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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77) - 슈트의 그림자

서석훈
  • 입력 2011.10.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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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당신이 화랑에 서 있을 때, 백화점 꼭대기 층 은은한 향이 풍기는 전용 화랑에 서 있을 때, 당신은 또 하나의 그림이 되어 회전하며 조명을 받으며 마침내 여인들의 쇼핑목록이 되어간다. 여인들은 애초에 작정한 쇼핑을 끝냈다. 20만 원 대의 아이 옷을 사고, 남편 거로는 석 장에 2만 원 하는 기획상품인 와이셔츠를 골랐다. 본인 거로는 주름개선, 피부부활의 기능성 화장품을 선택하였다. 땅이 좀 있는 시아버지 거로는 껍데기가 그럴싸한 건강식품을 50퍼센트 할인가에 샀다. 유럽산 치즈와 호주산 쇠고기도 한 팩 씩 구입하였다. 우리 가족 많이 먹어라, 여인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한다. 그러나 가슴에 휘몰아치는 이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은 무엇인가?
화랑의 적당한 조도와 마른 물감 냄새, 카펫에서 전해오는 부드러운 탄력이 여인의 가슴에 아프게 다가온다. 쇼핑 바구니는 무겁지만 마음은 공허하다. 이 계절에 (봄이면 꽃바람에, 여름이면 작열하는 태양에, 가을이면 황혼의 쓸쓸함에, 겨울이면 순백의 눈에) 훌쩍 떠날 수도 없는 여인의 마음에 누가 슈트의 그림자를 던지는가?
제발 등산복 쫄바지는 착용하지 마시길. 반바지는 최악이다. 청바지도 화랑에서는 최선이 아니다. 슈트, 오직 슈트만이 남자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당신은 슈트를 입고 있고 화랑의 어느 그림 앞에 조용히 서 있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오직 도도녀를 한 번 꼬셔보기 위해 거기 슈트의 남자가 되어 서 있다. 도도녀의 실상에 대해선 얘기했을 것이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건 도도녀가 아니라 평범한 주부들이다. 욕구불만, 생리불순 등으로 그녀들은 한번 씩 마구잡이 쇼핑에 나선다. 그러나 도도녀는 카드는 한도가 찼고 지갑엔 쓰잘데없는 쿠폰뿐이다. 이러한 실상을 모르는 남자들이 도도녀를 지레짐작으로 기피하고 수많은 평범한 여성에 눈을 돌린다. 도도녀라고 시간을 긴박하게 운영하거나 비데 화장실만 사용하거나 1년에 한 번만 그곳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많은 것이 남아돌고 방치되고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다. 남는 것을 주고 싶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 없을 때 화랑에서 만난 그 남자, 가슴을 뒤흔드는 그 남자를 향해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고 있다. 그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동네에서, 마트에서, 또 어디선가에서 그녀를 향해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오늘, 화랑의 남자가 되어 여심을 뒤흔든다.
남자가 말한다. “이 그림은 다섯 발짝 떨어져서 봐야 합니다.” “어머 왜요?” “그림을 보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정말 웃기지 않나? 웃기는 게 작업이란 거다. 여자는 작업 거는 남자를 미워하지 못한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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