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과 박신혜 주연 영화 '#살아있다'가 개봉 첫날 관객 20만여 명을 기록했다. '#살아있다'는 예스24 영화 예매 순위에서도 예매율 82.9%로 1위에 올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대박영화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영화진흥위원회의 24일 영화관 입장권 집계에 따르면 '#살아있다'는 전국 1662곳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20만 4071명을 끌어모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진 지난 2월 이후 개봉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다.‘#살아있다’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
영화진흥위원회 [미디어피아] 주다영 기자= 12월 12일 채널CGV 방영 영화 ‘대장 김창수’에는 조진웅(김창수), 송승헌(강형식), 정만식(마상구), 정진영(고진사) 등이 주연으로 출연해 개봉 당시 총 381,483명의 관객을 동원했다.1896년 황해도 치하포, 청년 김창수가 일본인을 죽이고 체포된다. 그는 재판장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고 소리치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수감된다. 일본의 편에 선 감옥소장 강형식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김창수를 갖은 고문으로 괴롭히고 죄수들마저 김창수에게 등을 돌린다.하지만 그 곳은 그에게만 지옥이 아니었다. 못 배우고, 못 가졌다는 이유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조선인들을 보며 김창수는 조금씩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변화를 꿈꾸기 시작한다.천하고 평범한 청년이 대장 김창수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625일의 이야기!
영화진흥위원회 [미디어피아] 주다영 기자= 12월 7일 SUPER ACTION 방영 영화 ‘찌라시:위험한 소문’에는 김강우, 고창석, 박성웅(차성주), 정진영(박사장) 등이 주연으로 출연해 개봉 당시 총 1,221,427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가진 것은 없지만 사람 보는 안목과 끈질긴 집념 하나만큼은 타고난 열혈 매니저 (김강우). 자신을 믿고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여배우의 성공을 위해 밑바닥 일도 마다 않고 올인하지만 증권가 찌라시로 인해 대형 스캔들이 터지고, 이에 휘말린 우곤의 여배우는 목숨을 잃게 된다.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찌라시의 한 줄 내용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자 직접 찌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나선 우곤. 전직 기자 출신이지만 지금은 찌라시 유통업자인 박사장(정진영), 불법 도청계의 레전드 백문 (고창석)을 만난 우곤은 그들을 통해 정보가 생성되고, 제작, 유통, 소비 되는 찌라시의 은밀한 세계를 알게 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해결사 차성주(박성웅)까지 등장하여 위협받는 상황 속 우곤은 찌라시의 근원과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보이지 않는 실체 를 둘러싼 숨막히는 추격이 시작된다!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 기자]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찾아 집중 취재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가 지난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수 설리(본명 최진리)를 재조명한다.'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달 14일 세상을 떠난 설리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떤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는지, 설리가 괴로워했던 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파헤친다.공개된 예고편에서 한 관계자는 "입에 담기 어려운 루머가 많았다. 더럽고 이미지를 깎아먹는 루머들이었다"고 증언했다.뿐만 아니라 설리의 영혼에 접신했다는 무당의 영상과 스스로 설리의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의 영상도 담겼다.특히 악플러로 추정되는 한 남성은 "욕은 아니지 않나. 내가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니다. 죽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다"고 말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16일 방송될 '그것이 알고싶다'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누가 진리를 죽였나'라는 부제로 설리가 떠나면서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다.