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 남자 화장실에 놓여 있던 5000만여원 상당의 시계를 가져간 20대 남성이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해당 남성을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충북 괴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9일 20대 남성 A씨가 경기 남양주경찰서에 자수했다.A씨는 지난 8월25일 오후 5시께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 방향 괴산휴게소 화장실에서 손가방에 든 고가의 수입 시계를 훔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경찰은 최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5500만원 상당의 시계를 분실했다는 신고를 접수 받고 수사를 착수했다.시계를 분실한 30대 남성은 신고와 함께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 기자]'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살인마 유영철의 일화가 문제로 등장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며 11월 18일 저녁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최근 방송된 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조명한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1970년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2동에서 태어나 공덕초, 경서중을 다녔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여 1987년 5월,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각종학교인 국제 공고에 입학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인 88년 6월, 소년원에 입소하며 학교를 중퇴했다.유영철의 아버지는 큰형을 낳고 월남전에 참전했고, 참전 후에는 음주와 외도, 노름, 폭력 등등으로 부부싸움이 잦아 유영철이 7살 때 이혼했으며 이후 유영철이 중학교 2학년 때인 84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둘째 형도 94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지병이 있고 알콜 중독자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이미 형이 둘 씩이나 있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유영철은 어머니에게 큰 부담이었고, 어린 시절을 대부분 아버지 첩의 집에서 생활했다.아버지가 죽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이웃 누나의 방에서 돈 23만원과 기타를 훔쳐, 야간주거침입죄와 절도죄로 소년원에 입소했다. (징역형으로 군면제됨) 성장기 때 경찰을 동경하여 응시 시험까지 쳤으나 색맹으로 좌절했다고 한다. 이후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 갈취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유영철이 21살 때 마사지사인 황 모씨와 1991년 결혼해 바로 아들을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 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20대의 거의 대부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냈다.2000년 3월, 특수 절도와 강간 등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002년 5월에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전처로부터 이혼을 통보받았다.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부터 감방 안에서 십자가를 부러뜨리며 신은 없다고 믿게 되었고, 이후 교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살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출소한 유영철은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73세)와 부인 이씨(68세)를 살해했으며, 2003년 10월 9일에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씨(85세), 이씨(60세), 자폐병이 있는 고씨(34세)등 일가족 3명을, 10월 16일에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씨(69세)를 살해했다.2003년 11월 18일에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씨(87세), 배씨(57세)등 2명을 살해했고, 2004년 4월 13일에 황학동 노점상 안씨(44세)를 살해하고 시신을 월미도에 버렸다.이에 앞서 2004년 3월부터 그해 7월 13일까지는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총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유영철은 2004년 7월 15일 체포됐다. 체포 당일, 수갑을 풀고 의경을 밀치고 도망을 간지 하루 만인 7월 16일에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역무원과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전원에 의해 재검거되었다가 8월 13일에 구속기소 되었다. 그에게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됐다.이후 1심과 2심 공판에서 중대범죄 복합살인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죄목이 추가되고 형사 소송법 및 양형 규정에 따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시체손괴 유기 및 1급 살인,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12월 13일 사형을 선고받았다.2005년 6월 9일 대법원은 유영철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에 대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후에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다른 연쇄살인범인 정남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가장 최근인 1997년 12월 30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중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도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12월 30일부터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유영철은 미국의 잡지 '라이프'가 2008년 8월 6일에 보도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쇄 살인자 3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2010년 법무부는 유영철, 강호순 등 흉악 연쇄 살인범에 대해 사형을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외교마찰 등의 우려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성인물(성인소설)과 일본 만화책을 특정 교도관을 통해 밀반입 하다가 다른 교도관에게 적발 되어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KBS는 2014년 유영철이 한 물품 구매 대행업체에 보낸 편지를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편지에는 성인 화보와 일본 만화, 성인 소설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특히 특정 교도관 앞으로 보내라고 적혀 있었다.