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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윤한로 詩)

서석훈
  • 입력 2011.10.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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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윤 한 로


잘난 선생도 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또 못난 선생 되기도 싫고

좀 쓴답시고 가르친답시고
빌어먹을, 약장수가 다 됐구나

가을 바람 소슬 부는데
짜른 혀
목이 멘다
우리 염소 선생들

뉘엿뉘엿 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에헴, 모이믄 우리 몇몇 얼려
코끝 쉰내 풍기며 올라간다
수리산 보리밥집
보리밥 먹으러

염소 선생들 재미 하나 없다
해서 깐이 보지 마라
이래뵈도 소용돌이치는 두 개의 뿔
무섭당

추라면 우리
보리밥 밥상 위에 뛰어올라가
춤도 춘다


시작 메모
선생 노릇을 한 지 어느덧 이십년이 훌쩍 넘었다. 머리가 허옇다. 한 가지만 쓰고 한 가지만 가르치고 한 가지만 듣고 아무튼 재미가 적다. 우리 가르침만 주는 사람들, 주구장창 시퍼런 풀만 야금야금 뜯어먹고 사는 염소 같다. 거기다 뿔 두 개가 달렸지만 그것들마저도 전혀 쓰잘 데 없는 존재처럼. 쩨쩨해 보이겠지만 어쩌랴. 어떤 무당굿놀음 사설에 ‘가르치다 가르치다 밑천이 떨어지면 사공질도 가르치고 튀전도 가르치고 화닥대기도 가르치고 마, 술 먹고 지랄 떠는 것까지 다 가르친다’ 했다. 염소는 때로는 풀만 먹는 게 아니라 배가 고프면 회푸대 종이도, 비닐도 막 뜯어먹는단다. 그 뿔들 소용돌이친댄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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