경기 성남수정경찰서에 따르면 설리는 지난 10월 14일 오후 3시 21분께 자택인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한 전원주택 2층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설리의 매니저는 전날 오후 마지막 통화 이후 연락이 되지 않자 설리의 집을 찾아갔다가 설리의 사망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1994년생으로 올해 나이 스물 여섯살인 설리는 그동안 욕설파문 등 여러차례 돌발행동으로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올랐지만 최근 jt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공동 진행자로 활약하는 등 왕성한 행보를 보여 더욱 큰 안타까움을 낳고 있다.지난해 10월에는 단독 리얼리티 프로그램 '진리상점'을 시작하며 힘든 과거를 조금씩 털어놨다. 당시 그는 에프엑스 탈퇴 과정을 설명하며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더했다.특히 그는 스타들이 나와 악플에 대한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포맷의 JTBC2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 MC를 맡아 활동 중이었다. 이날은 이 프로그램 녹화일이기도 했다.한편 '그것이 알고싶다'는 SBS TV에서 방송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며 사회, 종교, 미제 사건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1992년 3월 31일 첫방송을 시작했지만 1995년 9월 23일 ~ 1996년 10월 7일까지 소재고갈로 인해 약 1년 간의 휴식기를 가지다 1996년 10월 14일 : 다시 방송을 재개했다.1997년 10월 26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7시에 방영되었으나 동시간대 예능-오락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1999년 2월 27일부터 매주 일요일 방영했지만 프로그램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로 인해 토요일 심야 시간대로 이동하여 방송하고 있다.'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민영 방송에서 만든 다큐 프로그램 중 가장 현존하는 최장수 프로그램이고, 1991년 SBS TV 개국 이래 최초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역대 진행자는 초대 문성근(1992년 3월 31일∼1994년 1월 2일, 1997년 10월 26일∼2002년 5월 11일), 2대 박원홍(1994년 1월 9일∼1995년 9월 16일), 3대 오세훈(1996년 10월 14일∼1997년 10월 13일), 4대 정진영(2002년 5월 18일∼2006년 1월 21일), 5대 박상원(2006년 2월 4일∼2008년 2월 23일) 맡아왔다.2008년 3월 1일부터 현재 진행을 맡고 있는 6대 김상중은 "그런데 말입니다"란 독특한 어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초반 한때 시청률이 30%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최근에도 10%가까운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가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찾아 집중 취재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 방송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그것이 알고싶다'는 SBS TV에서 방송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며 사회, 종교, 미제 사건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1992년 3월 31일 첫방송을 시작했지만 1995년 9월 23일 ~ 1996년 10월 7일까지 소재고갈로 인해 약 1년 간의 휴식기를 가지다 1996년 10월 14일 : 다시 방송을 재개했다.1997년 10월 26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7시에 방영되었으나 동시간대 예능-오락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1999년 2월 27일부터 매주 일요일 방영했지만 프로그램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로 인해 토요일 심야 시간대로 이동하여 방송하고 있다.'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민영 방송에서 만든 다큐 프로그램 중 가장 현존하는 최장수 프로그램이고, 1991년 SBS TV 개국 이래 최초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역대 진행자는 초대 문성근(1992년 3월 31일∼1994년 1월 2일, 1997년 10월 26일∼2002년 5월 11일), 2대 박원홍(1994년 1월 9일∼1995년 9월 16일), 3대 오세훈(1996년 10월 14일∼1997년 10월 13일), 4대 정진영(2002년 5월 18일∼2006년 1월 21일), 5대 박상원(2006년 2월 4일∼2008년 2월 23일) 맡아왔다.2008년 3월 1일부터 현재 진행을 맡고 있는 6대 김상중은 "그런데 말입니다"란 독특한 어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초반 한때 시청률이 30%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최근에도 7∼1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치밀한 조작인가? 