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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김종삼 시인의 드빗시 山莊 4

박시우 시인
  • 입력 2019.04.05 16:41
  • 수정 2019.09.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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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과 시인학교
요절한 시인 전봉래를 추억하는 음악

公告(공고)

오늘 講師陳(강사진)

음악 部門(부문)
모리스·라벨

미술 部門(부문)
폴·세잔느

시 部門(부문)
에즈라·파운드

모두
缺講(결강).

金冠植(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持參)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내(敎室內)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金素月(김소월)
金洙暎 休學屆(김수영 휴학계)
全鳳來(전봉래)
金宗三(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五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校舍).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김종삼 ‘시인학교’ 전문
 

▲트레버 피노크 지휘와 더 잉글리시 콘서트가 연주하는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음반
▲트레버 피노크 지휘와 더 잉글리시 콘서트가 연주하는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음반

1973년도에 발표된 ‘시인학교’는 김종삼의 예술적 취향과 비극의 잔상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시인학교 강사진에 나오는 모리스 라벨, 폴 세잔은 프랑스 인상주의, 에즈라 파운드는 이미지즘을 추구한 예술가들로 김종삼의 시세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수강생으로 등장하는 김관식, 김소월, 김수영, 전봉래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거나 때 이르게 세상을 뜬 시인들입니다. 이중 몇은 기행과 논쟁으로 구태의연한 질서와 주류 사회를 조롱하고 나태한 문단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시인은 전봉래입니다. 그는 참혹한 전쟁의 비극을 견디지 못하고 1951년 피난지 부산의 어느 음악다방에서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자살을 하고 맙니다. 전봉래는 유서에 바흐가 흐르고 있다고 남길 만큼 고전음악을 좋아한데다 조예도 깊었습니다. 김종삼은 나이가 두 살 어린 전봉래와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전봉래를 추억하는 음악이자 요절한 시인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입니다. 총 6곡 가운데 제5번이 규모와 형식면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종삼은 시에 등장시킨 시인과 예술가들을 ‘결강’과 ‘휴학계’로 한켠에 슬쩍 밀어내고 김관식과 전봉래에게는 현재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현재성은 김관식에게는 관찰자 시선에 머물지만, 전봉래에게는 소주잔을 나누는 관계로 설정하여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출간된 김종삼 정집
▲2018년 11월 출간된 김종삼 정집

이 시의 비극성은 마지막 연에 있습니다. 교사가 있는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당시 레바논은 제국주의 세력이 물러나면서 조장한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종교 갈등이 극에 달해 참혹한 내전으로 치닫기 전의 상황이었습니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김종삼은 피 흘리는 레바논 같은 땅에다가 평화의 시인학교를 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인학교의 교실에서 간혹 욕설이 들리고 낮술을 먹는 기행이 벌어지더라도 전쟁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소소한 삶의 즐거움이나 가벼운 일탈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김종삼과 전봉래가 전쟁통에서 들을 수 있었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음반은 아마 1930년대 아돌프 부슈가 이끄는 부슈 체임버 플레이어스의 레코드로 짐작합니다. 김종삼 시인이 이 시를 썼던 1970년대 초반에는 스테레오로 녹음된 칼 리히터와 칼 뮌힝거 음반이 쌍벽을 이루며 각광을 받았습니다. 이밖에 트레버 피노크가 지휘하는 원전 연주는 속살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바흐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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