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르의 귀여운 사기꾼
다카르 숙소 부근에서 고레섬으로 떠날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레섬(Ile de Goree)은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거점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청년 두 명이 다가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했더니 꼬레? 하고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레게머리를 한 청년이 손을 내밀며 악수부터 청했다. 가늘고 긴 손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는 다짜고짜 2002년 월드컵 얘기를 꺼냈다. 월드컵에 참가한 세네갈 선수들 이름을 들먹이며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 선수들 이름을 알 턱이 없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축구를 좋아하지 않느냐며 발로 공을 차는 시늉까지 했다. 내가 묵은 숙소 로비에도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단 포스터가 큼직하게 걸려 있긴 했었다.
“나도 축구를 좋아한다. 그러나 세네갈 선수들은 잘 모른다.”
우리들의 대화는 잠시 끊겼다.
“그럼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청년은 집요하게 축구에 대해 물어 왔다. 차는 오지 않고 무료하던 참에 이 세네갈 청년과의 대화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순간 영국 첼시구단에서 뛰는 드록바 선수가 생각났다. 그 선수의 고향이 세네갈 인근 코트디부아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이다. 나도 한 때는 유럽 프리미어리그 축구 보느라 티비 앞에서 밤새운 적 있어 그 선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축구선수 드록바를 안다고 하자 단절되었던 우리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드록바는 위대한 축구선수다. 그는 우리 아프리카의 희망이다.”
그는 곁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드록바를 좋아한다고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궁여지책으로 드록바를 안다고 했다가 졸지에 드록바의 팬이 되고 말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목걸이를 흔들어 보이며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작은 돌로 만든 예쁜 목걸이였다. 어쩌면 이 작은 목걸이 선물로 인해 아프리카 여행이 풍성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낯선 청년으로부터 목걸이를 무턱대고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사양하자 청년은 안타까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어제 내 아들이 태어났다. 세네갈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게 풍습이다. 그러니 이 선물을 받고 내 아들에게 축복을 해 주기 바란다.”
곁에 서 있던 친구들이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엉거주춤 서 있는 내 손에다 슬그머니 목걸이를 올려놓았다.
“아들이 드록바처럼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길 빈다.”
나는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청년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이 친구에게 뭘 선물 할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볼펜, 초콜릿, 등을 떠올려보았지만 너무 약소해보였다. 그렇다면 이 친구에게 뭘 선물한단 말인가, 나는 비상용으로 챙겨 온 손목시계 하나를 떠올렸다. 어느 주류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나온 시계인데 여행 중 신세를 진 원주민들에게 선물하려고 챙겨 온 것이었다. 채 아프리카 여행이 시작되지 않은 지금 그것을 써 버리기에는 좀 그랬다. 만약에 사하라사막에서 길을 잃고 투아그레족에게 구조라도 된다면 그때 써야지, 나는 짧은 순간 온갖 상상을 하며 청년에게 줄 선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청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마음이 허락한다면 태어난 내 아들에게 선물을 좀 줄 수 없겠느냐? 내 아기에게 당장 필요한 건 우유이다. 그러니 아기 우유를 살 수 있게 로컬머니를 좀 달라.”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이 친구가 목걸이를 팔려고 했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렇지 않을 거야, 그를 장사꾼으로 몰아버리기에는 짧은 순간이나마 그와 나눈 대화들이 너무 진지했어, 아니, 그에게로 쏠렸던 내 순수한 감정들이 훼손당하는 게 싫었어, 아니야, 아니야, 그의 아들이 어제 태어났고, 한 이방인을 만났고, 아들의 축복을 받기위해 목걸이를 선물로 주고 싶었을 것이야, 그리고 이방인에게 호소한 것이리라. 아들의 우유 값을,
우유 값을 좀 건네주고 돌아서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 도시에 오늘 새벽에 도착했고 아직 환전도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난한 여행자가 100불짜리 지폐를 선뜻 내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저녁때 이곳에 오면 그 때 당신 아기 우유 값을 주겠다.”
청년의 얼굴에 서운한 빛이 역력했다.
“저녁에는 올 수 없어요.”
나는 목걸이를 돌려주어야만 할 것 같아 목걸이를 쥐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청년의 갈고리 같은 긴 손이 목걸이를 싹 걷어갔다. 악수 할 때 느꼈던 따뜻한 손바닥이 지금은 차갑게 느껴졌다. 청년과 그의 친구들은 내게 등을 보이며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텅 비어 있는 손바닥을 한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그가 목걸이를 팔기위한 장사꾼이라면 그는 장사꾼이 아닌 배우로 나가면 성공할 것 같았다.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한 이방인의 마음을 이리도 흔들어 놓은 걸 보면 말이다.
저녁 식사시간, 같이 온 일행 중 한 명이 목걸이를 흔들어 보이며 목걸이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는데, 그 청년이 내게 주었던 것과 똑 같은 목걸이에 사연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는 한 세네갈 아이의 우유 값을 보태 주고, 받은 선물이라며 아주 행복해 했다.
“목걸이 참 예쁘네요.”
나는 이 목걸이의 사연을 알고 있노라고, 차마 말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