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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아버지

박인 작가
  • 입력 2019.05.03 13:30
  • 수정 2019.09.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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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험하여도 언제나 그립고 반가운 목소리 라산스카
“아빠, 제 가슴에 왜 돌을 올려놓았어요?”
“네가 하늘로 푸드덕 날아갈까 봐.”

▲『라산스카』 98×145㎝, Acrylic and mixed on canvas. 박인作
▲『라산스카』 98×145㎝, Acrylic and mixed on canvas. 박인作

아버지는 한밤중에 깨어나서 산동네 오막살이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낡은 기와지붕 옆에 작은 장독대가 있었지요. 컴컴한 밤이면 장독대로 올라가는 사다리에서 삐꺽 대는 발소리가 들리곤 했어요. 아버지는 술에 취해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죠. 그러다 술이 깨면 라산스카가 부른 노래를 흥얼거렸죠. 사랑스러운 애니로리. 아버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라산스카를 좋아했습니다.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또 낮게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죠. 엄마와 제 동생은 이불 속에 누워 자는 척하지만, 코와 귀는 열려 있으니까요.

라산스카는 맑고 순수한 영혼의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 가수였어요. 아버지는 어린 내게 자주 그녀의 노래를 들려주었어요. 그녀 목소리는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으면 어두운 음색과 우수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유대인인 그녀는 스무 살에 한 남자와 결혼하고 살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며 살았죠. 순탄치 않은 삶을 거치면서 두 딸을 낳았어요. 그녀 나이 서른셋에 남편은 먼저 저세상으로 갔고요. 릴 테이프를 돌리면 지글지글 바늘이 긁히는 잡음이 많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녀 노래를 들으면 세상 걱정이 사라지고 한 여자의 일생에 연민이 느껴졌지요. 세상살이 험하여도 언제나 그립고 반가운 목소리 라산스카. 아버지의 순수한 뮤즈, 라산스카.

“아빠는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없단다. 살면서 지은 죄가 커서 영혼이 없으니까.”

오래전에 아버지는 동아방송국 음악 담당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틀고 듣는 일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릴 테이프로 듣는 클래식 음악과 빨간 뚜껑 두꺼비소주 세 병만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었죠. 신군부가 계엄령을 내린 후에도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고 가끔 방송국에 들렀어요. 군인들이 민간인을 죽이는 암흑세상에서는 죽고 사는 일이 파리 목숨이었지요. 아우슈비츠 학살이 생각났대요. 아버지는 방송국 정문을 지키는 계엄군의 철모를 주먹으로 내리쳤어요.

전쟁의 상흔이 생각나서 전보다 심하게 술을 마셨습니다. 수중에 돈이 생기면 모두 술집에 갖다 바쳤어요. 엄마는 시장바닥에서 좌판을 펴고 행상을 했어요. 장사수완이 없는 엄마가 벌어서 준 용돈으로 아버지는 판자촌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사서 마셨지요. 이웃 동네 가게에서조차 술을 팔지 않자 훔쳐서 마시기도 했습니다. 주인한테 걸려서 얻어터지기도 했지요. 언젠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부르며 우시는 아버지를 본 적이 있어요.

“어머니. 나는 아직 살아있어요. 아직도 인간이 못되어 좋은 글 못 쓰고 있어요. 다만 몇 줄이라도 좋으니 세상에 남길만한 글을 쓰다 죽고 싶어요. 불쌍한 어머니.”

아버지 손을 잡고 소풍 간 날이 생각납니다. 수락산 언저리 풀밭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지요. 모자를 눌러 쓴 아버지는 말없이 소주만 드시고는 내게 맛있냐고 물었어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다가 풀밭에 같이 눕자고 했어요. 누워서 하늘을 보자고. 소나무 가지에 걸린 거미줄에 햇빛이 반짝였습니다. 파란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갔어요. 아버지는 내게 눈을 감으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어린아이 조막손만 한 돌을 제 가슴과 당신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약간 무섭고 창피한 나는 눈을 뜨고 아버지에게 물었어요.

