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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52) - 살찐 뱀에게 걸려들면

서석훈
  • 입력 2011.04.0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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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수상한 카페의 마담 ‘살찐 뱀’은 옆자리에 앉아 빈약한 허벅지를 떨어대는 이 40대 작자가 문화예술 관련 일에 종사하는 허약한 사내라는 걸 알아보고 일단 몸으로 조지기로 결심한 바가 있었다. 겪어본 바에 의하면 문화예술에 관련된 자들은 대개 체격이 빈약하고 체력도 딸리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감성이 발달했고 작은 신체적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논리에 안 맞는 말을 많이 하고 질문을 해도 논리에 맞는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 그들은 술값 계산은 거의 하지 않는데 함께 온 동창이나 자영업자나 회사원이 계산을 하게 놔두었다. 어떤 경우에는 제자라고 하는 자가 계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문화예술 관련 일이라 하더라도 관리직과 창작자로 구분되기 마련인데 오늘 온 이 작자는 바로 관리직임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자기 돈 주고 술을 처먹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술적 감각은 없어 보이는데 예술 언저리 냄새는 풍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들의 직업은 대개 교수, 협회 직원, 공무원들이었다.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술가를 존경하거나 배려하는 시시한 일은 잘 하지 않고 다만 예술과 예술을 하는 예술가에 관해 강의하거나 일장 연설하는 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빈약한 사내도 예술을 약간 경시하는 태도로 지껄였던 것 같다. 피카소니 베를린 필하모닉이니 말할 때 무슨 친구 이름 부르듯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으스대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살찐 뱀은, 한 대 치면 바로 자빠져서 못 일어날 것 같은 이 작자가 이 동네의 무식한 오빠들- 철물점 주인과 주유소 소장과 희망 부동산 사장 같은, 다짜고짜 젖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려드는 자들과는 다른 부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자는 동네 오빠들의 그런 짐승 같은 용기가 없는 대신 여자가 먼저 짐승처럼 다가오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을 때가 많다. 해서 살찐 뱀은 이 작자를 몸으로 조져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살찐 뱀은 실수처럼 물잔을 쳐서 그것이 엎어지게 한 다음, 쏟아진 물이 테이블에서부터 사내의 바지 앞부분에 흘러내리게 했다. “어머머머!” 마담은 급히 크리넥스를 뽑아 물에 젖은 사내의 앞부분을 문질러댔다. “괜찮아, 괜찮아.” 사내는 통이 큰 사람처럼 손을 내저었으나 그만 닦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살찐 뱀의 손은 사내의 양 허벅지를 문지르면서 노골적으로 그 부분을 툭툭 건드려댔다. 배삼지 국장은 마담이 거길 밤새도록 문지르고 있지 못하는 게 크게 아쉬웠다. 국장의 마누라, 결혼 17년차 여편네로 말할 것 같으면 물이 쏟아졌을 경우 거길 문지르기는커녕 국장 본인이 문지르는 걸 구경만 할 여자였다. 국장의 부인 천휘순 여사는, 남편이 집에서 300미터 떨어진 수상한 곳에서 자기 돈으로 술을 마시고 바지까지 흠뻑 젖어 있는 걸 알 리 없었다. 여사는 드라마가 11시에 끝나 현빈처럼 생긴 그 남자를 더 볼 수 없는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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