구치소 내 반입이 엄격히 금지된 물건을 교도관 앞으로 보내 반입한 것이다. KBS를 통해 해당 서울구치소 교도관은 “두어 번 받아 준 적 있다"고 사실을 인정했다.앞서 2011년 유영철는 교도관에게 폭언을 하는 등 소동을 벌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유영철이 무기류나 외부 물건을 불법으로 반입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거실검사' 과정에서 교도관 3명과 시비가 붙어 "내가 싸이코인 것을 모르느냐”고 윽박하는 것은 물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리다 제지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방송이 나간 뒤 공화당 신동욱 총재가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사형집행’을 촉구하기도 했다.신동욱 총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0개월간 21명을 엽기적으로 연쇄 살해한 사건이다. 우연히 서울구치소에서 유영철의 생활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사형 집행하라”는 글을 게재했다.이어 신 총재는 “2012년 7~8월경 수감된 방이 3층이라 창살 사이로 유영철이 혼자서 운동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며, “유영철은 구속직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매우 건강했고 체격이 단단해 보였다. 조폭도 두려워하는 교도소의 왕중왕”이라고 덧붙였다.또 신 총재는 “유영철은 빨간 명찰을 달고 다녔고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유로워 보였다. 10개월간 노인과 여성 21명을 살해한 살인마를 보면서 인권에 대한 허상을 느꼈다”며 “사형제도 부활”을 촉구했다.신 총재는 “유영철은 사형 미결수로 서울구치소 수감 중 2014년 12월에 반입이 금지된 성인잡지, 성인만화 등 음란물 반입금지 물품을 교도관을 통해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형수가 왕”이라고 꼬집었다.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가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찾아 집중 취재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 방송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26일 방송된 SBS 특집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악의 정원에서-한국의 연쇄살인범들'이라는 부제로 연쇄살인범 4인에 대해 조명했다.26일 방송에는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의원,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한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박지선 교수, 그리고 오랜 기간 연쇄살인범을 추적해 온 MC 김상중이 제작진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분석했다.지난 9월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특정되었다. 범인은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이춘재였다.15년 전 한 남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에 대해 "화성 연쇄살인범은 이미 사망했거나 아니면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다. 스스로 살인을 멈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살인 중독이다"라고 했다. 이춘재에 대해 정확하게 예상한 이는 또 다른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유영철이었다.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1970년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2동에서 태어나 공덕초, 경서중을 다녔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여 1987년 5월,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각종학교인 국제 공고에 입학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인 88년 6월, 소년원에 입소하며 학교를 중퇴했다.유영철의 아버지는 큰형을 낳고 월남전에 참전했고, 참전 후에는 음주와 외도, 노름, 폭력 등등으로 부부싸움이 잦아 유영철이 7살 때 이혼했으며 이후 유영철이 중학교 2학년 때인 84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둘째 형도 94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지병이 있고 알콜 중독자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이미 형이 둘 씩이나 있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유영철은 어머니에게 큰 부담이었고, 어린 시절을 대부분 아버지 첩의 집에서 생활했다.아버지가 죽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이웃 누나의 방에서 돈 23만원과 기타를 훔쳐, 야간주거침입죄와 절도죄로 소년원에 입소했다. (징역형으로 군면제됨) 성장기 때 경찰을 동경하여 응시 시험까지 쳤으나 색맹으로 좌절했다고 한다. 이후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 갈취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유영철이 21살 때 마사지사인 황 모씨와 1991년 결혼해 바로 아들을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 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20대의 거의 대부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냈다.2000년 3월, 특수 절도와 강간 등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002년 5월에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전처로부터 이혼을 통보받았다.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부터 감방 안에서 십자가를 부러뜨리며 신은 없다고 믿게 되었고, 이후 교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살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출소한 유영철은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73세)와 부인 이씨(68세)를 살해했으며, 2003년 10월 9일에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씨(85세), 이씨(60세), 자폐병이 있는 고씨(34세)등 일가족 3명을, 10월 16일에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씨(69세)를 살해했다.2003년 11월 18일에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씨(87세), 배씨(57세)등 2명을 살해했고, 2004년 4월 13일에 황학동 노점상 안씨(44세)를 살해하고 시신을 월미도에 버렸다.