혁명을 비판하며 여성참정권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역사는 다르다. 다른 목소리에 당신들은 틀렸다라고 단정 짓기보다 주변화 되어 희미하게 들리는 소수의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듣기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렇기에 차가운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며 공감과 지지를 하는 심층인터뷰방법을 중요하게 소개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주변화된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학문이다. 페미니즘 안에서 다른 목소리는 비난과 분열의 기폭제가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의 출발점이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며, 자기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인 것이다.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페미니즘정신의 결과이며 풍요를 의미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강요하지 마라

한국 여성운동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는 질문을 한다. 여성이라는 범주를 강하게 주장하는 레디칼 페미니즘인가? 아니면 여성들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교차적 페미니즘인가? 우리에겐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해야 한다. 여성이 차별받는 맥락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급진적 지지를 보내야 한다. 미투, 디지털 성폭력 등의 운동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여성주의 안에서 가난하다는 이유, 성소수자라는 이유, 비공식노동자라는 이유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모두에서 차별당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범주만을 내세울 때, 중층억압을 경험하는 여성들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코는 철학적 개념들을 도구상자속의 도구라고 표현을 한다. 드라이버는 의자의 나사도 조이고, 가전제품 해체에도 사용된다. 필요에 따라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여성주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운동에 맥락에 따라 각각의 이론들을 사용하는 유연성과 활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래디컬 페미니즘의 랜즈로 '봐주지 않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여성들이 얼마나 공격적일 수 있는지,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외모 비하나 여성혐오가 더 이상 유머코드로 사용될 수 없도록 경고했다. 디지털 성폭력은 피해자가 아니라 남성들이 부끄러워야 할 범죄라는 것을 분명하게 각인시켜가고 있다. 미투운동을 통해 피해자들은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젊은 레디칼 페미니스트들은 메리데일리처럼 여성들의 공간을 힘 있게 확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학은 배제의 정치학이다. 단지 남성만을 배제 하지 않는다. 비혼, 비출산, 비섹스 그리고 탈코르셋이라는 비비탄탄대로 전략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트렌스젠더 혐오발언을 가입인증조건으로 내걸어 그들을 배제하고 있다. 비난과 혐오를 운동의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은 여성운동분열 전략이다. 그들은 옳았지만 그들은 틀렸다. 우리는 페미니즘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포괄하고 받아들여 그 역량을 확장시키는 역사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양극화 사회 속에서 페미니즘 운동

한국사회는 양극화 사회다. 다수의 사람들은 열심히 살지만 박탈감을 느끼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분노와 폭력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향해진다. 강자에게 착취당하고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성공한 여성들은 남성들을 이겨라’ ‘여성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어떤 남성은 여성운동의 확산 때문에 자신들의 자리가 빼앗겼다고 간단하게 생각해 버린다. 최근 여성에 대한 잔혹한 범죄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은 그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여성주의는 남성들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여성주의는 각자 자신들의 모습을 회복하고 자유를 누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것이 운동이 될 때, 다른 사람의 회복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남성과 경쟁하는 따라잡기 페미니즘(catch up feminism)'은 여성리더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파걸이 많이 배출되지만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큰 규모로 여성들은 비정규직, 비공식노동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 식당노동자, 서비스업 노동자, 알바노동자로 일하는 여성들에게 경쟁력을 갖추고 남성들에게 이겨라라고 하는 메시지가 얼마나 공허한가? 그들이 상사에게 ’No'라고 저항하는 순간 그들은 간단하게 해고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들은 개인적 역량 갖추기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함께 가기’ ‘공감하기’ 의 에코페미니즘에로

농민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배우라고 주장하는  에코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 인도네시아 지역농민들과 만남중, 오른쪽 식량운동가 하유(Hayu) @최형미
농민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배우라고 주장하는 에코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 인도네시아 지역농민들과 만남중, 오른쪽 식량운동가 하유(Hayu) @최형미

 

에코페미니즘은 상호공존을 원리로 하는 생태학을 여성운동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의 강한 우성생물이 숲을 지배하는 순간 공멸한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히든 커넥션>에서 생물을 관찰할 때, 세포들은 옆의 세포를 살리려고 자신의 것을 나눠준다고 보고한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메시지를 새롭게 인류에게 던져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경쟁과 양극화 시대에 에코페미니즘은 모성’ ‘돌봄’ ‘공동체적 자급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초대하고 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자는 전략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것은 싸워서 이겨라 라는 말을 전면 폐기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여성혐오에 대항해서 힘써 싸워야 하고, 또 함께 가기 위해서 자신을 내주는 두 가지 전략이 모두 필요하다. 우리는 천개의 페미니즘의 전략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부산외대신문 페미니즘 기획기사로 20181126일에 지면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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