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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케기행 23 ] 제 1 부 마무리

김홍성 시인
  • 입력 2019.04.25 08:59
  • 수정 2019.09.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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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말이 짧은 탓에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고, 가끔 한숨도 쉬어가면서 다시 설명한 끝에 총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 바토!’라고 나직하게 외쳤다. 그 때 처음 물 바토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나는 총누리가 내 말을 이해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물 바토라는 말의 개념이 바로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월 7일, 지리로 나왔다. 총누리는 올 때처럼 타파팅에서 묵자고 했으나 내 발걸음은 타파팅을 지나서 체르둥 롯지로 향했다. 도보여행을 마쳤으니 샤워를 하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배낭에는 카트만두로 돌아올 때 입으려고 아껴둔 새 팬티와 새 러닝 셔츠가 한 벌 씩 남아 있었다.

샤워하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으니 상쾌했다. 총누리는 타파팅에서 뭘 좀 먹고 오겠다고 했다. 나도 타파팅에서 마신 옥수수 막걸리 생각이 나서 총누리를 따라가고 싶었으나 이내 마음을 돌렸다. 총누리만 보내고 마치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혼자 스적스적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체르둥 롯지로 돌아왔다. 

롯지 안 마당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 귀여웠다. 출타한 부모 대신 두 어린 아이를 돌봐주는 언니도 기특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3월 8일, 카트만두로 가는 06시 첫 버스에 올랐다.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 점심을 먹었다. 그 집 달밧떨커리(네팔식 白飯定食)는 맛이 좋았다. 아궁이에서 쉿쉿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타는 불을 바라보는 동안 내가 밥을 먹었던 산중의 밥집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랄리구라스 꽃길도 떠올랐다.

반달, 지리 등 고도가 비교적 낮은 지역의 라리구라스가 3월에 개화를 시작했으니 4월이 되면 킹쿠루딩 곰파나 똘루 곰파 주변의 랄리구라스 숲에서도 붉은 꽃이 일제히 필 것을 생각하니 카트만두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무릎을 넘는 적설량을 무릅쓰고라도 피케 정상까지 가보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웠다.
 

 총누리는 좋은 길동무였다. 그러나 그는 종종 지름길이나 멀리 에도는 길로 나를 인도했다. 예를 들면, 전에 한 번 싸운 사람이 사는 마을을 피하고 싶어서 멀리 에돌고, 그 날 중으로 친지가 사는 집에 가서 묵고 싶어서 지름길로 가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총누리를 붙잡아 세우고 내가 걷고 싶은 길이 어떤 길인지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야 했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은 마을에서 마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이다. 그런 길은 걷기 편하고, 보다 많은 마을과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산길을 걷는 일도 좋아하지만 산촌과 산촌에 사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보는 일도 좋아한다.”

네팔 말이 짧은 탓에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고, 가끔 한숨도 쉬어가면서 다시 설명한 끝에 총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 바토!’라고 나직하게 외쳤다. 그 때 처음 물 바토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나는 총누리가 내 말을 이해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물 바토라는 말의 개념이 바로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 바토는 결국 장 서는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도회와 산촌의 각종 재화와 물산이 유통되는 길이다. 짐을 진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가 다 같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정표 구실도 톡톡히 하는 불탑이 서 있고, 먼 길 가는 사람들이 하룻밤 묵어가며 세상 소식을 듣는 주막집이 있고, 등짐을 벗어 놓고 쉬면서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쉼터가 있고, 오다가다 만나는 길동무가 있다.

피케는 멀어지고, 카트만두가 가까워지는 버스 안에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일단 귀국하지만 조만간 다시 와서 물바토를 걸어서 피케 정상에 올라보겠다고. 총누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총누리는 언제 또 올 것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총누리는 언제든 내가 올 때는 자기가 또 같이 가고 싶다고 했지만 확답을 할 수는 없었다.   

언제 올지 모르니 기다리지는 마라. 만일 내가 카트만두에 도착한 날 앙 도로지 셰르파를 통해서 제일 먼저 총누리 너를 찾겠다. 그 때 네가 마침 카트만두에 있으면 같이 가는 거다. 나를 기다리느라고 다른 기회를 놓치지 말라...... 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허튼 약속이나 빈말 하기가 싫었다.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은 동고동락하면서 정든 가이드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두 번 째 올 때는 미리 연락을 하여 대기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총누리도 그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총누리는 나도 그런 사람인 줄 알고 내심 기뻐했으나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실망한 눈치였다.

당장의 실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내가 어느날 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실망은 더 크고 오래 갈 것이 분명했다. 총누리처럼 단순하고 우직한 청년에게는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7개월 후, 그러니까 늦가을에, 두번 째 피케 도보여행을 위해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앙 도로지 씨를 통해 총누리를 찾은 것은 물론이다. 애석하게도 총누리는 이틀 전에 트레킹을 떠났다. 앙 도로지 씨는 총누리 대신 총누리의 삼촌인 앙 다와 씨를 불렀다.

우리는 약 3주 동안 물 바토를 따라 걸었다. 이전에는 적설량이 많아 포기했던 피케의 정상에도 올랐고, 장 서는 마을을 찾아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도 했다. 네팔에서 제일 큰 명절을 맞은 마을의 주막집 식구들과 친척처럼 어울리기도 하면서 계속 물 바토를 따라 걸을 수 있었다.  <제2부로 계속>  

       

마리단다에서 본 빤쓰 포카리 히말. 다섯(빤쓰) 연못(포카리)이 있는 설산(히말)이라는 뜻이다.

 

지리 외곽의 학교 운동장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학길의 소녀들이 화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미안했다.  

 

마리단다 동쪽 풍경. 화면을 가른 데우라리 능선 너머로 피케가 보인다. 올라올 때는 짙은 구름으로 인해 데우라리 능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총누리. 뒤에 보이는 마을이 지리.  

 

랄리구라스가 핀 물바토. 

 

랄리구라스가 핀 물바토.  

 

지리 시내로 이어지는 큰 골목. 
지리 시내 체르둥 롯지의 딸.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툴로 디디(큰언니). 

 

 

지리 거리의 좌판. 고추, 마늘, 생강 등이다. 

 

체르둥 롯지 이층 발코니. 

 

달밧떨커리(백반정식)를 식판에 담고 있다.   

 

밥을 하는 중이다. 네팔이나 인도 밥은 뜸을 들이지 않고 그냥 이렇게 뚜껑을 열고 펄펄 끓인다.  

 

카트만두 외곽에는 감자가 벌써 이렇게 자랐다. 열흘 전에 씨를 심은 총누리네 감자밭에서도 싹이 나왔을까?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조우한 여성 단체의 시위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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