살인범의 게임인가? - 화성 8차 사건의 진실'이라는 부제로 화성 8차 사건에 대해 조명했다.지난 10월 1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는 그동안의 여죄를 자백했다. 그중 하나는 22세 농기계 수리공 윤 씨를 범인으로 체포했던 화성 8차 사건이었다.이에 윤 씨는 30년 전 사건이 당시 가혹 행위와 강압에 의해 허위 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들은 윤 씨가 스스로 자백을 했다고 했다.당시 윤 씨를 범인으로 체포한 결정적인 단서는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 대한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에 의해 드러난 범인의 혈액형과 직업 때문이었다. 특히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의 체모가 동일인이 아닐 확률은 3600만 분의 1이라고 밝히기도 했다.20년형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경식 씨는 "이춘재가 자백을 했다고 연락이 왔더라. 사실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밥을 먹고 있는데 최 형사가 잡아갔다. 당시 형사들이 7명 정도 와서 차에 태운 다음에 수갑을 채웠다. 차에 태워서 바로 경찰서에 가지 않고 산으로 갔는데 그건 겁을 주려고 했던 거 같다. 그 시대에는 누구 하나 죽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나 하나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이어 그는 "3일 밤낮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쪼그려 앉으라고 해서 앉았는데 뒤에서 갑자기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그러면서 계속 자백을 하라고 했다. 거의 3일을 계속 지냈다. 어디서는 5시간 반? 4시간 반이 걸려서 자백을 했다는데 절대 아니었다"라며 "자백을 하면 7년, 10년 정도라면서 사형보다 낫다고 하더라. 내가 죄가 없는데 왜 7년형을 살아야 하냐 물었는데 네가 죄를 지었으니까 자백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난 간강 살인을 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또한 그는 당시 증거로 채택된 체모에 대해 "그건 조작이다. 왜 거기서 내 체모가 나왔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체모만 6번을 뽑아줬다"라고 했다.그러나 당시 수사 관계자는 이춘재는 왜 안 했던 짓을 했다고 하냐 라며 윤 씨에 대한 가혹 행위는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또한 그는 당시 범인의 혈액형과 이춘재의 혈액형은 맞지 않다며 이춘재의 자백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방송은 당시 10여 장에 이르는 윤 씨의 자필 진술서를 입수했다. 그리고 진술서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윤 씨보다 경찰이 쓸 법한 어휘들이 다량 발견되었다. 이에 윤 씨는 형사가 쓰라고 하는 대로 썼다고 주장했다.당시 윤 씨가 일했던 농기계 수리점 사장. 그는 윤 씨의 조서 작성에 입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장의 이야기는 달랐다. 사장은 "형사들이 윤 씨를 잡아가기 한 달 전부터 지켜봤다고 하더라. 너무 섬뜩했다"라며 "조서 작성이 다 끝나고 다음 날 오라고 해서 갔다. 내가 가서 윤 씨를 부르는데 날 몰라보더라. 그런데 그때 느낌에 쟤가 매를 맞은 건가,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네가 했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 그런데 그때 경찰이 녹음된 내용을 들려줬다. 끝부분에 제가 했습니다 하는 말이 나왔다. 다른 말은 듣지 못했다. 그게 전부다. 조서 작성에 입회하지 않았다"라고 했다.또한 그는 조서에 나와있는 윤 씨가 범행을 저지른 시각 윤 씨가 외출을 나가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집 구조상 누군가의 외출을 모르는 것은 어려운 상황. 이에 사장은 진술의 석연찮음을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손으로 경운기를 돌려서 항상 손에 기름때가 범벅이다. 그런데 현장에는 기름때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현장이나 범인이 벗긴 것으로 드러난 피해자의 옷에는 기름때는 일체 발견되지 않았다.그리고 당시 담을 넘은 것으로 진술한 윤 씨. 그러나 윤 씨는 소아마비로 담을 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이에 당시 수사관들은 "담 넘는 것을 봤다. 담을 넘어 착지까지 제대로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 검증을 지켜본 이웃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이웃들은 "담에 올라가라고 하니까 애가 못 올라가니까 옆에 있는 벽돌을 놓으면서 올라가라고 하더라.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형사들이 옆에서 붙잡고 다리를 올리게 했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라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이춘재는 담을 넘지 않고 문을 통해서 침입했다고 자백했다. 