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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읽어주는 여자] U월드컵 대한민국-세네갈 8강전을 보다 문득,

이해선 전문기자
  • 입력 2019.06.09 09:08
  • 수정 2019.09.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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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르의 귀여운 사기꾼

ⓒ이해선

 

다카르 숙소 부근에서 고레섬으로 떠날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레섬(Ile de Goree)은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거점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청년 두 명이 다가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했더니 꼬레? 하고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레게머리를 한 청년이 손을 내밀며 악수부터 청했다. 가늘고 긴 손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는 다짜고짜 2002년 월드컵 얘기를 꺼냈다. 월드컵에 참가한 세네갈 선수들 이름을 들먹이며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 선수들 이름을 알 턱이 없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축구를 좋아하지 않느냐며 발로 공을 차는 시늉까지 했다. 내가 묵은 숙소 로비에도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단 포스터가 큼직하게 걸려 있긴 했었다.

“나도 축구를 좋아한다. 그러나 세네갈 선수들은 잘 모른다.”

우리들의 대화는 잠시 끊겼다.

“그럼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청년은 집요하게 축구에 대해 물어 왔다. 차는 오지 않고 무료하던 참에 이 세네갈 청년과의 대화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순간 영국 첼시구단에서 뛰는 드록바 선수가 생각났다. 그 선수의 고향이 세네갈 인근 코트디부아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이다. 나도 한 때는 유럽 프리미어리그 축구 보느라 티비 앞에서 밤새운 적 있어 그 선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축구선수 드록바를 안다고 하자 단절되었던 우리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드록바는 위대한 축구선수다. 그는 우리 아프리카의 희망이다.”

그는 곁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드록바를 좋아한다고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궁여지책으로 드록바를 안다고 했다가 졸지에 드록바의 팬이 되고 말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목걸이를 흔들어 보이며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작은 돌로 만든 예쁜 목걸이였다. 어쩌면 이 작은 목걸이 선물로 인해 아프리카 여행이 풍성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낯선 청년으로부터 목걸이를 무턱대고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사양하자 청년은 안타까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어제 내 아들이 태어났다. 세네갈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게 풍습이다. 그러니 이 선물을 받고 내 아들에게 축복을 해 주기 바란다.”

곁에 서 있던 친구들이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엉거주춤 서 있는 내 손에다 슬그머니 목걸이를 올려놓았다.

“아들이 드록바처럼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길 빈다.”

나는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청년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이 친구에게 뭘 선물 할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볼펜, 초콜릿, 등을 떠올려보았지만 너무 약소해보였다. 그렇다면 이 친구에게 뭘 선물한단 말인가, 나는 비상용으로 챙겨 온 손목시계 하나를 떠올렸다. 어느 주류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나온 시계인데 여행 중 신세를 진 원주민들에게 선물하려고 챙겨 온 것이었다. 채 아프리카 여행이 시작되지 않은 지금 그것을 써 버리기에는 좀 그랬다. 만약에 사하라사막에서 길을 잃고 투아그레족에게 구조라도 된다면 그때 써야지, 나는 짧은 순간 온갖 상상을 하며 청년에게 줄 선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청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마음이 허락한다면 태어난 내 아들에게 선물을 좀 줄 수 없겠느냐? 내 아기에게 당장 필요한 건 우유이다. 그러니 아기 우유를 살 수 있게 로컬머니를 좀 달라.”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이 친구가 목걸이를 팔려고 했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렇지 않을 거야, 그를 장사꾼으로 몰아버리기에는 짧은 순간이나마 그와 나눈 대화들이 너무 진지했어, 아니, 그에게로 쏠렸던 내 순수한 감정들이 훼손당하는 게 싫었어, 아니야, 아니야, 그의 아들이 어제 태어났고, 한 이방인을 만났고, 아들의 축복을 받기위해 목걸이를 선물로 주고 싶었을 것이야, 그리고 이방인에게 호소한 것이리라. 아들의 우유 값을,

우유 값을 좀 건네주고 돌아서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 도시에 오늘 새벽에 도착했고 아직 환전도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난한 여행자가 100불짜리 지폐를 선뜻 내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저녁때 이곳에 오면 그 때 당신 아기 우유 값을 주겠다.”

청년의 얼굴에 서운한 빛이 역력했다.

“저녁에는 올 수 없어요.”

나는 목걸이를 돌려주어야만 할 것 같아 목걸이를 쥐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청년의 갈고리 같은 긴 손이 목걸이를 싹 걷어갔다. 악수 할 때 느꼈던 따뜻한 손바닥이 지금은 차갑게 느껴졌다. 청년과 그의 친구들은 내게 등을 보이며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텅 비어 있는 손바닥을 한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그가 목걸이를 팔기위한 장사꾼이라면 그는 장사꾼이 아닌 배우로 나가면 성공할 것 같았다.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한 이방인의 마음을 이리도 흔들어 놓은 걸 보면 말이다.

 

저녁 식사시간, 같이 온 일행 중 한 명이 목걸이를 흔들어 보이며 목걸이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는데, 그 청년이 내게 주었던 것과 똑 같은 목걸이에 사연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는 한 세네갈 아이의 우유 값을 보태 주고, 받은 선물이라며 아주 행복해 했다.

“목걸이 참 예쁘네요.”

나는 이 목걸이의 사연을 알고 있노라고,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세네갈 바오밥나무군락지 ⓒ이해선
세네갈 바오밥나무군락지 ⓒ이해선
세네갈 전통씨름 람브(Laamb)선수들 ⓒ이해선
세네갈 전통음식ⓒ이해선
태권도를 배우는 다카르 어린이ⓒ이해선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거점지 고레섬(Ile de Goree) ⓒ이해선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거점지 고레섬(Ile de Goree) ⓒ이해선
파리-다카르 자동차경주를 끝낸 참가자들ⓒ이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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