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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79) - 남녀는 심오한 개소리를 주고 받는다

서석훈
  • 입력 2011.10.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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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도도녀가 백화점 꼭대기층 화랑에서 슈트 입은 남자를 발견했을 때, 그 남자가 일전에 동네 마트에서 간과할 수 없는 시선과 느낌을 전해온 바로 그 남자임을 알아보고 무릎을 쳤을 때. -사실은 무릎 대신 팔뚝을 꼬집었을 때- 남자는 주어진 하나의 그림 앞에서 예술적 영감에 불타오르며 고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여자가 가장 약한 것이 남자의 고독이라는 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남자의 돈은 그를 알고자 하는 여인의 전의를 불태우게 하고 가슴을 두근두근 하게는 하지만 사무치게 다가오지는 않는 법이다. 그러나 남자의 고독, 남자의 자세, 남자의 외로운 눈빛은 여자를 미치게 하기도 한다. 그 고독이 예술과 연관이 있을 때 여자는 공감 차원을 떠나 그를 후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를 악 물기도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스스로는 그 사실을 모르는 - 남자를 누가 알아보기 전에 누가 후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야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는 다시 생각한다. 예술가는 당대에는 무시당한다. 가난하고 그 가난은 뒈질 때까지 계속된다. 예술가보단 예술가처럼 보이는 예술 브로커가 차라리 낫다. 화랑에 오는 슈트는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을 거래하고 향유하고 소비하는 예술 냄새나는 신(新)문화인이다. 그는 돈을 좀 만진다. 그 돈의 일부는 예술가에게 건네지고 나머지 많은 부분은 애인의 지갑으로 들어간다. 예술 냄새 나는 돈, 그런 돈 좀 만져보는 게 뭐가 나쁜가? 해서 우리의 도도녀는 껍데기만 문화인인 당신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자, 모든 조건이 구비되었다. 도도녀가 남자의 발에 걸려 넘어지건, 쇼핑한 물건을 슬쩍 떨어뜨리건, 그림 앞에서 각을 잡느라 뒷걸음치다 남자의 가슴에 기대서건,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전격 맺어질 준비가 다 되었다. 여기서 남자는 보다 고상한, 인상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 있다. ‘왜 볼 때마다 그림이 달라지는 줄 아십니까?’ 느닷없이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아줌마 뭘 잔뜩 산거요?’ 하고 묻거나 또는 ‘누가 방귀를 뀌었나?’ 하고 독백하는 게 아니라 그림과 관련하여 하나의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은 곧 상대를 심오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며 심오와 심오가 만나 심오를 낳자는 제의이다. 해서 도도녀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던지는 것이다. ‘글쎄요? 그림만이 달라지는 건가요?’ 이에 남자는 즉각 답하기를 ‘삼라만상이 그렇지요. 존재건 현상이건 모든 것이 보는 눈에 따라 그 형체와 의미를 달리 하는 거지요.’ 이에 도도녀는 ‘지금은 저 그림이 어떻게 달라져 있나요?’ 묻고 남자는‘ 누구 앞에 자신을 드러내느냐가 회화의 중요한 요소이자 기능으로 작용합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지요. 진정한 그림은 미를 발산하고 미를 흡수합니다.’ 도도녀는 이 개소리가 즉각 마음에 든다. 이에 도도녀는 꼬리 치는 개처럼 다음과 같이 짖는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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