특히 그의 집은 피해자이 집 인근. 범행 후 도주에도 용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범죄 심리학자는 윤 씨의 진술에 대해 "윤 씨가 말하는 범행 동기를 보면 지나치게 길고 장황해서 마치 윤 씨가 범인이라는 것을 믿게끔 만들기 위한 누군가가 설명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강간 사건의 동기라는 것은 달리 없다. 그렇게 자세하게 진술할 필요가 없다"라고 덧붙였다.또한 법의학자는 피해자의 목에 드러난 상처에 대해 "주택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소음에 신경을 썼을 거다. 입안에 뭔가 가격 후 집어넣고 목을 졸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굉장히 노련한 범죄자 스타일이다"라며 "부검 사진을 보면서 목에 있는 상처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화성 연쇄 살인 사건 2차 사건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맨손으로 꾹 눌러서만 나올 수 없는 상처다. 충동적이 아니라 계획된 범행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8차 사건 이전 이춘재가 저지른 강도 예비 사건. 당시 이춘재는 과도와 면장갑을 준비해서 범행을 시도한 바 있다.이에 8차 사건 당시 이웃은 "밤에 지름길로 집에 가는데 누군가가 저를 넘어뜨리고 한 손으로 막고 목을 누르다가 지나가던 행인 때문에 그가 달아났다. 얼굴을 0.1초라도 봤을 텐데 그것보다 입을 막던 가죽장갑의 느낌만 기억난다"라고 했다. 혹시 이는 이춘재가 아니었을까?또한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로 나타난 체모의 진실은 무엇일까? 당시 지역 주민은 "8차 사건 후에 B형의 남자들은 거의 다 체모를 뽑아갔다. 학생들도 잡아갔다"라고 했다.그리고 이전 사건에서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한 체모와 모발. 그러나 8차 때 체모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당시 국과수 생물학 과장인 최상규 박사는 "피해자의 몸에서 음모 10여 개가 발견됐다"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제작진을 만난 최상규 박사는 "경찰이 증거물을 가지고 왔는데 음모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 모양도 특이했다. 파상모로 파도 물결이 있는 음모였다. 그리고 혈액형 검사를 여러 차례 검사를 했고 오류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단언했다.당시 경찰은 체모에서 발견된 티타늄 성분으로 용의자를 특정했고, 그 과정에서 윤 씨가 범인으로 특정했다. 윤 씨는 "4월인가 5월에 찾아왔다. 그리고 이후에도 찾아와서 몇 번이고 체모를 뽑아달라고 했다. 난 잘못이 없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직업 환경 전문가들은 "희귀 물질인 브롬에 집중하지 않은 것이 의문이다. 과연 동일한 시료일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라며 이 정도의 함량은 용접공으로 특정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결과를 보면 이춘재의 작업 환경과 동일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또 다른 전문가는 "3600만 분의 1의 확률로 동일인이라고 하지만, 같은 직업군이라면 1000분의 1일 수도 있다. 이 확률 자체를 믿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체모 단 몇 개만으로 범인을 특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현재 프로토콜은 최소 40수를 뽑게 되어 있다. 부위마다 다를 수 있다. 해석의 문제고 하나의 보충 증거일 수는 있는데 이걸로 딱 맞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라고 했다.당시 두 번이나 체모 검사를 받았던 이춘재는 왜 수사에서 배제되었을까? 그의 체모 결과는 모두 달랐다. 1차 검사에서는 B형, 2차 검사에서는 O형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문가는 "개인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증거물 자체가 오류가 날 수도 있다. 증거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수집되었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모발은 하나가 증거물 하나다. 전체 8점이 수거되면 8점을 모두 분석되었는지 모두 동일한지도 살펴야 한다"라고 했다.법의학자는 "질 내부에서 체모를 체취를 했다면 가장 중요한 증거일 텐데 부검 기록에 남아있는 증거는 없었다"라고 밝혔다.당시 분석을 했던 박사는 "11개의 체모 중에 2개 정도 골라서 분석을 했다. 그리고 체모 중에 모두가 특이한 모양은 아니었다"라고 했다.외국의 중성자 방사화 분석 전문가는 "원자로에서 중성자를 오랜 시간 노출시키면 훼손될 수 있다. 보고서에는 15회 노출을 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여러 차례 노출해서 증거물을 훼손시키면 안 됐다. 왜 이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당시 검사를 맡았던 국과수는 이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회신만 보내왔다.