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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쫓겨난 여성종교인들

최형미 전문기자
  • 입력 2019.05.20 12:50
  • 수정 2019.05.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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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의 어머니 마하마야를 기리는 페스티벌
축하하며 모인 이웃종교 여성들
천도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는 종교
위계적 제도로 굳어져
차별과 혐오의 타성에 빠져
사랑과 공감의 영성 잃어

마하 마하 페스티벌 축제후 기념사진 @최형미
마하 마하 페스티벌 축제후 기념사진 @최형미

모성이라는 말은 애초부터 여성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헌신하는 어머니로 부르며 무상노동자로 전략시키며 무한축적의 길을 열었다. 민족주의는 여성을 민족의 어머니로 불러 대가없이 해방운동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여성들을 부엌으로 침대로 우물가로 돌려보냈으며 국가는 준엄한 남성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제도적 종교는 노골적으로 신을 아버지로 부르고, 여성에게 성직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성들에게 어머니로서 헌신하는 것이 신이 주신 사명이라고 할뿐, 그들에게 영적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성평등불교연대는 <해방과 독립의 어머니, 종교에서 찾다>라는 주제로 이은선(세종대 명에교수)가 사회를 진행하며 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을 주관한 옥복연(종교와 젠더 연구소)소장은 설명하기를 “3.1운동 100주년 종교인 연대가 만들어졌고, 여러 종교인이 함께 여성의 눈으로 3,1운동을 고찰한 책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다시 마야축제에 맞추어 발표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포럼에는 우리나라 5대 종파를 대표해 다섯 명의 여성학자들이 참여해 해방과 독립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필자는 과연 지배와 통제의 도구로 오염 돼버린 모성이 업사이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이러한 과정이 각 종파에 조금이나마 파급의 힘을 미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남성사회는 종종 구색이나 맞추려 여성들을 끌어들여놓고 또다시 여성을 개토화 시켰다. “그래 여성이슈 중요하니 그쪽 구석에서 조용하게 너희들 끼리 해

천도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라는 다섯 개의 우리나라 종교인들의 모임이니 으리으리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규모는 있을 줄 알았다. 각 종교계가 엄청난 재산을 가졌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포럼이 열린 곳은 불교여성개발원안의 세 평이 될 듯 말듯 한 조그만 세미나 실이었다. 게다가 저녁에 조계사 앞마당에서 열릴 마하마야 페스티벌은 행사 열흘을 앞두고 조계종단의 불허로 우정총국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해방과 독립의 어머니, 종교에서 찾다'  포럼진행중 @ 최형미
'해방과 독립의 어머니, 종교에서 찾다' 포럼진행중 @ 최형미

유교를 대표로 이미림(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철학연구소)교수는 <태교, 여성이 만드는 독립적 주체의 시작-태교신기를 중심으로>를 발표하였다. 여성을 억압했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유교에서, 태교는 단지 여성들만의 의무가 아니다. 아버지의 절제와 품격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동반돼야 한다는 선조들의 지혜를 알려주었다. 여성이 아이를 갖는 순간 우리사회는 온전히 개인여성에게 책임을 물으며, 희생을 강요한다. 기껏해야 낙태금지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사회가 진정으로 생명과 모성을 존중하는 사회인가 다시 묻고 있다. 공감하는 인격을 지닌 미래세대를 위해 여성을 존중하고 남성이 함께 하는 사회적 태교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도교를 대표로 정혜정(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교수는 <천도교 여성운동과 식민지 조선의 독립-박호진을 중심으로>를 발표하였다. 동학운동에서 출발한 천도교는 민중의 종교였다. 3.1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성 천도교인 박호진은 계급차별, 제국주의 차별, 성차별이라는 교차적 억압에 저항했다. 박호진에게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는 분리되지 않았고 이것은 여성운동과도 굳건하게 연결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약자들을 위한 해방의 언어였고, 변혁의 힘이었다. 그러나 정교수는 해방이후 반민족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로 자칭하며 좌파와 우파 나누기 전략을 펼쳤고, 독재와 일제 봉건주의에 반대한 모든 세력을 빨갱이로 규정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역사가들은 20년대에 풍미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대립적으로 것으로 해석되었다. 민족주의자였고, 사회주의자였으며 여성운동가였던 박호진의 사례는 좌와 우로 찢기어 상처 입은 우리 역사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모티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대표로 최우혁(서강대)교수는 <조마리아, 안중근과 대한 독립의 어머니-천주 신앙으로 독립운동을 키운 여성>을 발표하였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는 죽은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 같은 존재다. 안빈낙도하는 소소한 양반집 여성이었지만 큰아들 안중근이 이토오 히로부미를 죽이고 자신보다 먼저 죽어야 할 때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아들을 편하게 보내주었다. 아들이 죽은 후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고 독립군들이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등 어머니 역할을 하며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최교수는 연해주 무장투쟁을 가장 많이 했던 것이 천주교였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그곳에 여성들의 장엄한 기계가 넘쳐났음을 강조했다. 모성을 개인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조마리아의 모습은 모성이 리더적 품격임을 잘 드러내주었다.