“아빠, 제 가슴에 왜 돌을 올려놓았어요?”

“네가 하늘로 푸드덕 날아갈까 봐.”

아버지는 당신과 가장 닮은 나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죄 많은 어른과 대비되는 순수한 아이들을 사랑했지요. 잠시 머물다 갈 인간들이 오염시킨 이 세상, 순수한 아이들이 물들까 걱정했어요. 자본과 권력이라는 허상들이 무지개처럼 펼쳐진 이 세상, 착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일에 마음 아파했어요.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이 펴낸 『김종삼 매혹시편』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이 펴낸 『김종삼 매혹시편』

아버지는 비밀이 많으셨습니다. 아버지 일본 유학 시절은 잘 모르지만, 할아버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해서 작곡법을 공부하려고 했죠. 문학을 한다고 집에서 학비를 끊자 부두노동자로 일하면서 번 돈으로 세계문학 전집을 한 권씩 사서 읽었대요. 음반을 사서 모으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네 식구가 누우면 꽉 차는 셋방살이 단칸방에서 책과 음악이라니.

낮에는 잠을 자거나 아니면 깡소주를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영화 『흑인 올페』 주제곡을 흥얼거리듯 불렀어요. ‘카니발의 아침’을 음유시인처럼 저음으로 불렀지요. ‘메기의 추억’도요. 그러다가 한국에서 시인으로 환생한 라산스카를 만난 것 같아요. 꿈속의 그녀를 생시에 만나 사랑에 빠진 거예요. 외박이 잦아졌죠. 라산스카는 순수한 시의 뮤즈였을 것 같아요. 정신없이 그녀에게 빠져들었는지 그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지요. 나의 이복동생인 아이는 그녀가 혼자 키웠어요. 아버지가 엄마 몰래 지은 죄 중에 가장 큰 일이죠. 아버지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더 높고 작은 판잣집으로 이사하는 날이면 레코드판만 껴안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어요.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헤매고 다녔어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녀 라산스카를 찾아서. 가슴의 불타는 고통이 시작되면 눕지도 씻지도 못하고 도깨비처럼 서울 시내를 무작정 걸었어요. 모차르트와 말러와 드뷔시와 세자르 프랑크의 음악을 찾아서.

아버지는 주변 여자들이 당신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을 마음 아파했을 겁니다. 엄마에게 고생시켜 미안하다며 늘 같은 말씀을 하셨죠. 그런 ‘유언’을 엄마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가족이 모두 잠든 밤에 지붕에 올라가 별을 보거나 아니면 새벽까지 엎드려서 시를 썼어요. 밤새 시를 써서 아침에 내게 보여주곤 했어요. 그리곤 유언하듯 말했습니다.

“너는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아빠처럼 실패한 삶을 살지 말아야 해. 나라를 잃은 적이 있고 고향을 버리고 남녘으로 내려와 사랑을 잃은 아빠처럼…….”

아버지는 죽기 전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어요. 간경화 말기에도 밥도 드시지 않고 독주를 마셨지요. 마지막 식사인 생선 초밥을 먹고 난 후 아버지는 후식으로 연시를 먹고 싶다고 말했어요. 내가 길음시장으로 연시를 사러 간 사이 당신은 돌아가셨습니다. 라산스카, 라산스카를 찾으면서 세상을 뜨셨을까요. 슬픈데도 웃음이 납니다. 이 세상 모든 여자는 라산스카처럼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어느덧 혼자가 되는 걸까요?

지금은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얼굴조차 가물거리는 아버지.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후 꼭 한번은 죽을 운명이겠죠. 하늘나라에 가면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오늘 밤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아버지를 끌어안고 말하고 싶어요. 아버지를 보고 싶었다고. 매일 생각했다고.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끝>

박인 작가의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스마트 소설은 빠르게 변하는 일상에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초단편 분량의 소설을 말합니다. 『문학나무』 신인상을 수상한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한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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