전문가는 분석 보고서에 대해 "오류가 많은 보고서다. 두 샘플이 동일인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했다. 이에 제작진은 당시 감정서를 윤 씨에게 보여주었다. 보고서를 처음 본다는 윤 씨는 "아이고 미치고 환장하겠다. 뭐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난 뭘 봤어야 말이지. 나같이 용접하는 사람이 한 둘이냐. 이걸 갖다 놓고 자기들끼리 짜 맞추기 한 거 아니냐. 열 받네"라며 답답해했다.이에 당시 수사 관계자는 "판례상으로 인정을 못 받는 건데 위에서 판례상으로 인정받아보자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저녁에 연행하고 새벽에 자백을 받은 거다"라고 했다.지난 10월 26일 윤 씨는 다시 경찰서를 찾았다.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는 윤 씨. 이에 변호사는 "이 사건의 재심은 수월할 거 같다. 윤 씨가 쓰지 않았는데 윤 씨가 쓴 것으로 된 자술서가 발견됐다. 수사 관계자가 대필을 한 것일 거다. 이것은 진술을 강요했다는 큰 증거다"라고 했다.또한 변호사는 "이춘재의 자백은 영상 녹화가 되어 있고 진술 내용에는 이춘재만이 할 수 있는 연쇄 살인 사건과 연관 지어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언론에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현장 사진과 이춘재의 자백과 꼭 맞는 부분까지 드러났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윤 씨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난 경찰. 이에 권미혁 국회의원은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의해서 죄가 없는 사람도 범인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제작진은 윤 씨의 판결문에 적힌 판검사들을 찾아 과거의 판결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대부분의 이들은 사건과 판결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주심 판사는 "내가 주심 판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윤 씨가 허위자백을 했다고 억울함을 강조했다면 기억나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지금도 난 판결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그리고 당시 국선 변호사는 "다른 재판으로 가서 앉아있다가 별 거 아니니까 국선으로 좀 하라고 해서 사건을 맡았다. 재판부에서도 당시 사건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1심에서 자백을 한 사건이라 전혀 신경을 안 썼다"라고 말했다.실제로 윤 씨는 3차 재판까지 변호사와 접견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소가 가능했던 건 구치소에서 만났던 운동권 학생들의 도움 덕이었다. 그리고 그가 재수사를 요청했으나 담당 검사는 그의 말을 무시해버렸던 것으로 드러났다.하지만 당시 검사는 "수사에 최선을 다 했다. 자기 입으로 시인한 사건을 왜 그러냐. 이춘재가 자백을 한다고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라며 "윤 씨의 족적이랑 일치해서 범인을 확신했다. "억울하다고 한 마디만 했어도 그러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전혀 기억이 안 난다"라고 주장했다.그리고 수사 관계자는 구속 영장도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윤 씨를 3일간 밤샘 조사하고, 검사는 사전 현장 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것은 모두 불법 수사였다. 또한 강압 수사에 대해 관계자들은 최 형사의 소행이라고 입을 모았다.윤 씨의 출소 후 그가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움을 준 교화 복지회의 나호견 원장. 그는 "출소 후 내 손을 잡고 울면서 원장님만 제가 살인자가 아닌 걸 믿어주면 여한이 없겠다고 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출소 후 10년이라는 시간을 한결같이 일했다. 얼마나 성실하게 사는지 그의 삶이 하느님을 움직였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라고 지금이라도 밝혀진 진실에 안도했다.체포 당시 22살이었던 윤 씨. 그는 당시 꿈에 대해 "학력도 짧고 배운 거라고는 기계 고치는 것 밖에 없어서 그걸로 그냥 먹고살고 싶었다. 농기구 가게 사장이 되는 것, 조그맣게라도 내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지난 세월에 안타까워했다.재심을 앞두고 윤 씨는 체포 전 농기구점 사장 부부와 재회했다. 30년 만의 만남에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라도 찾은 진실에 다시 환하게 웃었다.억울한 30년을 보낸 윤 씨. 그는 "내 명예, 인생의 명예를 찾고 싶다. 돈은 필요 없다. 그건 벌면 된다. 나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랄 뿐이다"라며 재심을 기다렸다.마지막으로 방송은 8차 사건 당시 윤 씨가 아닌 이춘재의 자백을 받아냈다면 그 이후 벌어진 사건의 6명 피해자의 목숨은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안타까워했다.