이에 앞서 2004년 3월부터 그해 7월 13일까지는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총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유영철은 2004년 7월 15일 체포됐다. 체포 당일, 수갑을 풀고 의경을 밀치고 도망을 간지 하루 만인 7월 16일에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역무원과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전원에 의해 재검거되었다가 8월 13일에 구속기소 되었다. 그에게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됐다.이후 1심과 2심 공판에서 중대범죄 복합살인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죄목이 추가되고 형사 소송법 및 양형 규정에 따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시체손괴 유기 및 1급 살인,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12월 13일 사형을 선고받았다.2005년 6월 9일 대법원은 유영철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에 대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후에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다른 연쇄살인범인 정남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가장 최근인 1997년 12월 30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중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도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12월 30일부터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유영철은 미국의 잡지 '라이프'가 2008년 8월 6일에 보도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쇄 살인자 3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2010년 법무부는 유영철, 강호순 등 흉악 연쇄 살인범에 대해 사형을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외교마찰 등의 우려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성인물(성인소설)과 일본 만화책을 특정 교도관을 통해 밀반입 하다가 다른 교도관에게 적발 되어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KBS는 2014년 유영철이 한 물품 구매 대행업체에 보낸 편지를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편지에는 성인 화보와 일본 만화, 성인 소설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특히 특정 교도관 앞으로 보내라고 적혀 있었다.구치소 내 반입이 엄격히 금지된 물건을 교도관 앞으로 보내 반입한 것이다. KBS를 통해 해당 서울구치소 교도관은 “두어 번 받아 준 적 있다"고 사실을 인정했다.앞서 2011년 유영철는 교도관에게 폭언을 하는 등 소동을 벌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유영철이 무기류나 외부 물건을 불법으로 반입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거실검사' 과정에서 교도관 3명과 시비가 붙어 "내가 싸이코인 것을 모르느냐”고 윽박하는 것은 물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리다 제지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디어피아=이원정 기자]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찾아 집중 취재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국의 연쇄살인범들을 심층 분석한다.26일 방송될 '그것이 알고싶다'는 '악의 정원에서-한국의 연쇄살인범들'이란 부제로 특집 방송을 진행,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조두순 등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분석이 그려진다.'살인은 중독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것이 알고싶다'의 전문가 4인과 MC 김상중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의원,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한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박지선 교수, 그리고 오랜 기간 연쇄살인범을 추적해 온 MC 김상중이 함께 했다.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1970년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2동에서 태어나[4] 공덕초, 경서중을 다녔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여 1987년 5월,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각종학교인 국제 공고에 입학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인 88년 6월, 소년원에 입소하며 학교를 중퇴했다.유영철의 아버지는 큰형을 낳고 월남전에 참전했고, 참전 후에는 음주와 외도, 노름, 폭력 등등으로 부부싸움이 잦아 유영철이 7살 때 이혼했으며 이후 유영철이 중학교 2학년 때인 84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둘째 형도 94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지병이 있고 알콜 중독자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이미 형이 둘 씩이나 있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유영철은 어머니에게 큰 부담이었고, 어린 시절을 대부분 아버지 첩의 집에서 생활했다.아버지가 죽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이웃 누나의 방에서 돈 23만원과 기타를 훔쳐, 야간주거침입죄와 절도죄로 소년원에 입소했다. (징역형으로 군면제됨) 성장기 때 경찰을 동경하여 응시 시험까지 쳤으나 색맹으로 좌절했다고 한다. 이후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 갈취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유영철이 21살 때 마사지사인 황 모씨와 1991년 결혼해 바로 아들을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 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20대의 거의 대부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냈다.2000년 3월, 특수 절도와 강간 등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002년 5월에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전처로부터 이혼을 통보받았다.