개신교 대표로 손은실(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교수는 <3.1운동과 개신교 여성독립 운동가들>을 발표했다. 3.1운동 당시 개신교는 한국에 들어온 지 35년 밖에 되지 않는 역사가 짧은 종교였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참여한 개신교 여성의 비율은 다른 종교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 이유는 교회조직이 있어 비밀 조직을 만들기 좋았고, 개신교 여학교가 많이 세워졌고 그곳에서 여성들을 민족의 지도자로 길러냈다. 모진 고문 속에서 그들에게 신앙은 고통을 이겨내고 견딜힘이 되었다. 손교수는 당시 1.5프로의 개신교는 민족의 희망이었지만 지금 20프로에 육박한 개신교는 윤리와 도덕성이 하락했고 배타적인 종교가 되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또다시 통일의 여정에서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기원했다.

마지막으로 불교를 대표해 옥복연(종교와 젠더 연구소)소장은 <식민지 해방과 독립공간에서의 여성보살들>을 발표했다. 삼종지도, 여필종부, 축첩, 과부재가 금지 등 여성들에게 남성에게 예속된 삶을 강요당한 시대에, 여성들의 3.1 운동에 대거로 참여는 엄청난 일이었음을 환기시켰다. 그것은 사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공간으로 여성들의 삶이 바뀌는 전환점이었고, 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여성 불자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겨져 있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선시대 불교는 산속으로 쫓겨났고 경국대전에 따르면 여성들이 사찰에 가면 곤장 100대에 처해졌다. 그런 고난속에서 불교를 지켜낸 것도 깊은 산속까지 찾아나선 여성불자들에 의해서였다. 일제시대에 들어서면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길을 걸었다. 조선 통독부는 불교를 인정했고 동시에 철저하게 통제했다. 기독교와 달리 여성교육기관을 만들지도 못했고, 해방이후 일본불교와 전통불교와의 갈등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여성이슈에 대해 관심보일 여력도 없었다. 오히려 개별화되었던 여성들이 연대해 분열된 불교를 살려내기 위해 애써야 했다. 옥소장은 성희롱과 성차별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전체 종교 여성인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시간의 촘촘한 발표가 이어졌다. 어머니라는 주제아래 이루어진 발표들은 하나의 결론을 향해가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 자유롭고 다양한 발표는 서로를 감동시켰다. 포럼에 참가한 방글라데시 무슬림 자하 굴산(Jaha Gulshan)씨는 남성들만이 목소리를 가진 거대 종교속에서 여성들의 모여 서로의 역사를 함께 나누는 것이 독특하다. 또한, 자국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고민한 흔적들은 인상적이었다.” 고 코멘트를 했다.

모임은 <2019 한반도 독립선언서>를 함께 읽으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직업과 신분을 불문하고 분연히 일어섰던 100년 전의 2천만 명의 민중을 되새기며 서로 다르지만 서로 손잡고 격려하고 돕는 일이야 말로 이 땅의 모든 종교 공동체가 주력하는 일이어야 한다며 선언문을 온몸으로 읽어 내려갔다. 여자들이 주도하여 함께 손을 잡은 페스티벌에서 마하마야의 숨결이 느껴졌다.

우정총국 마당에서 열린 '마하마야여, 저희들과 함께 하소서' 다함께 만다라 댄스 @최형미
우정총국 마당에서 열린 '마하마야여, 저희들과 함께 하소서' 다함께 만다라 댄스 @최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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