또한 여러 차례 화성 사건의 취재를 진행하면서도 윤 씨의 억울함을 미쳐 알아채지 못했던 자신들의 무심함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더욱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 약속했다.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찾아 집중 취재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그것이 알고싶다'는 SBS TV에서 방송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며 사회, 종교, 미제 사건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1992년 3월 31일 첫방송을 시작했지만 1995년 9월 23일 ~ 1996년 10월 7일까지 소재고갈로 인해 약 1년 간의 휴식기를 가지다 1996년 10월 14일 : 다시 방송을 재개했다.1997년 10월 26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7시에 방영되었으나 동시간대 예능-오락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1999년 2월 27일부터 매주 일요일 방영했지만 프로그램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로 인해 토요일 심야 시간대로 이동하여 방송하고 있다.'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민영 방송에서 만든 다큐 프로그램 중 가장 현존하는 최장수 프로그램이고, 1991년 SBS TV 개국 이래 최초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역대 진행자는 초대 문성근(1992년 3월 31일∼1994년 1월 2일, 1997년 10월 26일∼2002년 5월 11일), 2대 박원홍(1994년 1월 9일∼1995년 9월 16일), 3대 오세훈(1996년 10월 14일∼1997년 10월 13일), 4대 정진영(2002년 5월 18일∼2006년 1월 21일), 5대 박상원(2006년 2월 4일∼2008년 2월 23일) 맡아왔다.2008년 3월 1일부터 현재 진행을 맡고 있는 6대 김상중은 "그런데 말입니다"란 독특한 어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초반 한때 시청률이 30%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최근에도 7∼1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한편 9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0여년전 발생한 부산 미제전담팀의 1번 사건, '부산 농수로 살인사건' 편이 그려진다.
JTBC [미디어피아] 온라인뉴스팀= JTBC 새 월화드라마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시즌2'(극본 이대일, 연출 곽정환, 이하 '보좌관2')은 금빛 배지를 거머쥔 국회의원 장태준의 위험한 질주, 그 치열한 여의도 생존기를 그린다.시즌 마지막 장면은 그런 장태준의 변화를 드러냈다. 이정재는 “장태준이 故 이성민(정진영) 의원의 지역구였던 성진시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했다. “고석만(임원희) 보좌관의 죽음과 대비되면서 움츠리고 있던 장태준 변화와 욕망을 많은 이들에게 처음으로 표출한 것이라 유독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신민아는 “‘보좌관2’에서 선영은 자신의 보좌관을 잃은 슬픔, 누군가를 향한 의심, 배신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운을 뗐다.신민아는 지난 시즌에서 유리천장에 도전하는 여성 정치인 역할을 맡아 목표를 향해 주저 없이 달려가는 당당한 캐릭터를 새롭게 구축해 호평을 받았다. "'보좌관2'에서도 시즌1과 마찬가지로 강선영은 당당하고 주체적이다. 다만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더욱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선영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신민아는 "강선영이 자신 앞에 놓인 난관들을 헤쳐 나갈 때 한층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JTBC [미디어피아] 최하나 기자= JTBC 새 월화드라마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시즌2'(극본 이대일, 연출 곽정환, 이하 보좌관2)가 신민아의 첫 스틸을 공개했다.초선의원인 강선영이 꿈꾸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험난했다. 송희섭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저지하고자 함께 청문회를 준비했던 전 성진시 국회의원 이성민(정진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물심양면 그녀를 돕던 고석만(임원희) 보좌관마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믿고 의지했던 연인 장태준(이정재)은 그토록 혐오하던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국회의원이 됐다.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강선영 의원은 그러나, 무너지지 않고 더욱 강해져서 돌아왔다. 소중한 사람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보좌관2’는 금빛 배지를 거머쥔 국회의원 장태준(이정재 분)의 위험한 질주, 그 치열한 여의도 생존기를 그린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후속으로 오는 11월 11일 오후 9시 30분에 첫 방송된다.