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부터 감방 안에서 십자가를 부러뜨리며 신은 없다고 믿게 되었고, 이후 교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살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로 출소한 유영철은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73세)와 부인 이씨(68세)를 살해했으며, 2003년 10월 9일에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씨(85세), 이씨(60세), 자폐병이 있는 고씨(34세)등 일가족 3명을, 10월 16일에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씨(69세)를 살해했다.2003년 11월 18일에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씨(87세), 배씨(57세)등 2명을 살해했고, 2004년 4월 13일에 황학동 노점상 안씨(44세)를 살해하고 시신을 월미도에 버렸다.이에 앞서 2004년 3월부터 그해 7월 13일까지는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총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유영철은 2004년 7월 15일 체포됐다. 체포 당일, 수갑을 풀고 의경을 밀치고 도망을 간지 하루 만인 7월 16일에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역무원과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전원에 의해 재검거되었다가 8월 13일에 구속기소 되었다. 그에게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됐다.이후 1심과 2심 공판에서 중대범죄 복합살인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죄목이 추가되고 형사 소송법 및 양형 규정에 따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시체손괴 유기 및 1급 살인,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12월 13일 사형을 선고받았다.2005년 6월 9일 대법원은 유영철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에 대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후에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다른 연쇄살인범인 정남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가장 최근인 1997년 12월 30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중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도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12월 30일부터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유영철은 미국의 잡지 '라이프'가 2008년 8월 6일에 보도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쇄 살인자 3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2010년 법무부는 유영철, 강호순 등 흉악 연쇄 살인범에 대해 사형을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외교마찰 등의 우려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성인물(성인소설)과 일본 만화책을 특정 교도관을 통해 밀반입 하다가 다른 교도관에게 적발 되어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KBS는 2014년 유영철이 한 물품 구매 대행업체에 보낸 편지를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편지에는 성인 화보와 일본 만화, 성인 소설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특히 특정 교도관 앞으로 보내라고 적혀 있었다.구치소 내 반입이 엄격히 금지된 물건을 교도관 앞으로 보내 반입한 것이다. KBS를 통해 해당 서울구치소 교도관은 “두어 번 받아 준 적 있다"고 사실을 인정했다.앞서 2011년 유영철는 교도관에게 폭언을 하는 등 소동을 벌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유영철이 무기류나 외부 물건을 불법으로 반입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거실검사' 과정에서 교도관 3명과 시비가 붙어 "내가 싸이코인 것을 모르느냐”고 윽박하는 것은 물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리다 제지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방송이 나간 뒤 공화당 신동욱 총재가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사형집행’을 촉구했다.신동욱 총재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0개월간 21명을 엽기적으로 연쇄 살해한 사건이다. 우연히 서울구치소에서 유영철의 생활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사형 집행하라”는 글을 게재했다.이어 신 총재는 “2012년 7~8월경 수감된 방이 3층이라 창살 사이로 유영철이 혼자서 운동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며, “유영철은 구속직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매우 건강했고 체격이 단단해 보였다. 조폭도 두려워하는 교도소의 왕중왕”이라고 덧붙였다.또 신 총재는 “유영철은 빨간 명찰을 달고 다녔고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유로워 보였다. 10개월간 노인과 여성 21명을 살해한 살인마를 보면서 인권에 대한 허상을 느꼈다”며 “사형제도 부활”을 촉구했다.신 총재는 “유영철은 사형 미결수로 서울구치소 수감 중 2014년 12월에 반입이 금지된 성인잡지, 성인만화 등 음란물 반입금지 물품을 교도관을 통해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형수가 왕”이라고 꼬집었다.
tvN [미디어피아] 온라인뉴스팀= 22일 방송된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때'에서는 하립(정경호 분)이 자신의 절도죄를 김이경(이설 분)이 뒤집어 썼다는 것을 알게되는 모습이 그려졌다.극 중 이설은 하립(정경호 분)에게 곡을 빼앗긴 불운의 싱어송라이터 김이경을 연기한다. 불행한 가정사로 18살 때 소년범이 된 이경은 가슴 아픈 과거에도 불구하고 순수함과 맑은 모습으로 단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첫 등장부터 대리운전 기사로 짠내 나는 상황을 그려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으며, 온갖 불행한 일들로 드라마의 긴장감을 선사했다.김이경이 과거 절도전력 때문에 계부 중상해 사건에서도 정당방위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립은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는데도 오히려 서동천을 ‘꿈을 갖게 해준 사람’이라고 기억하며, 미완성이었던 그의 곡까지 완성해낸 김이경. 하립은 그런 그녀를 사로잡아 자신의 영혼을 지켜야만 했다. 두 사람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독하게 얽혀있었다.하립은 그 말에 충격을 받고, 과거 김이경이 자신 대신 누명 쓴 일을 떠올린다. 서동천과 김이경은 예식장에 축가 알바를 갔다가 이충렬(김형묵 분) 아들이 결혼식을 하는 것을 본다.