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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케기행 39 ] 삼거리 주막집 이바구

김홍성 시인
  • 입력 2019.05.27 06:31
  • 수정 2019.09.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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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왕 린지 라마네 집은 삼거리에서 주막집을 겸하고 있었다. 우리는 불단이 있는 기도실에 여장을 풀고 거실로 건너가 불을 지피기 시작한 화덕에 둘러앉았다. 불땀이 은근한 화덕에는 락시를 내리기 위한 술 고리가 얹혀 있었다.

 

치즈 공장을 지나 나울 마을 어귀에 이르자 또 다른 마네가 나왔다.ⓒ김홍성 

 

아침에 보니 부엌 문 밖으로 설산 눔불 히말과 가오리상칼이 보였다.ⓒ김홍성 

 

나울 마을 곰파. 나왕 린지 라마가 거처하는 방도 이 곰파에 있다. ⓒ김홍성 

 

우리는 불단이 있는 기도실의 침대에 여장을 풀었다.ⓒ김희수 

 

치즈 공장을 지나 나울 마을 어귀에 이르자 또 다른 마네가 보였다. 마을 가까이 있어서인지 장식이나 구조에 훨씬 정성을 드린 듯했다. 식전에 두 시간, 식후에 두 시간, 모두 4시간을 걸은 이 날 일찌감치 여장을 푼 집은 바로 나왕 린지 라마네 집이었다. 이 날은 종일 날이 흐려서 몰랐는데 날이 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부엌 문 밖으로 설산 눔불 히말과 가오리상칼이 보였다.

 

여장을 푼지 두어 시간 후에 나왕 린지 라마가 피케 마네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마을 곰파를 보여 주었다. 나왕 린지 라마가 거처하는 방도 있는 그 곰파의 대웅전에서는 귀가 안 들리는 키 작은 노스님 한 분이 향을 피우고 있었다. 앙 다와에 의하면, 이 곰파는 예전에 상당히 번창했는데 몇 년 전에 큰스님이 입적하신 후로는 그 많던 스님들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여 이제는 귀가 안 들리는 키 작은 노스님과 나왕만 남았다.

 

나왕은 저녁 무렵에 다시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면서 조만간 곰파를 떠날 뜻을 비쳤다. 나왕은 큰 스님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카트만두나 다람살라에 가고 싶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한국의 절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도 은근히 내비쳤다. 

 

좁은 능선 위에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원래 곰파를 중심으로 11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4 가구만 남았다고 했다. 우리가 묵은 집과 곰파 사이의 집도 빈 집이었는데 이 집 지붕은 바람에 날아가 곰파 앞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화덕 위에 술 내리는 술 고리가 놓여 있다. ⓒ김홍성 

 

아기 요람을 등에 지고 먼길을 나선 한 부인도 이 주막에 들러 요람을 잠시 내려 놓고 차를 마셨다. ⓒ김희수 

 

요람 속에서 자다가 깬 아기를 보여 주는 부인. ⓒ김희수 

 

나왕 린지 라마의 외할머니가 버터 차를 만들고 있다. 화살 담는 통 같은 원통은 버터와 차를 섞는 도구다. ⓒ김희수  

 

나왕 린지 라마네 집은 주막집을 겸하고 있었다. 우리는 불단이 있는 기도실에 여장을 풀고 거실로 건너가 불을 지피기 시작한 화덕에 둘러앉았다. 불땀이 은근한 화덕에는 락시를 내리기 위한 술 고리가 얹혀 있었다.

 

나울은 산중이기는 해도 삼거리에 해당하는 곳이므로 행인들이 제법 있었다. 갓난아기를 요람에 눕혀 짊어진 부인, 콧수염 끝을 치켜 올려 기르고 쿠쿠리를 찬 사내가 이 집에 들러 차도 마시고 락시도 마셨다. 여럿이 와서 밥을 먹고 간 사람들은 장에 다녀오는지 짐이 많았다.

 

점심에 밥을 먹었으므로 저녁은 릴두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릴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이다. 감자를 삶아서 식히는 동안 밖은 캄캄해졌다. 나왕의 할머니는 반딧불 같은 LED 전구의 흐릿한 불빛 아래서 감자 껍질을 까고, 절구로 찧고 마늘을 다졌다.

 

할머니는 손녀 앙 푸루바(11세 나왕의 여동생)2년 후에 한국에 갈 거라는 말도 꺼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3 주 쯤 전에 다녀간 한국인 도보여행 그룹의 일원이었던 한 부인이 2 년 후에 다시 와서 양녀로 데려 가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그 그룹의 짐을 운반했던 앙 다와 씨도 같이 들었다며 '꼭 데리러 온다고 약속했다'며 거들었다. 그들 셰르파들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기다리겠다는 태도였기에 한 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 나중 일을 어찌 알겠는가. 사람은 잊기도 잘 하고 변하기도 잘 한다. 너무 믿지는 마라.

 

내가 공연한 말을 했나 보았다. 화덕 주변에 둘러앉은 셰르파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한 마디 더 했다.

 

- 당신네 셰르파들도 가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특히 술 마시고 한 약속은 약속도 아니더라. 우리 한국인도 셰르파와 다르지 않다.

 

그제야 셰르파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울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밤이 되자 반딧불 같은 LED 전구에 불빛을 밝혔다.ⓒ김홍성 

 

릴두를 만들기 위해 감자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릴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이다. 감자를 삶아서 식히는 동안 밖은 캄캄해졌다.ⓒ김홍성 

 

나왕 린지 라마의 외할아버지가 릴두를 만드느라 껍질을 깐 감자를 절구에 넣고서 찧고 있다.ⓒ김희수 

 

아침이 되자 설산 가오리상칼의 뾰족한 봉우리 끝이 보였다.@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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