시즌1에서 신민아는 당차고 능력 있는 여성 정치인 강선영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조해내며 '新여성 캐릭터의 탄생'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보좌관2'에서 더욱 깊어진 카리스마로 돌아올 그녀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JTBC [미디어피아] 온라인뉴스팀= 위 영상에 따르면,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시즌2’에서 보좌관이었던 장태준(이정재)은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선 국회의원으로 돌아온다.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하면서 시즌1을 종료했던 장태준은 경찰대 출신으로, 사망한 故이성민(정진영)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전 국회의원, 현 법무부장관인 송희섭의 수석 보좌관을 지냈다. 국정감사를 휘어잡는 날카로운 질의, 빠른 상황 판단력,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집요함,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는 야망이 크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진시 보궐선거 공천권을 받아 출마, 당선의 승리를 쟁취했다.‘보좌관2’는 금빛 배지를 거머쥔 국회의원 장태준의 위험한 질주와 치열한 여의도 생존기를 담는다. 시즌1의 편성 요일이었던 금요일과 토요일에서 월요일과 화요일로, 요일을 옮겨 방송한다. 시즌1에 이어 배우 이정재, 신민아, 이엘리야, 김동준, 김갑수, 정웅인이 출연했다. 새로운 인물로는 배우 정만식, 박효주, 조복래가 합류한다.
JTBC [미디어피아] 최하나 기자= JTBC는 1일 이와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첫 티저 영상을 함께 공개했다.따라서 ‘보좌관2’는 이렇게 금빛 배지를 거머쥔 국회의원 장태준의 위험한 질주, 그 치열한 여의도 생존기를 그린다. 월요일과 화요일로, 요일을 옮겨 방송된다. 시즌1에 이어 이정재, 신민아, 이엘리야, 김동준, 김갑수, 정웅인이 출연하고, 새로운 인물로 정만식, 박효주, 조복래가 합류한다. ‘보좌관2’ 제작진은 “오는 11월11일 월요일 밤 9시30분 ‘보좌관2’가 첫 방송을 시작한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국회의원이 된 장태준이 권력의 정점에서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일지가 이번 시즌2의 핵심 포인트다”라고 설명했다.이성민(정진영)의 죽음으로 몰아세운 정치 암투 이후 장태준은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 주변의 만류로부터 등을 돌렸다. 특히나 시즌1 엔딩에서는 강선영(신민아)의 보좌관이던 고석만(임원희)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JTBC [미디어피아] 온라인뉴스팀=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하면서 시즌1을 종료한 장태준은 경찰대 출신으로, 사망한 故 이성민(정진영)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전 국회의원이자 현 법무부장관인 송희섭(김갑수)의 수석 보좌관을 지냈다.날카로운 판단력과 집요함, 야망으로 성진시 보궐선거 공천권을 받아 출마, 당선됐다.따라서 시즌2는 금배지를 거머쥔 장태준의 위험한 질주와 치열한 여의도 생존기를 그린다.이정재 외에 신민아, 이엘리야, 김동준, 김갑수, 정웅인 등이 시즌1에 이어 출연했다.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개그우먼 김미화의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에 대한 소식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지난 9일 방송된 MBN 예능프로그램 '모던 패밀리'(연출 송성찬)에서는 '황혼의 싱글' 백일섭과 박원숙이 가족 같은 지인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그리고 '40대 싱글남' 김민준이 정신과를 찾아가 가슴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이 그려졌다.가식 없는 세 사람의 일상과 가슴 속 이야기에 이날 시청률은 2,023%(닐슨코리아 유료가구방송 기준)를 기록했다. 또한 2049 시청률은 0.5%로 선전했으며, 각종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를 장식하며 폭발적인 화제성을 이어나갔다.백일섭은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부녀 인연을 맺었던 ‘종말이’ 곽진영과 26년 만에 상봉해 감격스런 포옹을 했다. 같은 여수 출신인 두 사람은 “세월만 변했지, 사람은 그대로”라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백일섭은 “사실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6.25 전쟁 때 피난살이한 것과, 아버지와 배낚시 한 기억 정도”라며 가슴 한 켠에 자리한 외로움을 내비쳤다.곽진영은 “저도 2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셔서 힘들었다. 곧 서울 집을 정리하고 어머니 혼자 계신 여수에 터를 잡으려 한다. 앞으로 백(일섭) 선생님이 아버지처럼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위로를 건넸다. 특히 센스 넘치는 ‘효녀’ 곽진영은 낚시를 좋아하는 백일섭을 위해 배를 준비했고, 백일섭은 쏨뱅이를 대거 낚아 모처럼 기분 좋은 추억을 쌓았다.박원숙은 재혼 13년차 김미화 가족을 만나 음악회를 겸한 가든 파티를 즐겼다. 김미화 윤승호 부부의 맏아들 윤진희 군이 ‘발달장애인들의 축제’인 ‘오티즘 엑스포’ 축하 무대에 초대받아, ‘사전 리허설’(?) 겸 지인들을 초대해 ‘가족 음악회’를 마련한 것. 윤진희 군은 발달장애로 인해 평생 '열 살 소년'의 모습이지만 누구보다 드럼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뮤지션이었다.김미화 가족의 '작은 음악회'에 초대받은 박원숙은 김미화를 도와 샹그리아를 만들었다. 본격 음악회에 앞서 저녁 만찬을 즐기던 중 박원숙은 음식을 준비한 김미화의 막내딸 윤예림을 칭찬했다.김미화는 "우리 딸이 미국에 있을 때 식당 일을 해서 학비에 보탰다. 거기에 공부도 잘해서 중학생 때 '오바마 대통령상'을 탔다"고 자랑했다.박원숙이 “미국에서 12년을 공부했다던데 기숙사에서 살았냐”고 묻자 윤예림은 “언니와 함께 생활했다. 가서 3년간은 외로워서 매일 울었다”고 밝혔다.김미화의 남편 윤승호 교수는 “예림이가 12살에 미국에 갔는데 우리 부부가 2년 만에 미국을 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이런 훌륭한 아이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라”고 거들었다. 이에 박원숙은 “두 사람한테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 어마어마하게 자랑할 일을 그냥 일상처럼 덤덤하게 얘기한다”라고 질투를 드러냈다.김미화는 발달장애를 가진 첫째 아들 윤진희와 윤승호 교수가 발달장애인들의 축제인 '오티즘 엑스포'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해보기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고 밝혔다.밴드 연주가 끝나고 김미화는 윤진희 군의 드럼, 윤승호 교수의 기타 연주에 맞춰 '사랑밖에 난 몰라'를 열창했다. 김미화는 노래 도중 왈칵 눈물을 쏟았고 윤승호 교수는 그런 김미화를 따뜻하게 안아줬다1964년생으로 올해 쉰 여섯살인 김미화는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신갈리(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 성북구 수유동(현 강북구 수유동)에서 자랐다.1982년 KBS 코미디언 시험장에 교복차림으로 응시했으나 "학생은 안 된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고 결국 다음 해인 1983년 고등학교 졸업 후 관광회사 경리직원으로 취직했다.하지만 코미디언의 꿈을 버리지 못해 3개월 만에 그만둔 뒤 그 해 제 3회 M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으나 출연료 문제 탓인지 스스로 포기하고 관광회사 경리직원으로 되돌아갔다.결국 1984년 KBS TV 개그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여 본격적인 데뷔를 했고 그 이후 '젊음의 행진', '유머1번지' 등에서 활약하다가 1987년 '쇼 비디오 자키' 에서 김한국과 콤비를 이뤄 연기한 '쓰리랑 부부', 일명 '순악질 여사'라는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다.이후, 1991년 가을 SBS로 자리를 옮겼으나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음 해인 1992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으며 1995년 가을 프리랜서를 선언했고 1999년 SBS 개그맨실장을 역임했으며 그 이후에는 KBS 'TV 책을 말하다', SBS '김미화의 U'등 교양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였으며, SBS '뷰티풀 라이프'등 예능버라이어티 진행자로도 활동했다.2001년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입학, 2005년에 졸업했다. 2003년 3월 24일에는 배우 정진영 등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개그우먼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승승장구했지만 김미화는 개인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 스물 셋의 나이에 결혼한 후 임신 6개월 차에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한 탓에 유산을 한 것. 그 후 힘겹게 두 딸을 얻은 후에도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고, 이혼이라는 시련을 맞게 됐다.그 후 힘겹게 두 딸을 얻은 후에도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고, 이혼이라는 시련을 맞게 됐다.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여자로서는 기구한 삶을 살아온 김미화에게 2007년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마흔 다섯살에 재혼한 뒤 아들 윤진희와 딸 윤소희를 새로운 가족으로 품었다. 두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는 윤승호의 부성애에 끌려 재혼을 결심한 것.재혼으로 서로의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준 두 사람은 네 자녀의 부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